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자복야(鳥起者伏也), 수해자복야(獸駭者覆也). 필근찰지(必謹察之)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 중앙일보가 비언어 분석 기관 ‘지음과 깃듬’과 함께 추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영상 315시간 분량은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2년 집권 이후 연설과 현지지도, 한·미·중·러 정상회담 장면까지 13년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결론은 명확했다. 지도자의 언어는 설계될 수 있지만, 본능의 통로인 몸은 끝내 통제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손은 뇌와 가장 가깝게 연결된 '심리의 거울'이다. 무의식적 자기접촉(Self-touch) 행동은 불안을 완화해 보려는 본능적 반응이다. 말은 의식적 전략의 산물이지만, 제스처는 무의식적 신경계의 산물이다.
극적인 장면은 지난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포착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산책에서 그는 여유로웠다. 미소를 지었고, 먼저 걸었고, 뒷짐을 졌다. 자신감이 연출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확대회담장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인권 문제가 거론되고 협상 결렬의 기류가 감지되던 순간, 그의 왼쪽 엄지손가락이 1초도 쉬지 않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오른손을 만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을 향해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순간에도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손끝은 이미 체제가 감당해야 할 위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분석에는 웃음, 제스처의 크기, 자기접촉, 카메라 의식, 동조현상 등 12가지 외향적 행동지표가 포함됐다. 특히 불안 제스처는 집권 초기의 움직임과 닮아 있었다. 권력 기반이 완전히 공고하지 않았던 시기, 내부 위협을 제거하던 과정에서 나타났던 긴장 신호가 하노이 ‘노 딜’의 순간 다시 재현된 것이다. 무의식은 과거의 위기 기억을 저장해 두었다가, 유사한 압박이 감지되면 즉각 반응한다. 말은 통제할 수 있지만, 몸의 신경계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2500년 전 전략서 『손자병법』의 ‘상적(相敵)’ 관찰법이 떠오른다. ‘상적’이란 행군 중에는 사방으로 정찰을 보내고, 주둔할 때에도 보초를 세워 적의 미세한 상황변화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6000자 남짓한 작은 책에서 손자는 이 관찰법을 무려 33가지나 열거하며 강조했다. 그중 한 문장은 특히 인상적이다.
“조기자 복야(鳥起者 伏也), 수해자 복야(獸駭者 覆也).”
새가 갑자기 날아오르는 것은 복병이 숨어 있기 때문이며,
짐승이 놀라 움직이는 것은 적이 습격해오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 전투에서는 들판의 새와 짐승의 움직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의 동태를 읽었다. 오늘날 외교와 비즈니스의 협상장에서는 상대의 미세한 손의 떨림이나 시선의 흔들림을 통해 그 이면의 심리를 포착한다. 하노이의 협상장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복병’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 전쟁은 포성 대신 카메라 셔터 소리 속에서도 벌어진다. 회담장의 악수와 표정,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의 잠깐의 호흡까지 모두 전략적 정보가 된다. 현대판 ‘상적’은 표정뿐 아니라 시선과 손·팔의 움직임까지 데이터로 분석해 지도자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권력은 통제의 기술이다. 권력자는 메시지를 설계하고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높이 올라갈수록 불안은 깊어지고, 강해 보일수록 더 많은 것을 방어해야 한다. 권력의 절정은 긴장의 정점이기도 하다.
하노이 회담장에 총성은 없었지만, 그의 손끝 신경계는 이미 거대한 위기를 먼저 감지하고 있었다. 손무가 다시 한번 강조했듯이, 뛰어난 장수는 칼보다 먼저 적의 미세한 움직임을 세심하게 살펴야 (필근찰지, 必謹察之)한다.
입은 속일 수 있어도 손은 속이지 못한다.
http://www.dailycnc.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083
<참고 인용>
1. 유지혜.정영교.심석용 에디터, 중앙일보, 트럼프 앞에서 엄지손 ‘탁탁탁’…김정은, 굴욕의 날 이후 바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