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호랑이 너머, 우리가 놓친 진짜 지도

이정합, 이기승 (以正合, 以奇勝)

by 최송목

우리는 한반도 지도를 볼 때 자연스럽게 ‘토끼다’, ‘호랑이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이 비유는 지도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해석의 틀에 가깝다. 문제는 이 익숙한 틀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다른 가능성을 가려버린다는 데 있다. 주어진 모양에 생각이 갇혀 있다 보면 정작 본질적 가치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소년]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


주한미군이 올해부터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위아래가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 주한미군 제공

최근 주한미군이 내부 교육용으로 제작한 ‘거꾸로 뒤집힌 동아시아(East-Up) 지도’는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도는 단순히 180도 회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에 두고 대만·필리핀·베트남까지 이어지는 해상 축을 한눈에 드러낸다. 제이비어 브런슨 사령관은 이를 “관점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 설명했다. 뒤집힌 지도는 한반도가 ‘전방 외곽 기지’가 아니라 북·중·러로 이어지는 북측 축과 남측 해상 축 사이에서 전략적 중심임을 보여주었다. 같은 지도인데 관점을 바꾸니 중심과 변방이 뒤바뀐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소년' 창간호의 지도(왼쪽) '청춘'의 표지 그림의 꽃을 든 청년이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오른쪽), 조선일보, 정진석 교수

손자병법에서도 이러한 관점 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다룬다. “정(正)으로 임하고, 기(奇)로 승리한다”는 ‘이정합, 이기승(以正合, 以奇勝)’의 원리다. 익숙한 틀(正)을 딛고 그 너머의 가능성(奇)을 발견할 때 승부가 열린다는 뜻이다. 야구로 치면 정(正)은 직구, 기(奇)는 상대의 시선을 흔드는 변화구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해석만 달리해도 전혀 다른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전략을 넘어 공간과 역사에도 적용된다. 일본 호시노리조트가 추진 중인 ‘호시노야 나라교도소’ 프로젝트는 그 상징적 사례다. 메이지 시대 붉은 벽돌 감옥은 한때 통제와 규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박물관과 최고급 호텔이 결합된 체류형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감옥은 더 이상 갇히는 장소가 아니라, 고요 속에서 사유하는 경험의 무대가 되었다.

1908년 준공돼 2017년 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나라 교도소의 모습. 게티이미지 캡처

공간 재해석은 일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있다. 도쿄 고탄다에서는 옛 구치소의 외벽과 감시탑이 현대적 상업공간과 공존하고, 홋카이도 개척촌과 규슈 미이케 탄광은 문화관광의 핵심 자산으로 탈바꿈했다. 과거의 흔적을 새로운 정체성과 산업의 원천으로 읽어낸 결과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대상은 그대로 두고, 시선만 바꿨다는 점이다. 감옥, 탄광, 낡은 도시는 더 이상 부담이나 기피의 공간이 아니다. 없애야 할 ’ 과거’가 아니라 체험과 학습의 미래 콘텐츠로 본 것이다. 보존의 대상에서 체류·소비·학습이 결합된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재정의 한 것이다. 관점의 전환이 과거를 낡은 흔적이 아닌 새로운 가치의 소스로 바꿔 놓은 것이다.


한국 역시 근대 산업시설과 역사 공간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점에 놓여 있다. 많은 경우 개발의 걸림돌이거나 관리비용의 부담으로만 인식된다. ‘없앨 것인가, 남길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한, 선택지는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보존과 개발은 대립하지 않는다. 질문을 바꾸는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해답의 지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들 앞에는 이미 지도가 펼쳐져 있다. 문제는, 지도 위에 그려진 형상이 아니다. 그 지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우리는 지금도 익숙함에 박제된 토끼와 호랑이 모양에 집착한 나머지, 지도 속에 내재된 다른 구조와 미래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293484

<참고, 인용, 발췌>

1. 김관용, 이데일리, 깁브런슨 "뒤집힌 지도 속 한반도, 인도·태평양 중심축”…美, 韓 지위 재정의

2. 블로그, 누위있는소, 한반도의 모양은 토끼인가, 호랑이인가?

3.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조선일보,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97] '호랑이 한반도' 지도와 최남선

4. 김인권, 머니투데이, [투데이 窓]과거의 감옥이 미래의 콘텐츠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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