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힘들다
현재 작은 팀의 팀장으로 또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느낀/느끼고 있는 것들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팀장을 해본 적이 없어서, 또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역시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거창하게 리더십 같은 것에 대해 논하고 싶지도 않고 논할 만한 능력도 안된다는 것을 먼저 말해 둔다. 여기서 내가 쓴 글에 대한 반박 시 당신 생각이 대체로 맞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예전 글에 몇몇 분이 딴지를 걸었는데 일단 내 성격은 여기 글을 쓰시는 대부분의 작가님들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딴 댓글은 쓰지 않기를 먼저 부탁드려 본다. 순간적으로 jolla 스트레스받는 성격이다.
예전에 팀장이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거의 20명 정도 되는 팀을 약 1년간 이끌었고 지금은 5명의 팀원이 있는 소소한 팀을 이끌고 있다. 20명 정도의 미국인을 이끌었을 때가 내 직장 생활 중에 가장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이고 나 역시 퇴사하려고 몸부림을 치던 시기이다. - 팀장이 떠난 이유도 주로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이유는 내가 신생팀을 맡게 되면서 (나 혼자로 시작함) 전적으로 내 입맛에 맞는 팀원들을 신규 채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팀장으로서 가징 힘든 일은 엔지니어로서 일하면서 팀장의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업무 범위에 제한이 없고 부가적인 업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팀에서 진행 중인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챙기고 또 내 파트를 맡아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꽤나 힘들다. 거기에 회사에서 주어지는 팀장 업무 - 한국에서는 인사고과라고 하나? - 같은 것도 챙겨야 하고 또 타 부서와 협업 때문에 회의도 많은 편이다. 특히 올해는 두 달에 한 번씩 출장을 가고 있는데 팀장으로서의 업무 협의 등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엔지니어로서의 출장도 있었으며 또, 팀원들의 지원차 (senior engineer로서) 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다 쓸 겨를이 없어서 올해도 남은 휴가를 다 쪼개 쓰기로 했다. 작년에도 거의 연말 두 달은 주 4일 근무 일정이었는데 그렇다고 실제로 주 4일 근무를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니었다. 그렇다고 급여가 드라마틱하게 오르는 것도 아닌 것이 지금 회사에서 고인물이다 거의 승진을 하지 않는 이상 지금 단계에서는 연봉 테이블 거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직급에 정해진 연봉 범위에서 상위에 속한다는 뜻) 사실 그렇다고 워라벨에 무너졌다는 뜻은 아니다. 3월에도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고 여름휴가도 일주일 다녀왔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연말 연휴에도 쉬려면 충분히 쉴 수도 있는데 어차피 나는 가족들이 이곳에 없기 때문에 가족들이 있는 팀원들에게 그저 조금 양보하는 것뿐이다.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니 한국의 누군가는 나에게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맞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항상 일주일 근무시간이 40시간이 크게 넘지 않도록 매우 노력하고 있으니까.
미국에서,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우리 회사에서 팀장 (사실은 매니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이 되고 좋은 점은 굉장히 많은 autonomy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출퇴근이나 연차를 포함한 근무 일정도 그렇지만 팀의 업무 일정, 계획, 방식 등등 모든 분야에서도 나는 거의 100%에 가깝게 전권을 가지고 있고 또 딱히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 내 바로 위는 기술이사이고 그 위는 부지사장, 지사장이 있는데 부지사장과 지사장은 엔지니어 계열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에 관여를 하지도 않고 업무 지원에 충실한 편이다. 기술이사도 바쁘기 때문에 어쩔 때는 일주일 내내 말한마디 하기도 어렵고 자기 분야가 아닌 업무는 내 의견을 신뢰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어프로치 한다. 즉, 업무 지시나 보고, 결재 같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직 돈을 써야 하는 경우만 결재 필요) 일정 성과만 나오도록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회사 매출이 좋기 때문에 그 일정 성과가 나오고 있고 그 때문에 앞에서 말한 대로 거의 스트레스가 없는 회사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가 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도 있다. 나는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 늘 다짐하며 노력하지만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인 나와 미국인 팀원들, 그것도 MZ 세대 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친구들 중 빨리 승진한 두 친구가 벌써 이사고 대부분 차장, 부장급인데 요새 한국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 내 팀원들처럼 했다가는 벌써 이야기가 나오고 어쩌면 큰 갈등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곳은 미국이고 또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한국인이 나 밖에 없는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나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면 거의 내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내 안에 있는 꼰대가 머리를 들며 '허... 이런 건방진 새끼가...?' 하는 마음의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중에 하나는 일단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는 거다. 한국인 팀장답게 가끔은 아주 디테일한 지시를 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대로 하는 법이 없다. 한국 같으면 메모지라도 들고 와서 메모하고 그대로 하고 보고할 텐데 (한국도 요새는 안 그러나?) 여긴 그딴 거 없다. 가끔은 그런 것들 때문에 팀원들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자율성이 창의성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하려고 노력 중인데 지지리도 말을 안 들어 먹을 때는 욱할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일의 속도가 굉장히 느린 것 때문인데 이것은 내가 효율성의 나라 한국에서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정 (미국인들 기준으로...)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가끔 불평도 듣는데 내 생각엔 분명히 할 수 있는데 못해 놓고 당당하게 이래서 못했다 할 때는 속으로 욱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 팀이 다른 팀에 비해서는 생산성이나 업무 효율이 월등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가끔 미안하기도 하다. 하나만 더 꼽자면 역시 너무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이다. 물론 나는 이런 것들을 동경해서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내가 너무 지키고자 하는 가치인데 문제는 나의 이중성이다. 가끔 이런 것들에 욱하는 나를 조각해 나가야 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지금은 외국인 팀장을 허물없이 대해주는 팀원들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위에 설명한 스트레스는 사실 내가 직접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채용한 팀원들이기에 가능한 정도의 스트레스 레벨이다. 앞에서 말한 1년간 팀장 대행을 했을 때는 나보다 경력도 오래되고 나이도 많은 팀원들도 있었고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의 팀원들도 있었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했다. 대놓고 나를 제치고 다른 팀장과 일을 하려는 사람들 은근한 인종차별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또 대놓고 내 영어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런 것들과 1년 내내 싸워야 했는데 특히 문화 차이와 차별/텃세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매주 주말 전까지 업무를 마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고는 다음 주 월요일에 보면 안 되어 있어 당시 부사장에게 계속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보고를 해야 하는 일이 매주 계속되어 두통약을 달고 살아야 했고 목의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계속 다녀야 했다. 결국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내가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꽤나 애를 먹었던 팀원이 외근이 끝나고 나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하려고 처음 나에게 전화를 했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내가 대행이었기 때문에 더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는 그런 권한 없고 책임만 있는 일은 맡고 싶지 않다.
내 팀원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좋은 팀장으로 생각되게 만들까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맡은 역할에서는 팀원들의 눈높이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그들에게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거창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칭찬 한마디, 그들의 주말이나 가족에 대해 물어보는 것, 생일날을 챙겨 같이 점심을 먹는 일 따위이다. 그런 부분에서 아무래도 감성과 문화가 다른 나는 다른 미국인 팀장들보다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챙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 핑계 되고 개인 사무실에 처박혀 컴퓨터만 바라보다가는 금방 안 좋은 피드백이 오게 될 터이다. 여러 가지 차이를 극복하는 일들이 쉽지는 않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인생을 즐기게 되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 리쿠르터를 통해 이사급의 인터뷰를 최근 1-2년 사이 여러 번 보았는데 번번이 채용되지 못했다. 물론 다 내가 부족해서 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언어와 문화적인 측면이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낳았으리라 생각한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현재 근무 중인 회사의 매니저이상급에 비미국인 (사실 나도 미국인기긴 해!)은 나밖에 없다. 나는 엔지니어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사례이지만 아마도 팀장 자리가 공석이 나서 채용을 한다면 유감스럽지만 비미국인 - 이런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어쩌면 이민자가 내가 말하려는 뜻일 수도 - 은 여러 의미에서 우선 고려 대상이 아닐 것 같다.
리더십 트레이닝과 경험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국에서 하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부분이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다를 것 같다. 다만 다행인 것은 현재 딱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 는 뻥이고... -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뭔가 팁을 드리자면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싶고 또 리더십 포지션을 원한다면 엄청나게 높은 영어 수준과 깊은 문화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이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당당하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이 부분은 미국 생활을 오래 하면 자연스럽게 체득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더라도 이민자가 이룩할 수 있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시간을 드리고 개발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