에세이 연습
나이가 들면서 자꾸 깜빡깜빡하게 된다. 거기다가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반 넘게 영어만 쓰고 나머지 시간에도 굉장히 일상적인 대화만 한국어로 하다 보니 가끔 어려운 한국 단어가 빨리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유언장을 작성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가족들에게 유서를 쓰겠다고 하니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본다. 사실 유언장이나 유서가 의미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유서라는 단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유언장이란 단어 자체를 잠깐 잊어버렸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도 아닌데 이런 실수를 종종 하는 것이 가끔 재수 없게 비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옛날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가 인터뷰 때 사람들이 무슨 교포도 아닌데 저러냐고 비웃었는데 지금은 당시의 박찬호가 다른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다른 선수들이 하지 않아도 될 노력을 더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3주 정도 방문하면서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자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주변에 많은 한국분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한식을 원 없이 먹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면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지만 나는 영어를 쓰고 싶어 졌는데 아마도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미국에 있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할 것 같다. 한국의 지인들이나 가족들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도 내 모국어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100% 전달할 수 있었지만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적어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친구던 가족이던 같이 공유하던 기억들이 적게 잡아도 10년도 훨씬 전에 끊겼기 때문에 서로 어떤 접점도 없었던 사이의 업데이트와 예전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얘기하고 나면 딱히 이야기할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영어를 쓰는 미국의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내 일상이 한국에서도 이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영어를 남들보다 훨씬 많이 써야 했고 -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 당연히 미국에서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나는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한다. 딱히 단어나 숙어를 외워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영어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는데 그것은 내 영어 발음이 좋아졌거나 표현이 고급스럽게 된 것은 전혀 아니고 내 비언어적인 영어 스킬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요새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영어가 유창하지만 다만 내가 그들보다 조금 나은 것은 미국에서 살다 보니 원어민들의 톤, 표현, 제스처 등에서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는 거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렇게 들리지 않을 수 있는 표현이 나한테는 인종 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고 설령 비속어를 써서 하는 말에서도 때로는 굉장한 호의를 찾을 수 있다. 반대로 나도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쌓는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잘 기억이 안나는 한국 단어를 영어로 대체하고 종종 영어를 섞어 쓰는 혼종 한국어를 쓰게 될 확률이 커질 것 같다. 이곳에서 30년, 40년 사신 교포 1세대들이 왜 그러시나 이해를 못 했는데 단순히 습관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과 언어가 서로 묶여 있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