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동네 맛집 탐방
전에 다니던 직장에 인천 S고 출신 후배가 있었는데요. 만사가 유쾌하고 낙천적인 친구였어요. LG트윈스 골수팬에다 맛집 찾아다니기를 좋아해 그런 면에서 둘이 죽이 잘 맞았지요. 그 친구 한번 입을 열면 끝이 없었어요. 인일여고의 ‘여신’ 황신혜와 동인천 어딘가에 있다는 용화반점, 그리고 비운의 농구선수 강동희에 대해 구라를 얼마나 풀던지, 인일여고 다니던 황신혜를 실물 영접했다는 썰은 100번, 용화반점 볶음밥 얘기는 500번도 더 들은 거 같아요. 특히 용화반점은 입에 달고 다녔어요. 요즘 중국집 볶음밥에 계란 프라이 올려주는데 거의 없잖아요. 용화반점에 가면 볶음밥에 계란프라이가 그림처럼 올려져 있다는 등 중국인거리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독보적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는 등. 조금은 과장이 섞인 허풍같앆지만 어찌 됐건 그 친구 덕분에 용화반점은 반드시 가야 할 '꿈의 볶음밥'집으로 내 뇌리에 각인됐답니다.
중국집 볶음밥 하면 저도 추억이 하나 있는데요.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볶은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안양 살던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삼원극장 주변에서 장사를 하시던 친구 친구어머니는 "친구 왔으니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이나 먹으렴"이라며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그때 친구 어머니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암튼 친구 따라간 중국집에서 생애 첫 볶음밥을 먹었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전 지금도 그날의 그 볶음밥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물론 그 집도 계란프라이가 올려져 있었고요. 돼지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애기손톱 만한 가짜고기가 같이 볶아져 나왔는데. 아! 그리고 그 꼬들밥. 그 후 먹었던 모든 볶음밥은 그 집에서 먹었던 맛을 기준으로 평가되었지요. 불행히도 그날 그 볶음밥보다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네요. 먼 훗날 안양을 들를 일이 있어 그 중국집을 다시 찾아갔지만 거리는 이미 상전벽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더군요.
마침내 용화반점을 다녀왔습니다. 웨이팅이 있다는 소리에 겁을 잔뜩 먹었는데 평일인 데다 오후 5시 정도 도착하니 식당 안이 한산하더군요.볶은밥만 시키기 뭣해서 탕수육 작은 것과 짬뽕도 시켰어요. 후배 말대로 진짜 계란프라이가 올려져 있어 저도 몰래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요즘 말하는 '옛날 볶음밥'. 결론부터 말하면 후배 말이 맞았습니다. 이럴 때 '명불허전'이란 말을 쓰는 거지요. 좋았어요. 그토록 찾아다니던, 고 2 때 안양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습니다. 윤기가 흘렀고 꼬들밥이라 밥 알이 입안에서 굴러 다니더군요. 기가 막힌 맛이었습니다. 짬뽕 국물대신 주는 ‘계란탕’의 맛도 일품이었고요. 누가 그러더군요. 그 집이 잘하는지 계란탕을 먹어보면 안다고요. 최고였어요. 계란이 뭉치지도 않고 마치 실처럼 떠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밥이 금방 굳는 것을 봐선 돼지기름을 쓴 거 같은데 그걸 직접 물어보질 못했네요. 짬뽕맛에 빠져 정신이 없었거든요.
사족 - 볶음밥도 그렇지만 사실 그날 짬뽕이 압권이었답니다. 진짜맛있더라고요. 독특한 육수맛에... 탕수육은 또 어떻고요. 마치 부드러운 돈가스에 소스를 얹은 ‘겉바속촉’의 전형을 보는 듯했어요.용화반점을 다녀온 느낌은 한마디로 이랬습니다. " 후배가용화반점 용화반점 노래를 부른 이유가 이래서였구나!" 용화반점 주변에 사시는 분들 참 좋으시겠어요. 다음번엔 짜장면을 먹어봐야겠네요. 잡채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