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재발견
1. 나의 능력과 나의 성공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한 번 친 나의 공은 만루 홈런이었다. 생애 첫 사업이 대박 난 것이다. 나는 야구에서 마치 대타자 추신수나 이승엽쯤 되는 줄 착각했다. 당시 나는 영웅이었다. 필자가 공동 창업으로 일궈낸 (주)한국 교육미디어는 매출이 3억(95‘), 30억(96’), 70억(97‘), 122억(98’), 204억(99‘), 288억 원(2000년)이라는 경이적인 매출 신장으로 급성장하여 직원들은 환호했으며, IMF 당시 우리 회사는 업계의 신화적인 회사가 되어 드디어 2003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은 나의 능력, 믿음, 열정과 노력의 결과다. 우리의 성공신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당시 홈런 친 그 성공방식의 베팅 반복이 미래 병살타가 되고, 삼진아웃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세월이 한 참 지난 뒤였다. 정말이지, 나의 성공 핵심이었던 그 열정과 믿음이 훗날 나의 실패와 몰락의 원인의 근원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2. 나의 사전에 실패는 없다
계속되는 성공에 나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모든 실패나 고난은 당사자의 무능이나 노력 부족의 산물이라 단정했다. 나는 자만. 오만으로 가득 찼으며 그런 일에서 예외라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히 나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일은 먼 나라 남의 일이었을 뿐, “망한다는 생각” 1도 해 본 적 없었다. 근거 없는 미래 낙관론으로 가득 찬 긍정 편향자였다.
지나고 보니, 당시 나는 잘 포장된 고속도로의 능숙한 운전자였을 뿐이었다. 이 세상 모든 도로는 고속도로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즈니스에는 국도도 있고 산길도 있으며, 때로 변변한 길조차 없을 때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사업은 고속도로 주행법만으로 미래 사업을 장기적으로 이끌어 갈 수 없다. 긍정 마인드만으로 사업할 수 없으며, 부정적(Negatiive) 시나리오도 있어야 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3. 우리 직원들 애사심, 충성심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성실히, 충성스럽게 각자 맡은 바 열심히 잘하고 있으며,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과 충성심은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나는 직원 충성심을 무한 신뢰했으며 직원들과 소통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회사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 ‘ 는 속담이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사장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했고 나는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양 어깨를 으쓱하고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측근들을 함부로 믿고 체크를 게을리하는 ‘믿음의 함정’에 빠져들었으며, 직원들의 충성심에 대한 본질을 보지 못했다. 조직과 시스템은 항상 상호 견제와 어느 정도의 긴장을 가져야 유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직원들에 대한 인기는 순간이며 ‘구름과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달콤함에 빠져 허공에 손 저으며 착각 속에 살았다.
4. 친구들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10여 개 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수료하는 등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졌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연세대 법무대학원, 광운대 부동산 경매 최고위 과정, 카이스트 벤처 최고위 과정, 우크라이나 비지팅 스쿨 등이다. 중고교 동창회도 총무 5번, 회장 2번 등 열심이었다. 이것 외에도 다양한 모임에서 다양한 영역 사람들과 접촉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과 폭넓은 인맥관리를 하다 보니 ‘혹’ 내가 필요하면(‘어려우면 ‘이 아니라)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라는 생각, 주변 지원군에 대한 확신이 확실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살짝 어려우면 도와주지만, 많이 어려우면 피한다. 사람들은 가능성 없으면 떠난다. 나는 이런 인간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나의 주변에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던 그들은 나를 빛내주러 모인 게 아니라, 나의 성공을 배경 삼아 자신을 빛내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5. 망해도 ‘설마’ 저 정도까지야 되겠나?
지금도 그렇지만, 주변에 사업하다 어렵게 되었거나 망한 사람들이 많다. 당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다가 저 지경이 되었을까? 사전에 좀 준비할 것이지, 평소에 아파트나 땅이나 뭐든 좀 미리 챙겨뒀으면 저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텐데... 쯔 쯔’라며 속으로 그들의 방심을 비웃었다.
과연 나는 예외였을까? 나 또한 그 지경이 되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파트 한 채는커녕 거의 길바닥에 내 던져질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통장잔고가 바닥나 경조사에도 참석 못하고, 손님 만날 밥값이 없어 돼지 저금통을 털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방심과 오만의 참담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