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살인

마일드경제 칼럼

by 최송목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뉴스에서 아군 초소로 진입하는 적을 사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안도하고 때로는 박수까지 보낸다. 누군가의 생명을 끊은 행위가 ‘무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거나, 국가를 위한 공로로 치환되기도 한다.


살인은 금기지만, 동시에 축하의 대상이다. 이처럼 모순된 관행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폭력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이해 가능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자 풍경이다.


죽음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죽음은 범죄가 되고, 어떤 죽음은 의무가 된다. 같은 행위임에도 누구는 영웅, 누구는 학살자다. 죽음을 초래한 행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국가와 법, 정의라는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재해석된다. 문제는 살인이 허용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판단이 반복되며 우리의 감각이 무뎌져 가는 과정이다.


법과 제도는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시에 그 법과 제도는 살인을 허가한다. 판사의 선고와 집행관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죽음 역시 법망의 보호를 받는다. ‘정의의 실현’이라는 방패는 개인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살인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한다. 문명은 폭력을 제거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폭력을 생산하고 소비해 왔다.


죽음으로 향하는 이 거대한 폭력의 관성에 조용히 “아니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총을 드는 의무를 거부하고 감옥행을 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다. 이들의 선택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질서와 관성에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존재다. 살인을 의무로 만드는 사회적 자동주행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길목에서 멈춰 서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거부는 폭력과 살인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관성사회’를 향해 던지는 소리 없는 질문이다.


무공탑과 현충원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자부심과 감사, 그리고 애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군의 이름만을 기억하려 할 뿐, 적군의 이름은 기억할 의도조차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적군 역시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아이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만약 우리 아들이 타국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를 죽인 병사가 훈장을 받고 기뻐하는 장면을 본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승리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은 언제나 동시에 존재한다. 정의와 폭력은 등을 맞대고 서 있다.


오늘날 폭력은 더 이상 총과 칼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혐오 섞인 댓글과 차가운 시선, 편견 어린 언어는 타인의 존엄을 훼손한다. 인격을 부정하는 말들이 일상화되고, 논쟁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해야 끝나는 이전투구가 되었다. 야만의 시대와 비교하면 형태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상대를 지우려는 살의(殺意)의 마음은 여전히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언어로 기록되고, 윤리는 종종 강자의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정당한 살인’이라는 뿌리 깊은 관행에 길들여져 오는 동안, 양심은 서서히 무뎌져 왔다. 살인의 본질은 무기를 든 손이 아니라, 무기를 쥐도록 허락한 마음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행위가 아무 의심 없이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관성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자동화된 관성에 아무 의심 없이 힘을 보태고 있지는 않은지. 판단을 대신해 주는 제도와 명분 뒤에 숨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폭력은 언제나 거창한 명령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고 관성에 몸을 맡기는 바로 그 순간, 우리와 사회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폭력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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