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상처가 내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것을 막는 현실적인 방법
표면적 이유는 육아 방식의 차이였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늘 화를 내거나 감정을 폭발시켜 저를 움직이려 했고, 저는 더 이상 그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 없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저에게는 지켜야 할 교육관이 있었고, 무엇보다 제 아이들에게 같은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늘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아이였습니다.
엄마는 자주 화를 냈고, 구두칼로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지적부터 하셨죠. 세 살 위 누나가 혼나거나 부모님과 싸우는 모습을 볼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저는 자연스럽게 제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이해할 수 없는 분노'였습니다. 왜 화를 내는지, 언제 폭발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제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보다 예측 가능한 것들 - SF 영화, 음악, 운동 같은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에 빠져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거나 공감받는 경험 없이 어른이 되었고, 그것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는 '북유럽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북유럽에 가본 적도 없지만, 막연히 지혜롭고 다정하면서도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그런 아빠를 꿈꿨습니다. 제가 받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에게는 꼭 주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습니다. 특히 말이 느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첫째 앞에서 저는 자주 폭발했습니다.
"야! 이게 뭐야!"
제 입에서 나온 그 말투, 그 억양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이 거울처럼 제게 비쳤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녔기에 당연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8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직접 가르친 아이들만 400명이 넘지만, 정작 제 아이와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교사 관리도 늘 실패했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교사들은 불만을 품고 떠났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며,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서툽니다. 이상하게도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보고서는 잘 쓰고, 아이들에게 '왜'를 설명하는 건 잘하는데, 정작 마음을 읽는 건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어린 시절에 있었습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예측 불가능한 양육 환경'에 노출된 아이는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부모가 안전 기지가 되어주지 못하면, 아이의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 감정적 연결보다 회피를 선택합니다.
제게 부모님은 위로와 안정을 주는 존재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편해진 것입니다.
이 깨달음, 즉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아는 것 - 바로 '메타인지'가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메타인지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내 감정과 행동 패턴을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하는 능력입니다.
40대 후반인 지금, 저는 부모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30대였던 그분들도 미숙한 존재였고, 먹고사는 게 더 급했던 시절에 저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을 겁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맞고 자랐고, 학교에서 맞는 게 당연했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이해와 별개로, 저는 부모님과 적절한 거리를 두기로 했습니다.
관계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고, 특히 제가 무너지면 제 아이들도 무너집니다. 연세 드신 부모님께 이래도 되나 싶어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선을 넘으면 단호하게 경계를 지킵니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것이 다음 세대로의 감정 전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부모님과의 거리두기는 단절이 아닌, 건강한 경계 설정이었습니다.
아침 7시 42분.
"아빠, 다 치웠어요!"
큰아이의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식탁은 반짝반짝, 그릇들은 설거지대에 가지런히. 하지만 제 눈에 들어온 건 켜진 TV 소리와 부엌의 환한 불빛뿐이었습니다.
"야! 이게 뭐야? 불도 안 끄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습니다. 이 순간, 저는 제 어린 시절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늘 잘한 것보다 못한 것만 지적받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가족과의 감정적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특히 자녀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가 내 일부라고 느끼기에, 아이의 실수가 곧 나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제 안의 '엄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아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감정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건 착각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가 있을 때 서로를 더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 서로를 그리워할 여유를 줍니다.
지적하고 싶은 순간, 무조건 1분을 기다립니다. UCLA의 대니얼 시겔 교수는 "60초의 멈춤만으로도 편도체의 과각성이 진정된다"고 말합니다. 이 짧은 시간이 '야! 불도 안 끄고!'를 '다음엔 마지막 점검까지 하자'로 바꿔줍니다.
소리를 지르면 아이는 도망가지만, 침묵은 아이를 집중시킵니다. 10초의 침묵 후 "오늘 설거지 잘했네. 대견하다"로 시작하는 대화는 아이의 방어막을 내리게 합니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거리를 두는 기간 동안, 저는 아이들에게 숨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빠도 어릴 때 할머니가 무서웠어. 할머니가 자주 화를 내셨거든. 그리고 아빠가 느끼기엔 일방적으로 강요하시는 경우가 많았어."
잠시 멈추고 아이들의 눈을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대로 아빠와 너희를 사랑하시는 거야. 사랑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거든. 지금 아빠와 할머니는 서로 거리를 두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덧붙였습니다.
"중요한 건, 너희가 잘못한 건 전혀 없다는 거야. 이건 어른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너희에게는 다르게 하고 싶어. 화가 나도 1분 기다리고, 너희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숨기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더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너희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두미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자기인식 능력이 높을수록 자녀는 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안정감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저는 여전히 공감 능력이 부족하지만, 대신 논리적 설명에는 강합니다. 이 장점을 살려 아이들에게 '왜'를 설명하면, 아이들은 잘 납득하고 따라옵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은 부모나 과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를 형성한 뿌리를 이해하고,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기 위함입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적어도 인식하고 성장하는 부모는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도 '메타인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가?
가끔은 멈춰 서서 상상해보세요.
20년 후, 내 아이는 자신의 아이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 아빠는 가끔 화를 냈지만, 항상 사과할 줄 알았어"라고 말할까요? 아니면 "아빠가 무서워서 내 마음을 말하지 못했어"라고 기억할까요? 이 상상 하나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감정의 대물림을 끊는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나 자신도 함께 치유하게 될지 모릅니다.
종이를 꺼내 두 가지를 적어보세요. '나와 부모님은 어떤 사이였는가?' 그리고 '아이가 보는 나는 어떤 부모인가?' 차이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부모와의 '애착 상처'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 메타인지는 이 무의식적 반복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열쇠다.
"아빠가 지금 화가 났어. 1분만 시간을 줄래? 그다음에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