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대할 때, 저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노력합니다.
누군가를 제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온 마음으로 허용해 드리는 일이 사랑이라 믿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해석 없이 바라보는 깊은 허용의 시선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미워 보이는 점이나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조용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아마 누군가가 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다면 나 역시 그 사랑을 배우며 더 많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사랑’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순간 속에서 피어나는 빛이라는 것을요.
제주에서 만난 한 후배가 있습니다.
제주 바람처럼 맑고 순수한 아이, H.
햇살 아래 반짝이던 덧니 미소,
제주 방언이 살짝 섞인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귀엽게 패인 보조개까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언니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었지만,
사실은 제가 그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곤 했습니다.
H는 언제나 단단했습니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신을 믿었고,
그 믿음이 그녀를 고요하고 단아하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밥 한번 먹자고 약속했던 시간이 흘러
연락이 잠시 뜸해졌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조용한 연락이 왔습니다.
“언니, 저… 임신했어요.”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그 짧은 정적을 뚫고 올라온 감정은
놀라움이 아니라 벅찬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 정말 잘됐네요.”
떨리는 목소리로 축하를 전하며,
제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차올랐습니다.
그녀의 한마디는 제 안의 햇살을 다시 깨워주는 소식이었습니다.
얼마 후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환했습니다.
그 웃음 사이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아기가 아기를 품고 있구나.’
그 순간, 이유도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언니, 사실 저는 서른 전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싶었어요.
근데 이제는 어렵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됐어요.”
그 말에는 두려움보다 평온함과 행복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혼식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며, 그녀는 살짝 웃었습니다.
“아이 먼저 만나고, 그다음에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저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이미 모든 대답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는 건 축복이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그녀가 마치 제 마음을 읽은 듯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태명이 ‘축복’이에요.”
그 순간, 제 마음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삶을 뒤흔드는 큰 변화는
언제나 폭풍처럼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낯선 상황이 우리를 흔들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새로운 자신으로 피어나는 시작의 씨앗이 숨어 있기에 두려워말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믿고 내맡겨야 합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요.
모든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결국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것을요.
그 길의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조용하고 따뜻한 빛,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축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