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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ul 15. 2024

반려견 vs 애완견

수필

우리 집 강아지 ‘보드리’가 가족이 된 지도 벌써 13년째다. 처음부터 개를 좋아해서 키우게 된 건 아니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가족이 되었다. 혹자는 말한다 "말도 안 통하는데 뭔 가족?" 하지만 관계에서 꼭 말이 필수요건은 아닌 것 같다. 그와의 말없는 비언어 소통이 나에게는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 간에 언어 소통으로 인한 피로감이 클 때가 더 많다. 때로는 말없는 비언어적 소통이 더 큰 위로로 다가 올 될 때도 많다.


우리 인간은 대개 이기적인 사고기반에서 동물을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우월감 기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의 경우다. 일단 송아지가 태어나면 농가에서는 엄청 반긴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지중지 키운다. 그러다 실컷 부려먹고는 잡아먹는다. 머리, 꼬리, 뼈, 내장 등 인간의 입이 닿지 않는 부분이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의 이기적인 손아귀를 벗어나지 않는 순간은 없다.


이런 이기적인 기반의 동물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랜 역사의 스페인의 투우는 물론이고 세계각지에서 벌이고 있는 투견, 투계, 소싸움도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광범위하게 이어져 온 동물학대 문화의 잔상이다. 그 저간에는 인간의 말초적 쾌락과 생명경시의 잔인성이 깔려있다. 싸움과 죽음을 두고 웃고 즐기고 베팅을 한다. 인간은 가끔은 고매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지킬처럼 지극히 이중적이며 잔인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이런 살벌한 동물관에 비하면, 애완견이냐 반려견이냐의 담론은 다소 한가한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애완견은 ‘좋아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개’로 설명하고 있고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애완견’이란 말을 거침없이 사용해 왔다. 여기서, ‘완(玩) ‘은 한마디로 희롱하고 갖고 논다는 뜻이다. 즉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이다.


‘반려(伴侶) 동물’이라는 말은 1983년 동물 행동학자로 노벨상을 받은 콘라트 로렌츠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비롯되었다. 애완동물(pet)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인간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뜻으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여기서 ‘반려’는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부부간의 ‘반쪽’을 뜻하고 엄밀하게는 1:1 매칭 개념이다. 동물단체에서 ‘애완’의 대체 명칭으로 ‘반려’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가족이라는 동반자 느낌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편,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반려가구’는 552만 가구로 전체의 25.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인구 5175만여 명 중 1262만여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고, 반려가구의 81.6%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세상 분위기에 힘입어 법적으로도 ‘반려’가 자리를 잡았다. 「동물보호법」에 <“반려동물”이란 반려(伴侶)의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동물을 말한다.>로 명시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동물보호법’을 주관한 정부부서가 ‘농림축산식품부’이고, 그 명칭에 ‘축산식품’이라는 단어가 다소 걸린다. 하지만, 그래도 ‘반려’라는 단어에 까지 이른 것으로 위안 삼아야겠다.


 아직도 개에 대해 비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애완견’의 시선으로 식당 여기저기서 우리의 ‘보드리’ 출입을 거부하고 있지만, 머잖아 ‘반려‘라는 용어에 명실상부하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식당도 커피숍도 마음대로 같이 활보하며 편안하게 같이 먹고 마시는 진짜 가족 ‘반려견’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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