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송목 Jul 31. 2024

지피지기 vs 지기 지피

‘지피지기’와 ‘지기지피’는 뭐가 다를까?  

사람들은 순서만 바꾼 비슷한 말 정도로 알고 있거나, 충무공 이순신이 ‘난중일기’에서 한 말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정확한 말은 아니다.


 ‘지피지기’와 ‘지기지피’의 원전은 ‘손자병법‘이다. 두 문장을 언뜻 봐서는 글자 순서만 다를 뿐 의미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give & take'와 ‘take & give'처럼 말이다. 그러나 손자병법 책 내에서 문장이 놓인 위치와 담긴 내용 및 앞뒤 문맥을 고려해 보면 의미도 다르고 목적하는 바도 다름을 알 수 있다.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_‘적의 상황을 알고 나의 상황도 알면 백번 전쟁해도 위태롭지 않다

‘지피지기’는 손자병법 모공편(謀攻)에서 전쟁 개시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미리 상대를 파악하는 과정(謀)에서 언급되고 있는 말이다. 즉 원거리 공격을 결정하기에 앞서 적 상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순서로 보면 ‘먼저‘ 적의 상황을 파악(지피/知彼)하고, 그 후에 아군의 전쟁 수행능력을 가늠해 보는 것(지기/知己)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왜 그렇게 ‘지피지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목적이다. ‘지피지기’는 원정(遠征)을 목적으로 한다. 원정을 결정하고 떠나기 전에 병사모집은 물론 무기, 군량 등 전쟁 물자를 조달해야 하는데, 이에 앞서, 멀리 있는 적, 가만히 있는 적을 적극적으로 살펴본 후 공격(전쟁)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또 이런 대규모 총력전 장기전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되므로 정보수집과 사전분석에서 백전불태(百戰不殆)가 최우선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를 통해 백번 원정 전쟁을 치러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반면, ‘지기지피’는 손자병법의 지형편(地形)에 위치하여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 내지는 각 지형의 특징에 따른 활용법과 발생 가능한 리스크 회피지침의 대전제로 언급되고 있다. 즉 6가지 지형 조건에 대한 설명과 주둔방법, 각 지형별 적절한 상황 대처법을 다루고 있다. 이때 장수의 과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군 운용법에 대해서도 6가지로 세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기지피는 주어진 지형조건에 최적화하여 병력을 운용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용병술의 핵심 기저다.


 그런데 여기서, 앞 편에서 사용했던 ‘지피지기’를 그대로 사용하면 될 것을 굳이 ‘지기지피’로 어순을 바꾼 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앞의 ‘지피지기’와는 다른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기지피, 승내불태 (知己知彼, 勝乃不殆)_‘나를 알고 적을 알면, 전투에서 위태롭지 않게 승리할 수 있다

여기서 ‘지기지피’는 주어진 각 지형과 나의 병력을 수동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조건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에, 앞서 ‘지피지기’처럼 상대방 파악보다는 내가 처해 있는 주둔조건과 병사들의 사기, 지휘체계, 장교들의 능력, 상하결속의 정도 등 자기 군대가 처해있는 상황과 실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지피지기’가 백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전(不殆)을 도모하는 거라면, ‘지기지피’는 전투를 승리(勝)로 이끌어냄으로써 아군의 안전(不殆)을 도모하는 것이다. 즉, 문자 그대로 풀면 ‘승리하는 것이 곧 안전’이다.  

 

결론적으로 ‘지피지기’는 정보수집을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한다는 측면에서 국가 전반적인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대전략(Grand Strategy)이다. 반면 ‘지기지피’는 local 전투 현장에서 주어진 지형과 한정된 전략자산을 구체적으로 운용하고 실천하는 전투 현장의 교전지침 또는 승리 전술(tactics)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피지기’는 손자병법의 첫 머리글인 시계편에서 오사칠계(五事七計,5가지 원칙과 7가지 계산)의 대전략으로, 피아의 상황을 탐색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제1목표로 한다. ‘불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전군위상...(全國爲上)’ 等이 모두 그런 목표기반의 문장들이다.


반면, ‘지기지피’는 통형, 괘형, 지형, 애형, 험형, 원형의 6가지 구체적인 각 지형에서 주둔법, 적 대응법 등 지형을 근간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군대를 운용하는 용병술로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지피지기’는 국가 차원의 총력전으로서 다루는 범위가 광범하고, ‘지기지피’는 현장 국지전으로서 범위가 한정적이고 소규모다. 다 같이 불태를 전제조건으로 하지만, 범위, 의미, 목적이 다른 것이다. 즉, ‘지피지기’는 국가가 여러 번의 전쟁(百戰)에도 불구하고 위태롭지 않도록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고, ‘지기지피’는 전투 현장의 장수가 단수의 local 전투에서 어떠한 지형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승리(勝)하여 위태롭지 않도록 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불태(不殆)지만 '지피지기'는 전쟁에서 국가의 안전이라는 거시적(macro) 목적에, ‘지기지피’는 전투에서 장수의 리스크 제로(0)를 지향하면서 승리로 이끄는 미시적(micro)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를 경영에 적용시키면, 창업자라면 사업시작 전에 염두에 두고 있는 목적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는 무엇으로 안전하게 부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지피지기 백전불태’ 전략이 될 것이고, ‘지기지피 승내불태’는 여러 아이템 중 특정 사업에 뛰어들어 점포 위치를 선정하고, 고객 마케팅을 한다거나, 현장에 맞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 등으로 해당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전략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업 초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지피지기’를 해야 되겠지만, 어느 정도 경영 상태가 안정되고 난 후부터는 ‘지기지피’로 리스크를 줄임(리스크 헷지)으로서 방어적이고 안정적 마케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취준생의 경우라면 어떤 직장에 입사할 것인가를 목표로 할 경우 필요한 덕목이 ‘지피지기’가 될 것이고, 입사 후 그 직장 내에서 어떻게 잘 적응하고 성공할 것인가를 목표로 할 때 ‘지기 지피’를 모토로 삼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획의 경우, 큰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는 거시적으로 ‘지피지기’ 대전략을 구사하다가, 어느 정도 계획이나 방향이 구체화되면 ‘지기지피’로 전환하여 미시적, 부서별  행동지침을 세분화한다거나 현장 상황에 적절한 각론의 local 대응 전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를 탑다운(Top-down) 또는 바텀업(Bottom-up) 접근방식의 논리전개로도 이해할 수도 있겠고, 귀납법과 연역법의 방법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세(勢)의 측면에서 ‘지피지기‘는 힘이 강할 때나 공격(攻城)할 때의 전략으로 유효할 것이고, ’지기지피‘는 힘이 약하거나 방어(守城)를 해야 할 때의 전략으로 유용할 것이다.


자기계발 측면에서 ’지피지기‘가 겸손한 태도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면, ’지기지피‘는 겸허한 태도로 내실을 다지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내부를 향한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완의 책사 (사마의) 최후의 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