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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May 07. 2024

카네이션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가 사라졌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카네이션 가판대를 보았다.

‘아 그렇지! 벌써 5월 8일 어버이날이네’ 평소처럼 하나 사려고 다가갔다가 갑자기 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꽃 팔고 있는 학생이 말 걸어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차! 난 엄마도 아빠도 없지’ 지난 2월 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이다. 엄마, 아빠가 없다는 기억의 자각이 이렇게 ‘훅’ 카네이션 꽃이 되어 다가오다니 당황스럽다. 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세월의 상처가 아물었지만, 어머니는 지난 2월에 돌아가셨으니 아물지 않은 3개월이다. 채 가시지 않은 그 아픔이 꽃이 되어 나의 가슴을 건드린 것이다. 


남들처럼 나도 매년 이맘때쯤이면 다들 하는 습관처럼 카네이션을 사곤 했다. 어떨 때는 없던 효심이 발동하여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카네이션 꽃에다 선물 준비에 바빴고, 어떨 때는 일상에 지쳐 그냥 근성으로 ‘하던 대로’ 하기도 했다. 나의 이러한 ‘선택적 효심’은 엄마가 요양원으로 옮기면서부터 정례화되었다. 


살아계실 때 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돌아가신 뒤 제사상 잘 차리고 산소 매번 찾는 게 다 공염불이라는 걸 지난 30년간 아버지 기일을 보내면서 체득한 학습효과다. 그런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공들여 차린 제사상을 아버지가 맛보시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니 살아생전 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학습효과와 오래전 묵혀둔 아버지에 대한 불효의 죄 값이라도 대신 치르듯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오갔다. 그리고 매주 방문전날 저녁이면 뵈러 갈 준비에 부산을 떨었다. 항상 원죄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직접 모시지 못하는 형편과 마음, 요양원에 엄마를 모시고 있다는 정서적 죄책감 등이 오버랩되어 나를 내몰았던 것이다. 

 그래서 매년 찾아오는 5월 8일 카네이션 사는 날은 마치 봄맞이 대청소의 연간행사처럼 내 마음속 그 찜찜한 기분 한 덩어리를 털어내기 아주 좋은 ‘길일(吉日)’ 같은 날이다.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생긴 양 내 마음도 매번 부산하다.   

요즈음은 작고 귀여운 붕어빵도  있다

엄마를 위해 내가 챙기는 잡화목록은 참으로 다양하다. 먼저 과일부터 보자. 참외, 수박, 사과, 딸기 등 제철 과일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사가지고 간다. 엄마는 초코파이, 붕어빵도 좋아하신다. 특히 팥이 들어간 빵을 좋아하신다. 단팥빵, 단팥죽, 앙금빵 등이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인지 팥이 들어간 모든 종류의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피는 못 속이는가 보다. 엄마를 만나도 많은 대화는 없지만 그런 동질감에서 작은 희열을 느낀다. 그 외에도 이쑤시개, 사탕, 각 티슈, 손 선풍기 등은 때마다 챙기는 품목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걸 챙기다 보니 그 방면으로 나름 전문성이 생겼다. 같은 단팥빵이라도 어느 빵집에서 언제 사면 맛있는지, 붕어빵도 재료가 찹쌀인지, 밀가루인지, 식기 전에 가져가야 하니까 언제 가게 문을 여는지도 알아두어야 하는 것 등이다. 

근데, 이번부터는 그런 부산 떨 필요가 없어졌다. 카네이션도 살 필요가 없고, 붕어빵 사들고 갈 곳도 없어졌다. 매주 출근처럼 일삼던 효도행사가 중단됐다. 당신이 두고 간 핸드폰만 저기 방구석 한편에 기념품처럼 유품이 되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게 지금 나와 엄마의 유일한 가교다. 엄마가 증발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들 기쁜 마음으로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있는데, 난 엄마의 핸드폰에 시선이 멈추면서 카네이션 대신 눈물이 눈을 덮는다. 엄마가 사라진 지 벌써 3개월째,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눈을 뜨고 찾으면 안 보이고, 감아야만 엄마가 보인다. 내년 5월 8일 엄마는 어떤 꽃이 되어 다가오실까? 그때도 눈을 감아야 나타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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