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우리동네 맛집탐방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1985년인가. 86년인가. 위아래 서열이 좀 엄격한 그런 회사였는데, 입사한 지 한 달쯤 됐을까 성질이 지랄 맞은 선배가 술 한잔 사겠다고 나가자더군요. 신삥에게 선임급 선배가 술을 한잔 사겠다? 이건 뭔지 몰라도 대충 좀 밟아주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그때 그 어린 나이에도 알겠더라고요. 한마디로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거죠.선배 눈빛이 먹이를 앞에 둔 늑대처럼 이글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 저는 몇몇 선배한테도 돌아가면서 다구리를 당했는데요. 공교롭게 데려간 집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하나도 겹치지 않았지요.일미옥, 두꺼비 부대찌개, 수원 만두, 남문 설렁탕, 석산민물매운탕 등등 모두 수원의 내로라하는 맛집들이었다는 거.(나중에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때 그들은 날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그중 몇몇은 저 세상으로 떠나갔고.
암튼 지랄 선배가 데려간 집은 수원 북문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던'대길목살구이'. 4~5평쯤 됐을까. 좌식 입식 합쳐 탁자가 5개 정도였던 거로 기억됩니다. 좁은 식당 안은 메케한 연기로 가득했고요. 이미 거나하게 한잔 한 손님들의 악다구니로 어수선했지요. 지금은 종류가 많이 늘었지만, 그때 메뉴판에는 목살과 돼지껍질 허파만 있던 걸로 기억됩니다. 착하디 착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썰어준 스테이크 만한 크기의 두툼한 목살도 특별했지만, 무엇보다파절이와 무생채, 그리고 고기를 찍어먹는 오묘한 간장 맛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맛은 지금도 변함없이 여전합니다) 당시로는 모두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요. 고기가 익으면 아주머니가 커다란 가위로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 툭툭 잘라주는 것도 특이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지랄 선배의 눈은 여전히 이글거렸지만. 암튼 그 맛에 힘입어 마신 소주병이 쌓여가면서 선배의 씨부리는 소리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랄선배 덕분에 대길목살은 그날 이후 저의 단골집이 되었을 뿐더러 후배가 입사하면 이곳으로 데려와 한잔 돌리는 게 전통이 되었지요. 많은 목살구이집이 있지만, 수원에선 지금까지 대길목살구이가 단연 원탑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느 날 주인과의 대화. "혹시 아버지가 누구 아니슈?"(아주머니)"맞는데요" (나)"어쩐지 닮았더라니. 우리 집 단골이신데"(아주머니)"헤헤 그럼 2대째 단골이네요." (나) 그날 이후 대길목살구이는 내 단골 목록집에 포함되었고, 그 후 나의 자식이 대길 목살구이를 드나들면서 3대 단골집이 되었네요.
사족 - 현재 대길목살구이는 전에 있던 위치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겼습니다. 메뉴도 삼겹살 차돌박이 등등 여러 개 늘었지만 그 어느 하나 목살만큼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맛입니다. 식사로 제공되는 된장찌개는 반드시 먹어 봐야 할별미랍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의식처럼 행하시던 고기 자르기는 이제 아들 몫이 되었지만, 특별히 단골이 부탁하면 아주머니가 가위를 드시는데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건지금도 불가사의입니다. 아무쪼록 주인 어르신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