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무엇에 복종해야 하는가

영지이문, 제지이무 (令之以文, 齊之以武)

by 최송목

군에서 명령과 복종은 상식이다. 불복종은 처벌의 대상이며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도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3 계엄 당시 국회 진입 등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군인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찬반의 평가를 떠나 군의 명령·복종 체계와 책임의 경계를 다시 묻게 한다.


전쟁전략의 고전인 손자병법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다. 행군편의 “영지이문, 제지이무 (令之以文, 齊之以武)”가 그것이다. 명령은 규범(文)으로 내리되 행동은 강제력(武)으로 통일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문(文)’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병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분과 정당성, 질서다. 장수는 이 ‘문’을 통해 부하의 마음을 얻고 ‘무’로 대오를 정렬할 때 군대는 비로소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손자에게 군대는 토론의 장이 아니다. 판단은 장수가 하고 병사는 따르고 실행한다. 각 개인의 윤리적 고민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병사가 명령의 정당성을 매번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군의 존립 근거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수천 년 동안 유효했다. 전장에서 행동의 통일은 생존의 조건이었고 명확한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이 논리는 완벽했다. 하지만 12·3 계엄은 전장이 아니었다. 침공한 외부의 적도, 파괴해야 할 전투 목표도 없었다. 그날 군인들이 마주한 것은 적이 아니라 자신이 수호해야 할 헌정 질서와 시민의 안전이었다.


적이 사라진 자리에서 정당성을 상실한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명령은 ‘정치’가 되고 부하들은 따르든 거부하든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선택지로 내몰린다. 이는 비단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현장에서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를 강요받는 재무·법무 실무자 역시 같은 딜레마에 선다. 복종은 ‘충성’으로 포장되지만 결과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은 명령을 수행한 실무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명령 거부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불의한 명령에 순응하는 것이 비겁한 안식처라면, 거부는 군사재판이라는 고통까지 떠안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이 특정 정치적 판단이나 권력 행위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개별 사안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되어야 하며 그 기준이 흐려질 때 군은 다시 정치의 도구가 될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손자병법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직은 일사불란한 체계 없이는 작동하기 힘들다. 다만 현대 민주국가에서 군의 모든 명령은 헌법과 법률이라는 최상위 규범에 종속된다. 헌법을 위반하는 명령은 손자의 ‘영지이문(令之以文)’에서 말하는 ‘문(文, 규범)’의 자격을 상실한 명령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군대에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는 단순한 항명이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명령이자 국가의 근간인 헌법을 수호하려는 투철한 국가관의 ‘고차원적 복종’이다.


명령의 강제력(武)은 조직을 묶는 힘이지만, 정당성(文)을 잃는 순간 국가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따름과 거부’라는 거대한 딜레마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책임 회피다. 명령은 순간의 말로 사라지지만 그 앞에서의 판단은 역사에 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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