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인이 보는 김부장 이야기

by 다니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사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란 드라마를 정주행 하지는 않았다. 대충 유튜브에서 드라마 요약본과 원작 소설 요약본을 본 게 전부이지만 전반적인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보통 흔히 말하는 쇼츠나 짤을 보고 재미가 있으면 binge watching 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나는 아직은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볼 계획은 없는데 이미 쇼츠나 요약본 만으로도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막연한 공포를 더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타이틀은 Engineering Manager, Electrical이다. 사실 입사하고 수많은 조직개편을 경험하며 여러 번의 다른 타이틀을 가졌었기 때문에 (하지만 하는 일은 정확히 같은...) 타이틀에 집착을 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타이틀 상은 매니저이니까 한국으로 치면 중간 관리 업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나는 Director of Engineering에게 report를 하고 그 위에는 Vice President들이 있고 당연히 그 위에는 President가 있다. 우리 회사는 IT 회사가 아닌 일반적인 제조업체이므로 나 같은 공돌이 출신이 경영자인 사장 자리에 오를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단 현 위치에서 올라갈 수 있는 포지션은 현실적으로 2단계이다. VP 포지션의 많은 자리는 영업과 경영을 포함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자리는 딱 하나인데 우리 회사의 경우 VP of Operations이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동료 or 상사도 엔지니어링 학위가 있지만 역시 MBA 출신이다. 사실 나 같은 공돌이 출신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공장장 비슷한 개념이라 생산 쪽에서의 많은 경험이 필요한 자리이다. 개인적으로는 생산 쪽에 많은 경험이 있지만 MBA 같은 학위가 없기 때문에 이 자리를 노리기에는 여러모로 역량이 부족한 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자리는 딱 하나인데 바로 Director of Engineering이다. 내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우리 회사의 유일한 Engineering Manager가 아니다. 다른 분야의 다른 Engineering Manager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은 사실 내가 뽑은 내 팀원이었다. 내 팀원이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한 것은 내 눈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무조건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마치 김부장 이야기에서 한참 어린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는 김부장 처럼 말이다.


나와 분야가 다른 쪽의 업무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내 커리어와 학력, 이 회사에서 나의 실적 등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나는 그들에 비해 엄청난 우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다면 만일 Director of Engineering 자리가 공석이 된다면 나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인가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슬프지만 거의 99% 확률로 외부에서 채용을 하거나 아니면 한때는 나의 팀원이었던 친구가 내 상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나의 능력 부족이겠다. 그러나 가장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넘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단순히 영어 능력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무언가 말이다. 당연히 미국 회사에도 정치라는 게 동작하고 라인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나는 그 정치의 참여와 라인을 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나 신용과 인맥이 중요한 이 미국 사회에서 나는 어쩌면 발 하나를 묶고 뛰는 레이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문화적인 차이, 제2 외국어인 영어로 인한 언어의 장벽 등이 단순히 엔지니어로서 일할 때는 큰 장벽이 되지 않지만 엔지니어를 넘어서 중간 관리, 그 위의 관리자로 승진하기에는 너무나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거기에 불행히도 indian만 채용한다는 indian boss 같은 한국인 보스는커녕 중간 관리자부터는 나 외에는 그 어떤 유색인종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보수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렇다 보니 50을 앞둔 현재 가끔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미국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지만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데 과연 언제까지 이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찾아봐야 하는 건지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했지만...) 아니면 자격증이나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건지 하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가장 무서운 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이직을 한다 해도 현재 사는 지역에선 더 나은 대우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자니 아이들 학교며 집을 팔고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기다리는데 이 모든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나은 자리를 현재 내 입장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몇 번 Director 레벨의 면접을 봤었는데 기술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았는데 어쩐지 최종 offer를 받지 못했다. - 사실 작년에 한번 verbal offer를 받고 최종 offer를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실망한 후 이직의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 그러다 김부장 이야기를 보니 어렵게 마음 깊숙이 숨겨 놓았던 두려움이 슬그머니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선 매그러니저를 하다가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가 정년을 채우는 일도 많기 때문에 당장의 job security가 위험한 건 아니지만 내가 여기 까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때는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혼자 힘으로 중간 관리직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내리막길을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김부장 이야기를 마냥 드라마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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