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다" 한마디가 아이의 도전을 멈추게 합니다
유치원 시절, 큰아이는 국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국기책을 달달 외워서 나라 이름과 국기를 모두 알고 있었죠. 신기한 저는 심심할 때마다 물어봤습니다.
"이건 어느 나라 국기야?"
"튀니지!"
"와... 너 진짜 똑똑하다!"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좋은 부모구나' 싶었어요. 아이의 영특한 모습에 "똑똑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국기 맞히기 같은 걸 할 때는 자신감 넘치던 아이가, 조금이라도 어려운 과제 앞에서는 쉽게 포기하려 했어요.
새로운 퍼즐을 가져다주면 "이거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요?"라며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했습니다. 숙제를 하다가 막히면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안 될 것 같아"라며 먼저 핑계를 댔고요.
무엇보다 제가 뭔가 지적을 하면 늘 이유를 대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마치 '잘못을 인정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죠.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아이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인데, 수업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였죠.
미술 시간에 스케치를 조금 하다가도 "선생님, 이건 재미없을 것 같아요"라며 슬쩍 다른 주제로 바꾸려 하는 아이들. 색칠이 마음에 안 들면 "물감이 부족해서 이렇게밖에 못 칠했어요"라며 먼저 핑계를 대는 아이들.
특히 "우리 색칠을 더 꼼꼼하게 해보자"라고 제안하면, "물감이 잘 안 발라져서 그래요"라며 즉시 방어부터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처음엔 '이 정도 변명은 아이들이 다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꺼리고, 작은 지적에도 방어부터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며칠 전 우연히 읽은 인터뷰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한 영화감독이 "명성과 비교되는 두려움 때문에 8년 동안 신작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이야기였습니다. 데뷔작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다음 작품도 그만큼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히려 창작 의지가 꺾였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번개처럼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아이에게 그런 압박을 주고 있었구나.'
우리 아이도 그 감독처럼 '나는 똑똑해야 해', '나는 잘해야 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족쇄를 채운 건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했습니다. 사랑해서 한 칭찬이 오히려 아이를 옭아매고 있다니요.
아이는 칭찬받을 때 행복해합니다. 그래서 늘 칭찬받고 싶어 하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절대 지적받거나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이 떨어질까 봐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처럼, 칭찬받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떨어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오면 본능적으로 방어부터 하게 되는 거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도전 자체를 피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혹시 이번에 못하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새로운 시도의 발목을 잡는 거죠.
다행히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캐럴 드웩 교수는 수십 년간 연구를 통해 이런 현상의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칭찬 방식에 따라 아이의 뇌가 완전히 다르게 발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정 마인드셋'의 함정
"넌 머리가 좋다", "천재구나" 같은 재능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타고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내 재능의 한계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버립니다.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작은 지적에도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들킬까 봐' 과도하게 방어하게 되죠.
'성장 마인드셋'의 힘
반대로 "끝까지 노력했구나", "다른 방법을 시도했네" 같은 과정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노력하면 능력이 늘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결과'로만 평가받으며 자랐습니다. 100점 맞으면 칭찬받고, 못하면 야단맞고. 그래서 아이에게만은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많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려고 했던 거죠.
하지만 우리가 받았던 '결과 중심' 사고방식이 칭찬할 때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100점 받았구나, 역시 똑똑해"처럼 여전히 결과에만 집중한 칭찬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작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이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칭찬해야 할까요? 답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위험한 칭찬 피하기
"넌 머리가 좋다" (재능 칭찬)
"역시 운돈 신경이 좋아" (고정적 특성 칭찬)
"100점이야? 최고다!" (결과만 칭찬)
아이를 성장시키는 칭찬하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구나"
"어제와 다른 방법을 시도했네"
"틀려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이 멋져"
요즘 중학생인 큰아이에게는 시험 점수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어떤 부분을 복습했어? 아, 수학 문제집 5페이지나 했구나. 꾸준히 하니까 실력이 늘겠다."
과정을 칭찬하면 신기하게도 칭찬할 거리가 넘쳐납니다.
"오늘도 스스로 설거지했네, 정말 기특해."
"발차기가 잘 안 되어서 속상했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연습했구나."
"실수했지만 다시 시도하는 네 모습이 정말 대단해."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과정 칭찬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런 칭찬을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거의 없으니까요.
직장에서도 "야근하느라 고생했네, 그 끈기가 정말 대단해"라는 말보다는 "결과가 좋네, 잘했어"라는 말을 훨씬 많이 들어봤죠.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걸 충분히 전해주는 것입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야"
"엄마 아빠는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
"실수해도, 못해도, 엄마 아빠는 널 사랑해"
이런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이를 야단친 후에도 꼭 해주어야 하는 말이죠.
다만 칭찬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 '내 아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결과에 도달했을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노력, 집중, 끈기, 시도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겁니다.
육아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 역시 매일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배워갑니다.
때로는 또 "우와, 똑똑하다!" 하고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금방 "아, 그보다 네가 끝까지 노력한 게 정말 멋졌어"라고 다시 말해줍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와 함께 배워가는 부모면 충분합니다.
'머리 좋다'는 말 대신 '네가 해낸 그 과정'을 봐주세요. 그때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겁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아이가 무언가에 애쓰는 모습을 30초간 관찰하세요.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딱 한마디만 건네주세요. "네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 엄마(아빠) 눈에는 그게 가장 멋져 보여."
'재능'을 칭찬받은 뇌는 실패를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과정'을 칭찬받은 뇌는 실패를 '학습 기회'로 받아들인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하는 네 모습이 훨씬 더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