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산에 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운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마음에 오래 남는 이야기를 하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삶이 어딘가 막혀 있다고 느껴질 때, 살아 있는 물고기를 방생해 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낚시로 잡히거나 횟집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그 생명을 놓아주는 일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절이나 사찰에서 잉어나 붕어를 방생한다는 이야기는 익숙했지만, 횟집에서 물고기를 사서 방생한다는 발상은 제게 무척 낯설고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물고기에게도 동화 속 이야기처럼 기적의 순간이 허락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오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며칠 뒤, 조심스럽게 첫 횟집을 찾았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방생용으로는 물고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며, 대신 낚시용품점에서 기포기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책 속에서는 단순해 보였던 일이 현실에서는 여러 준비와 고민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제야 생명을 다룬다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기포기와 낚시통을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어느 날, 시장 안 작은 횟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회는 뜨지 않고 살아 있는 물고기만 살 수 있을까요? 방생하려고 합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시던 사장님은 이내 차분히 필요한 준비물과 주의할 점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방생이 가능한 어종과 그렇지 않은 어종, 생태계를 해치지 않기 위한 이야기, 해동용궁사에서는 방생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 주셨습니다. 이동 중 물고기가 죽을 수 있다며 수족관의 물과 함께 낚시통에 담아 주시고, 산소 기포기까지 직접 달아 주셨습니다. 그날의 친절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동 중 물고기들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예전에 지인들과 함께 다녀왔던 기장 쪽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차로 바로 접근할 수 있고 수심도 깊어 방생하기에 더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차를 운전하며 가던 중, 낚시통 안에서 물고기들이 물이 튀어 오를 만큼 힘차게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제 몸을 스쳤습니다. 돌고래가 주파수로 소통하듯, 물고기들이 말 없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의 문턱에 놓인 생명을 살려 주는 일을 ‘방생’이라 하며, 큰 공덕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관상에서 심상이 가장 중요하듯, 결국 모든 일의 시작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생은 아무 생명이나 놓아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육된 동물이나 병든 생명,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은 방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방생은 물고기를 물로 돌려보내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소, 위로의 말,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 이웃을 돕는 작은 손길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방생일 것입니다.
“잘 가세요. 가서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물고기들을 바다로 보내며, 그 말은 꾸밈없이 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도 수족관 속 물고기처럼 각자의 시간 속을 헤엄치다 언젠가는 끝을 맞이하는 시한부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그날 저는 물고기들 덕분에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저를 보내신 존재의 마음을 아주 잠시나마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로 인해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방생을 통해 저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배웠습니다. 매일의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작은 방생을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인간뿐 아니라 작은 곤충과 동물, 이름 없는 존재들까지도 각자의 역할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새겨졌기에,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뛰는 심장과 수많은 세포들처럼, 모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조용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