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roboros May 20. 2024

우울증인줄 알았는데 조울증이래 1

내 질병과 공존하기로 했다.

-프롤로그-

보통의 기분을 알 순 없지만


 우울증은 대중적이게 잘 알려진 질환이지만 그에 비해 양극성 장애는 우리 모두에게 생소한 질병이다. 흔히 '조울증'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는 제 1형과 2형으로 크게 나뉜다. 두 질환 다 기분이 수시로 변화하며 양 극단을 오간다는 것에서 그 결을 같이 하지만 제 1형은 조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제 2형은 1형에 비해 약한 경조증이 나타난다. 그리고 1형에 비해 증상이 약한 대신 재발이 심하다. 쉽게 말해 제 1형이 심한 열감기라면, 2형은 자주 가벼운 기침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 같은 거다.


 나는 제 2형 양극성 장애 환자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정신병원을 다녔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우울을 경험하고 치료가 필요하다 판단한 부모님이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라 나는 내가 ‘미쳐서’ 병원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      


 제 2형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우울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제2형 양극성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경조증은 2.4%(10년으로 환산 시 1.5개월)에 불과하지만 우울증은 93.3%(10년으로 환산 시 9년 4개월)를 차지할 정도로 대부분의 증상은 우울증이다.(「조울병에 대한 거의 모든 것」, 시그마북스, 2021)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양극성장애는 오진이 많은 질병 중 하나라고 한다. (Medically reviewed by Akilah Reynolds, PhD — By Carolyn Farnsworth on October 13, 2023 ) 나의 경우에도 '우울장애'로 오진을 받은 것이다.

 

대부분의 제 2형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초기에 우울증으로 오진을 받고, 양극성 장애로 제대로 진단받기 까지 평균 십 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Lish JD, Dime-Meenan S, Whybrow PC et al. The National Depressive and Manic-Depressive Association (DMDA) survey of bipolar members. J Affect Disord. 1994:31;281-294.)

제 1형 양극성장애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조증에 비해 증상이 가벼운 경(輕)조증이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 자신조차도 자신이 조증상태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갈때가 많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경조증은 조증과 다르게 일상생활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환자들은 우울한 시기에 주로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양극성 장애 환자들의 치료는 제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약을 먹고 어느정도 나아진다 싶으면 병원을 잘 찾아가지 않게 되고 조증이나 우울증으로 인해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때야 비로소,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나 역시 치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담이나 놀이치료 같은 심리치료 없이 약을 먹는 게 전부였고 약을 먹다 괜찮아진 것 같으면 병원에 가지 않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병원을 찾는 일이 십 년 넘게 반복되었다. 한 병원을 꾸준히 다니는 일도 없었고 필요할 때 아무 병원이나 찾아갔다. 약만 먹으면 상태가 괜찮아졌기에 약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내 진단이 늦어지고 증상이 악화된 결정적 이유다.     


 우울이 지속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괜찮은 날도 있고 어떤 때는 자신감이 넘쳐 살만한 날도 있었다. 그저 ‘약을 먹으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우울이 없는 날은 '운 좋은 날' 정도로 생각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과도한 자신감으로 감당 못 할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별로 없어 며칠을 밤을 새기도 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으로 지내다가 일을 그르치면 ‘좆됐다’를 외치며 다시 우울로 빠지곤 했다. 나는 우울이 없는 상태를 ‘자신감이 충만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알고 평생을 살았다.     

 병원의 중요성을 안건 대학에 다닐 때였다. 대학에서 심리 공부를 하며 '신경증'과 '정신병'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고 둘 다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단걸 알았다. 약을 먹다 안먹다 하는 것은 아예 안먹으니만 못하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아, 내가 이래서 나아지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에게 맞는 병원', '나에게 맞는 의사 선생님'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가족도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아서 고생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고통을 털어놓으려니 나는 깐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 병원을 가도 나에게 붙는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눈에 띄는 무기력증과 지속적인 우울감.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도 주기적으로 살만한 날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자신감이 넘쳐서 실제로 일이 잘 풀리는 날도 있었다. '우울이 없는 삶은 이런 거구나!' 하며 그런 날들을 즐기다가 '좆됐다'를 외치기를 수십 번을 반복했다. 과한 자신감과 충동성으로 인한 실패를 여러 차례 맛보고 나면 다시 우울이 찾아와 '나는 안 되는구나'하며 좌절하기를 또 몇 년정도를 반복했다.     


 내가 처음 조울증을 진단받았을 때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평생을 나를 괴롭히던 녀석의 정체를 까발리던 순간이었다. 지속되는 우울감으로 인한 무기력증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조된 기분으로 인해 과도한 자신감과 충동성으로 폭력성까지 보이고 자기 파괴적 행위에 더해 환청까지 경험하기에 이르자 나는 병원에 달려가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환청을 환청이라고 알아차리고 병원에 바로 갈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동안 심리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나에게 감사할 정도였다.     


 그저 가벼운 우울증인줄 알았는데 조울증이었다니.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정상이 아니었다니. 남들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니. 말도 안 돼. 나는 그럼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거지?  날아갈 듯 가벼운 몸과 황홀한 기분이 조증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조증도 우울증도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는 걸까? 온갖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내가 ‘정상’이라고 믿었던 세상이 무너졌다.

'지루한게 괜찮다는 뜻이에요'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루한게 괜찮고 평온한 상태라니. 나는 잘 이해 할 수 없었다.


보통의 기분을 알 순 없지만, 어쨌든 나는 양극성장애 환자다.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한다. 정신병은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공존'과 '관리'의 개념이라는 것을 정신병원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한다니, 맥이 풀리고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주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이해 할 수 없었던 나의 행동에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무분별한 소비, 과도한 흥분, 폭력성, 결과가 나쁠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안 좋은 일들, 갑자기 바닥으로 처박히는 기분... 이 모든 게 양극성장애의 영향이었다. 그동안 난 내가 그저 변덕스럽고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내 주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 인생을 망치던 행동들에 이유가 있었다니!

이유를 안다면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나는 내 병과 공존하기로 결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