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 아래

by 행운의 여신


늦은 오후,

저는 가까운 공원을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찍 찾아온 여름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수영복을 입은 채 웃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은 나를 미소 짓게 했지만
업무와 집안일, 그리고 사람들과의 작은 마찰들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겹겹이 쌓여 마음 한편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조금 멀리서 제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볍게책을 하고 있던

그렇게 산책을 하던 중 휴대폰 진동이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S 씨의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자 걱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사실 좀 힘든 일이 있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저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 사람이... 나한테 너무 기대고 싶어 했던 것 같아.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기대가 나를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중요한 사실도 나에게 숨겼고..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끝날 줄은 몰랐어.”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녀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잡함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침묵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 혹시... 연락할 수 있어?”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습니다.


“아니, 지금은 연락 안 해.

그냥… 나 혼자 생각 좀 하려고,

혼자 있고 싶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며칠 뒤,
저는 그녀와 함께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넓은 창문 너머로 제주도의 바다가 보였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카페 안은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와 커피 머신의 소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사랑도 중요하지만,

‘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


그녀는 잠시 한숨을 쉬었습니다.


“내가 너무 사람 말을 쉽게 믿고,

또 너무 무턱대고 모든 걸 내어줬던 것 같아.

근데 그의 대한 믿음이 깨졌을 때…

정말, 너무 아프더라.”


저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아직 아픔이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힘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사랑은 서로를 채워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잃지 않는 것이기도 하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좀 어때? 괜찮아?”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응. 그 사람을 사랑한 내 마음을 후회하진 않아.
다만… 나를 좀 덜 사랑했던 게 아쉬워.

이제는 나를 좀 더 소중하게 다루려고 해.
사랑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다 내어주는 게

좋은 사랑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제 손을 가볍게 잡았습니다.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게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이더라.

그래야 진짜 사랑도 오래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은 답답했던 제 마음에 하나의 메시지처럼 다가왔습니다.


며칠 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사랑했었다고 말하며 그를 탓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 페이지를 조용히 덮었습니다.


그날 저는 바다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름 햇살은 따뜻했고, 사람들은 가볍게 웃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깊은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며칠간의 대화를 천천히 되새겼습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상대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를 북돋는 여정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건강하고 오래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제 인생과 제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저 자신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 마음을 제가 먼저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제 행복의 주인은 결국 저 자신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사랑을 하더라도 제 감정의 경계를 지키겠다고. 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을 만들어가겠다고. 사랑도, 저를 지키는 일도 모두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다만… 사랑에 빠지면 과연 그 다짐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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