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베스트셀러 ’라고 다 명작일까?

사장의 책 쓰기

by 최송목

나는 가끔 우리가 ‘명작’이라 규정하고 있는 과거의 영화나 소설 등을 다시 보고 실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이걸 누가 명작이라 했는가?” 무엇이 명작의 기준이며 누가 정하는가? 매출 관객수 기준인가? ‘좋아요’, 평점 기준인가? 등 여러 가지 의구심을 많이 들게 했던 작품들이 종종 있었다. 아마도 동시대에 많은 대중들이 즐겨하고 공감했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이 사고 봤을 터이니 인기를 얻으면서 명작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주로 상영 횟수, 판매수, 관객동원수라는 외형적 상업적 기준일 것이다.


요즈음 천만 관객 돌파한 영화들 중에서도 수준미달 작품이 수두룩적하다. 이는 쿼터제니 뭐니 하면서 유통사들의 상업적인 머니게임의 결과일 수도 있고, 보편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SNS 등 대중적인 마케팅과 인기몰이를 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영광이고 작품의 품질을 검증받는 잣대가 될 수 없다. 또한 작가는 그것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손 끝에 스며드는 순간 그런 마음이 책에 녹아들어 작품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다.


출판사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다. 잘 팔리는 것이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작가가 책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독자와 시장의 중간매개자인 출판사의 의중과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문, 서점 등 각종 매체에서 많이 선전하고 있는 책의 제목, 소개글, 서평 등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떻게 책을 쓰고 제목과 목차를 어떻게 작성해야 독자들이 좋아할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 윤곽이 어느 정도 나온다. 출판사는 나와 독자 간의 접점을 이어주는 교량역이며, 당신이 대중과 잘 영합하여 책이 잘 팔리기를 염원하는 중매쟁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이 시대정신과 적절히 잘 부합되었다는 뜻이다. 세상의 흐름과 세상 사람들의 감정과 잘 소통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그 점이 책의 수준이 높고 좋은 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중과 영합한 저급한 수준의 책일 수도 있다. 시대흐름과 내 생각과의 간극(Gap)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시각에서 내가 대중에게 다가갈 것인가, 나를 고집할 것인가, 영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는 그 방향 선택은 순전히 작가 본인의 몫이다.

누구나 베스트셀러를 꿈꾸면서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러나, 책을 낸다고 누구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책을 낸 자체로 머문다. 책 쓰기도 다른 인생의 직업이나 장르처럼 경쟁이 있지만, 동시에 비경쟁 구도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독자들에게 선택되는 구조에 들지만, 철저하게 책 그 자체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좋은 책이란 나의 정체성, 독자라는 시대 수준, 출판사의 시장흐름이라는 3자간 구도의 균형을 잘 이루는 책을 말한다. 책을 내는 기본 요건이 작가의 정체성을 담는 작가 생각의 유니크함이지만, 그 유니크함이란 개인적인 독특함과 개인적인 것이기에 타인과의 공감이라는 개념과 개방성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수의 대중과 100% 공감대를 가진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점에서 다수 독자들 공통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점을 잘 발견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촉으로 상상하도록 여지를 남기는 선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여기서 글 쓰는 이들은 갈등할 것이다. 자기가 쓰고 있는 책이 독자가 보고 싶은 책인가? 내가 내고 싶은 책인가? 출판사가 원하는 책인가? 나의 배설인가? 불만인가? 편집인가? 독창인가? 여기서 독자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것이고, 출판사는 상업성을 의미한다. 작가는 책 쓰기의 주체이고 본인의 정체성을 뜻한다. 어느 책 쓰기 작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독자의 언어로, 독자의 책으로 쓰라’고 강조했다. 일부 맞는 말이지만 그리 되면 “작가의 영혼은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베스트셀러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작가의 지나친 독자 편향은 자칫 자기의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시대 수준이란 어쩌면 나와 100%로 싱크로(동기화) 일 경우도 있지만, 나이 세대나, 지역, 환경, 경험, 지식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책 쓰기는 이런 개인적인 정신을 전체 보편적인 수준에 맞추는 작업이다. 너무 맞추면 식상하고 동떨어지면 생뚱맞은 글이 된다. 글을 쓰고 나면 결과는 세 가지로 나뉜다. 시대를 너무 앞서는 천재적 글이 되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거나, 시대에 뒤처진 꼰대 글이 되어 외면받거나, 독자에게 지나치게 아부하여 글을 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글이다.


별 내용도 없으면서 과도한 선전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있고, 내용은 탄탄하지만 대중이나 시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책도 있다. 요즈음 초베스트셀러인데 떠들썩할 뿐이고 내용이 없는 책이 많이 나돌고 있다. 국회의원, 정치가, 사업가, 유명 연예인들의 자전적 홍보물 성격의 책들이 수천수만 권이 그렇게 서점에 잠깐 나왔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있다.


엄청난 내용인데 시대가 알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안 팔리는 책의 대표적 사례가 쇼펜하우어 일생의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다. 1818년 그가 30세 때 출판한 책인데 1년 동안 100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철학이라는 것을 대학교에서 강의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여겼던 사람으로 적극적인 홍보가 미흡했던 것도 한 몫했다. 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10년 걸려 완성한 책이었지만,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칸트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실제로 상당한 세월이 흐르고서야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외부의 인정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판매에만 기준점을 두어 책을 내게 되면 하나의 관종이고 비즈니스가 된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가 되려고 애쓰되 너무 애걸복걸 말아야 한다. 베스트셀러를 희망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작가의 기본적인 속성이고 욕망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걸 버릴 수는 없지만 그걸로 인해 펜대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골프에 비유하자면, 골프 스윙의 핵심은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추는 것이다. 대다수 아마추어 골퍼들의 특징은 멀리 칠 욕심만 가득하여 어깨 힘을 잔뜩 주는 바람에 게임을 망치곤 한다. 여러분은 지금 초보 작가로서 이런 아마추어 골프와 같은 상황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글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예술작품이다. 많은 글쓰기 작가들, 출판사 사장들은 작가를 부추긴다. 꼭 베스트셀러 되시라고. 그래서 그리 될 것이라고 자기 최면하고, 스스로 다짐하고, 기대도 한다. 대부분 그런 희망에 부풀어 책을 쓴다. 그러나 그건 저들의 욕심이고 바람일 뿐이다. 그래야 수입이 될 테니까. 이때 작가의 적정한 타협 마지노선은 출판사가 당신 작품을 간택해 주는 정도까지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 대중과 시대에 너무 영합하다 보면 자칫 당신 ‘영혼’의 중심을 잃을 수도 있다. 항상 자신이 초보작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펜을 든 손에 힘을 빼고 초심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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