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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ul 18. 2024

미완의 책사 (사마의) 최후의 승자

나는 중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진부한 주제인 복수 플롯, 단순 이야기 전개, 철학부재  등과 더불어  디테일한 심리묘사 부족으로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지인의 강력 추천으로 드라마 '사마의'를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의 편견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전혀 중국적이지도 않았고 전개속도나 플롯도 과거와는 다르게  신선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메모하면서 봐야 할 정도로 명대사도 많았다.


사마의는 통상 제갈공명과 비교되는 인물로서 지혜와 통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나, 드라마를 통해본 그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웅, 도전적 측면도 있었지만, 평범하게 세상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필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많았다. 욕망을 좇다가 결국 시간에 굴복하여 쇠락해 가는 대다수 인간들의 모습이다. 작가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그리고 개연성 있게 그려 보고 싶었다. 애써서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실패한 사람이건 성공한 사람이건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다. 간단하게 고평가 혹은 저평가할 필요는 없다.”     

1부의 원제는 군사연맹(军师联盟/ Advisors Alliance)이었으나 대군사 사마의지 군사연맹(大军师司马懿之 军师联盟)으로, 2부의 제목은 대군사 사마의지 호소용음(大军师司马懿之 虎啸龙吟)이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호랑이는 포효하고 용은 울부짖는다'는 뜻인데, 사마의와 제갈량의 대결 구도를 의미한다. 1, 2부 공통으로 ‘대군사 사마의’를 앞에 붙였다. 한국에서는 1부를 ‘미완의 책사 사마의’, 2부를 ‘최후의 승자 사마의’로 제목 했다.      

드라마를 통해 본 그의 일생 핵심 키워드를 나름 정리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충성심, 통찰력, 인내심이다.     


먼저, 군주 (조조, 조비, 조예, 조방)에 대한 변함없는 일관된 충성심이다. 동기가 가식이던, 진심이던 상관없이 그는 줄곧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대다수 성공한 반역자나 2인자들이 모두 그랬듯이 말이다. 궁예의 충실한 2인자로 충성심을 보였던 왕건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그러했고,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배신하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혁명 막바지까지 충성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에 비하면 사마의는 네 사람의 군주를 겪으면서 충성심을 유지했으니 출중한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성향 다르고 상황을 보는 눈이 다른 네 사람의 군주를 대하는 그 처세술과 인내심은 가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현대에서 보통 직장인이라면 한 사람의 사장, 팀장 모시기도 힘든데 말이다.     

   

두 번째는 사마의의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을 보는 통찰력이다. 즉, 민중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다. 충분히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보다는 실권에 만족하면서 자중하는 절제 능력이 돋보인다. 백성들의 마음이 아직은 황제를 바꿀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실권은 가지되 명예를 탐하지 않는 자제력이다. 지금은 어떤가? 선거철이면 관직에 눈이 어두워 학연, 지연 등 연줄을 대거나, 자리하나 차지하려고 온 인생의 힘을 빼고 있는 모리배들이 수두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 번째는 때를 기다리는 지독한 인내심이다. 인내심은 육체적, 물리적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사마의는 보통사람이 갖지 못한 3가지의 특별한 인내심이 있었다.     

➀인간적인 수모와 모욕감,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참아내는 ‘수치에 대한’ 인내심이다. 의심 많은 조조에 의해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렸고, 군주(조비, 조예)와 주변 세력들과의 반목에 의한 지속적이고 지루한 의심과 암투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극 중 ‘조상’과의 권력 대결구도에서도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다가 이마에 피를 흘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만큼 그의 연극은 진심이었고 동시에 가식이었다.   


➁ 때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거사를 준비하면서도 끝까지 충성스러운 모습과 병약함으로 철저하게 위장하여 자기의 힘을 숨기는 인내와 자제력이 돋보인다.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할 정도다. 존경의 의미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참을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독하게 인내하는 모습이 섬뜩 무섭기도 하고 한편 가련하게도 느껴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➂ 민심의 변화를 기다리는 ‘상황에 대한’ 인내심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정신적으로 잘 견뎌내더라도 시대 상황, 즉 대중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혁명(왕권찬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마의는 잘 알고 있었다. 시대정신이 다를 경우 자기 욕망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그런 상황이 오기까지 기다리거나, 인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내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세상과 비교할 때, 그저 오르기만 하고 권력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 집권 후 바로 무너지는 정치 하수, 단세포 정치인들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재목도 되지 못하는 하수가 최고권력자가 된다거나, 리더가 되었을 때 그 국민이나 조직원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거 역사가 수없이 이를 깨우쳐 주고 있지만, 막상 무대의 중앙에 서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 게 권력과 욕망이다. 지금 세계 각국 정치판에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드라마에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너무 쉽게 사람에게 망상을 심어 준다”       

출처=나무위키

사마의의 '인내심'에 대해서 인상 깊은 대사가 하나 있다.

“세상에는 고통과 불공평이 넘쳐나니, 보통사람이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견뎌야, 보통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다 “ (2부-37화)     


그랬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인내'를 두루 인내했다. 마침내 그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고, 나아가 세상 악담과  후대의  악평까지도 무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집중하고, 희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인내하면서 거머쥔 최고권력이지만, 흘러가는 세월의 시간에는 '인내의 달인' 사마의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쇠락해 가는 육신에 굴복하여 '삶의 가치'에 대한 방향타를 잃고 헤매다 결국 선악조차도 분별 못하고 점차 죽음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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