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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Oct 02. 2023

피카소와 줄무늬

드로잉=최송목

피카소는 줄무늬를 좋아했다. 니트, 폴로셔츠, 티셔츠 가릴 것 없이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으면 다 입었다. 특히 좋아했던 건 브레통(Breton) 셔츠. 테이블 위에 빵을 손가락처럼 펼쳐놓은 로베르 드와노의 유명한 사진 속에서도 피카소는 이 옷을 입고 있다. 브레통 셔츠가 할리우드에 처음 등장한 건 말론 브란도가 <위험한 질주>에 입고 나오면서부터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도 브레통 셔츠를 입었다.


브레통은 원래 1858년 브르타뉴 지방 해군의 공식 유니폼으로 지정되어 프랑스 군복으로 채택되었다.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도톰한 저지로 만들고 목은 보트네크라인으로 팠다. 널찍한 목 부분, 짧은 7부 소매로 고안돼 물에 빠진 선원이 쉽게 벗어 마치 깃발처럼 사용해 본인의 위치를 알리는 데 유용했다. 의식이 없더라도 재빨리 발견해 건져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 측면도 있었다. 가슴엔 21줄의 스트라이프를 그려 넣어 그 줄 하나하나가 나폴레옹 함대의 승리를 의미했다.

드로잉=최송목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서 흑백의 얼룩말 줄무늬는 먼 곳에서도 쉽게 포착된다. 이런 시각적 효과는 도심의 횡단보도, 죄수에게도 적용됐다. 탈옥이나 도주를 막는 효과는 물론, 가로줄무늬 죄수복이 세로로 늘어진 창살과 교차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을 주는 데 활용됐다는 설도 있다.


안전 장비도 별로 없이 일하던 당시 어부들과 항구의 양파 상인들을 중심으로 ‘생명을 구하는 편리한 작업복’이 됐다. 품질 좋은 브르타뉴 양파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소외된 하층민의 유니폼이 됐다. 그렇게 브레통은 또다시 소외당하고 외면받은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을 구분하는 ‘또렷한 줄 긋기의 수단’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이 유니폼은 장교가 아니라 갑판이나 배 하부에서 생활하는 하급 장교와 일반 병사에게 지급된 것이었다. 사관학교를 통해 장교가 된 이들은 갑판병에서 진급하는 장교를 천대하며 얼룩말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 천하고 보잘것없는 줄무늬 셔츠는 샤넬이 1917년 맞춤복 컬렉션에 오리지널 브레통 셔츠를 변형한 짧은 셔츠를 도입하면서 재탄생했다. 여성의 자유를 위한 중성적 매력의 브레통 셔츠를 오늘날의 위치로 끌어올린 결정적 순간이었다. 1930년대엔 본인이 줄무늬 니트 티셔츠를 입고 바캉스를 즐기면서 당시의 영향력 있던 문인과 화가 그리고 셀러브리티에게 편안함과 자유를 선사했다. 완벽한 브레통 셔츠의 신분 상승이 이뤄진 것이다.


이 가로줄무늬 옷이 뚱뚱해 보인다는 항간의 오해는 그저 오해일 뿐이다. 1867년 독일 물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에 의해 세로줄 무늬보다 가로줄무늬가 더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준다는 이론이 발표됐다. 2011년 피터 톰슨 영국 요크대 박사의 연구 결과 역시 “수평 줄무늬는 결코 당신을 더 뚱뚱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드로잉=최송목

<참고/인용>

1.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80337901

2. https://www.gqkorea.co.kr/2017/06/14/%ED%94%BC%EC%B9%B4%EC%86%8C%EA%B0%80-%EC%9E%85%EC%9D%80-%EC%A4%84%EB%AC%B4%EB%8A%AC-%ED%8B%B0%EC%85%94%EC%B8%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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