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법은 잘 지켜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우리는 사회가 다 그렇게 돌아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2500년 전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피아 전력 파악을 위한 체크리스트 7개 항목(칠계七計)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손자는 전쟁의 승패를 가늠했습니다. 이 중 하나가 ‘법령은 잘 집행되는가? (법령숙행 法令孰行)’라는 항목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법이 법대로 지켜지지 않고 규칙이 규칙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입니다. 특히 한국 국회의원들과 권력자들의 법에 대한 인식은 자신들의 생활도구쯤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뢰도를 ‘에토스’(ethos)라고 하면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스란히 ‘듣는 사람이 내리는 평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법을 가장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보입니다.
법을 어긴 혐의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도 무조건 정치적 탄압이라고 합니다.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도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최종심인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받고도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고 우깁니다. 그들은 하늘을 자주도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 발밑은 자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자기가 걸리면 편의에 따라 부정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무소불위이면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많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국민의 뜻’,‘국민의 이름으로’라는 말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21대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은 전체 300명 가운데 총 46명입니다. 15.3%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이 이른바 판사, 검사, 변호사인 '율사' 출신인 셈입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국민의 기준은 정의로운 사람보다는 똑똑한 사람, 사기꾼이라도 말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나 봅니다. 하기야 마냥 국회의원들만 탓할 일만 아닌 듯싶습니다. 그들을 국회로 보낸 이가 바로 그들을 지금 손가락질하고 있는 우리들이니까요.
힘없는 일반인들도 법이나 규칙에 대한 엄중함이 예전 같지 않아 보입니다. 사소한 문제지만, 전철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 걷고 뛰는 것이 어느덧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이죠. 그 옆에는 버젓이 ‘뛰기, 걷기 금지’ 경고문구가 붉은 글씨로 크게 씌어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다 에스컬레이터에 좌측에 서 있으면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을 마치 불법이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밀치고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도 했었는데 요즈음 들어서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규칙을 어기는 것도 잘못된 일도 모두가 함께하면 그것이 관행처럼 당연시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말이죠. 모두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을 때 규칙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됩니다. 썩은 사과 하나가 멀쩡한 사과 한 박스 전체를 곰팡이로 물들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 그런 분위기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 온도와 ‘경고 표지판’의 온도차가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관행이라면 언젠가는 꼭 한 번은 대형사고가 일어나리라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