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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복 Aug 31. 2023

잡(을) 디자인(하라)

7) 직업의 가치를 디자인하라

“진지 잡수셨유?” 어릴 적에 동네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드렸던 인사다. 윗세대들이 보릿고개를 지내신 분들이기에 한 끼니라도 거르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의 인사말이었다. 요즘에도 “식사하셨어요”나 “밥 먹었어”라고 인사하지만 식사 때가 아닐 경우 어색하게 들린다. 대신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별고 없으시죠” “건강하시죠” 등이 일상적인 인사다.


이런 인사말은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하다”는 뜻을 지닌 ‘안녕’에 포함된다. 여기에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까지 이르르면 ‘행복’이 된다. 이 행복이란 단어는 철학으로 시작해 윤리학을 거쳐 긍정심리학·인문학·과학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인류의 학문을 풍부하게 만든 단어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묻는 인사말은 잘 쓰지 않는다. 아마 행복 개념이 개인마다 다르고 단어에서 묻어나는 쾌락이란 향기의 불편함 때문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누군가는 짐승이거나 신이라며 인간의 사회성을 중시했다. 그리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며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 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 중에 일시적인 쾌락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향락적인 삶”이나 명예와 명성을 얻기 위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인 삶”은 행복할 수 없고, 자신의 탁월함으로 공동체 사회에 유익한 일(직업)을 하는 “관조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 했다.


이렇게 행복을 목표로 추구하는 서양사상과는 달리 동양의 음양사상은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자신의 마음가짐에 관심을 뒀다. 즉 “행복을 목표로 할 것이냐” “불행을 회피하거나 제거하는 것이냐”는 관점에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행복을 원한다. 단 아직도 행복에 대한 개념이나 조건과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다. 다른 이들의 행복론에만 빠지지 말고 행복하냐는 질문을 자신에게 스스로 묻고 “나는 행복해”라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삶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고 직업인으로 활동한다. 19세기 영국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일생의 일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하다. 다른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해지려면 자기를 버리고 남의 행복을 바라는 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탁월함을 가지고 직업(일)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행복의 여러 조건 중 최고다. 이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관조하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직업은 공동체에 유익함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회피하는 극한직업일수록 더욱 그러하며 직업과 직업은 톱니바퀴와 같이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만 그 직업인의 직업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조리사가 “자신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아마도 전자는 “먹방 유튜버”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향수는 다른 사람의 겨드랑이 등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분석한 직업인에 의해 개발되고, 반려동물의 사료는 직업인이 시식하고 평가한다. 흔한 연필도 180여개 직업인이 협업해 만들어 낸다. 환경미화원들 때문에 쾌적한 환경이 유지되고 홍수 등 재해도 예방된다. 의료인들은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생명의 위급함에서 인명을 구한다.


이렇게 직업인들은 공동체에 유익함을 제공한다. 이를 구성원들도 인식하고 이로 인해 행복하지만 당연하기에 감사함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이를 바란다면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 당신은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는 흔히 “꿀잠”이나 “꿀맛”이란 말을 한다. 아마 젊은 층일수록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 꿀잠과 꿀맛 아닌가 한다. 이는 짧은 순간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제 자신의 직업이 공동체에 어떤 유익함을 제공하는지 찾아보고 그에 부합되는 가치를 스스로 부여해서 “꿀잡”으로 만들어라! “꿀잡”을 준비하고 “꿀잡”을 위해 자기를 개발하고 꿀잠에서 깨어 “꿀잡”길에 오르자! 이것이 자거나 먹는 순간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긴 행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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