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 동네 맛집탐방
하루 일과를 끝내고 파김치가 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식당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의 어깨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바닥이 흥건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네요.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번듯한 우산을 들고 들어 오는 이 없습니다. 우산 살 하나가 부러져 있거나 찢어지거나 거의 수명을 다 한 우산들입니다. 간혹 우산 없이 온몸이 젖은 채로 뛰어 들어오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루 일당 10만 원. 그것도 일이 있으면 다행입니다. 그나마 오늘은 운이 좋아 저 멀리 여주까지 가서 겨우 일당을 채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라면 한 그릇으로 때운 점심 탓에 허기가 몰려왔지만, 밥 맛을 잃은 지 이미 오랩니다. 그럼에도 서그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습니다. '서그네'의 야채 김밥 을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때문일까요.
처음 '서그네'에 가서 김밥 한 줄과 우동을 먹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이었는데 김밥 한 줄에 2천 원. 가락국수 짜장면 쫄면 잔치국수가 각각 4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들어오는 손님이 하나같이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대부분 “김밥 한 줄이요!” “김밥 두 줄이요!” 하면서 알아서 돈 통에 2천원 4천원을 집어넣습니다. 주인은 얼마를 넣었는지 일일이 확인도 하지 않습니다. 주인과 손님 간의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주인이 포장된 김밥을 건네면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휙! 사라집니다. 더러는 김밥 한 줄과 쫄면 하나, 또는 잔치국수를 시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식사를 합니다. 이 맛있는 음식 앞에서 그 누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서그네는 이 동네 주민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그네는 그 흔한 분식집이지만 그 내공이 상당합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쫄면 우동 짜장면 그리고 김밥이 전부입니다. 최근 가보니 짜장면이 메뉴에서 빠졌더군요. 잔치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잔치국수를 먹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메뉴판을 보는 순간 선택지가 늘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동을 먹으러 갔다가 쫄면을 시키거나 잔치국수 먹러 갔다가 쫄면으로 바꾸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 때면 곱빼기를 시켜 같은 일행과 반씩 나눠 먹으면 됩니다. 물론 야채 김밥 주문은 기본입니다. 얼마든지 무제한 마실수 있는 옥수수차 역시 이 집의 자랑입니다.
어느 동네건 외지인보다 동네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 있습니다, 서그네도 그런 곳이지만 그냥 ‘맛집’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서그네는 요즘 주민들이 자주 찾는 주민자치센터 보다 더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가끔 주차를 하느라 애를 먹지만 입맛이 없을때나, 비가 오는 울적한 날 저는 서그네를 찾아 갑니다. 한 때 눈매가 푸르던 주인 아저씨도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 하네요. 동네마다 숨겨져 있는 이런 '보석'같은 곳이야말로 진정한 맛집이 아닐런지요. 언제 한번 수원화성을 찾아와 화서동을 지나갈 일 있으면 서그네를 꼭 들러 보세요. 야채 김밥 정말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