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여풍, 기서여림 (其疾如風, 其徐如林)
오늘날 조직은 속도와의 전쟁이다. 실시간 답변, 즉각 보고, 빠른 의사결정이 기본이 된 환경에서, 많은 리더들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직을 끊임없이 ‘가속’한다. 하지만 조직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구성원의 사고력은 떨어지고, 성과는 오히려 저하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문제는 속도 자체가 아니라, 속도를 적절히 운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리더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언제 가속하고, 언제 멈춰야 할 것인가?’
F1 은 이 점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메타포다. F1 머신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지만, 그 속도는 단순히 가속페달을 밟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언제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감속하느냐, 타이어와 노면의 접지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등이다 빠른 차는 가속이 아니라 안정적 제어 위에서 만들어진다. 『F1 리더십』의 저자 변동식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액셀을 밟고 있는가? 아니면 브레이크를 설계하고 있는가?” F1에서 진정한 승자는 가장 빠른 선수가 아니라 끝까지 완주한 선수다. 경영자의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속도와 위험의 경계에서 ‘가속’과 ‘멈춤’을 적절히 관리하는 능력이 기업의 생존과 미래를 결정한다.
일본 기업의 ‘즉답 피로’ 사례는 이를 조직문화 측면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직원들은 회의 중이든 퇴근 후든 실시간 답변을 요구받았고, 리더들은 “빨리 알려 달라”며 압박을 이어갔다. 깊이 있는 판단과 사고의 시간이 사라지면서,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조직은 실질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속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부족, 즉 속도 운영의 미숙함이 문제였다.
비슷하게, 2025년 쿠팡의 야간 배송 논란도 속도 추구가 가져오는 리스크를 보여준다. 초단기 배송 경쟁은 고객 만족을 높였지만, 노동자 과로와 안전 문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무조건 빠르게’라는 슬로건은 조직과 사회에 부담을 전가하며, 지속가능성을 약화시켰다. 이 역시 속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속도를 판단하고 관리하는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다.
손자병법 작전편의 “병문졸속, 미도교지구(兵聞拙速,未睹巧之久)”는 전쟁에서 장기전의 위험을 지적하며, 다소 서투를지라도 신속하게 결전을 도모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우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지연이 병력 소모와 효율 저하로 직결된다는 판단을 반영한다.
반면 군쟁편의 “기질여풍, 기서여림(其疾如風, 其徐如林)”은 실제 작전에서 기동 원칙을 제시하며, 상황에 따른 속도의 완급 조절을 요구한다. 기동 시에는 바람처럼 신속성을 확보하되, 대기·정지 국면에서는 숲처럼 안정성과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명제 같지만, 전자는 전략적 의사결정 단계에서 지체를 배제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전술적 실행 단계에서 속도도 잘 조정하라는 것이다. 결국 손자가 말하는 ‘속도’는 단순한 신속성의 미덕이 아니라, 결정-기동-대기의 각 국면에서 적절한 속도를 선택하는 판단의 역량으로 이해할 수 있다.
리더십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전설적 농구 코치 존 우든은 “Be quick, but don’t hurry(빠르되 서두르지 말라)”라고 말했다. 준비와 숙고 없는 서두름은 조직을 느리게 만들 뿐이다. 속도는 절제와 균형 위에서 힘을 발휘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할 순간과 멈춰야 할 순간을 구분하는 것이 리더의 핵심 역할이다. 판단과 준비가 필요한 순간에는 멈추고, 실행의 순간에는 흔들림 없이 가속하라. 속도를 통제할 줄 아는 리더만이 조직을 멀리, 그리고 안전하게 이끌 수 있다.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299119
<참고 인용>
1. 김인권, 머니투데이, [투데이 窓] 일본 기업을 흔드는 '즉답 피로'
2. 변동식, F1 리더십 속도를 사유하라, 가속과 멈춤의 비즈니스 전략, 메디치미디어, 2025
3. 김나윤기자, 스카이데일리, 쿠팡 ‘900원’ 야간배송 단가 논란… 타사 대비 절반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