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에 대한 동경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

by 올랜진

인류를 향한 코로나 19의 소리 없는 포효는 가히 두려움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맹수처럼 보이지 않게 야금야금 약자를 찾아 나선다. 더블 글래이징의 단단한 창문 안에 벽을 방어 삼아 숨기를 여러 번. 내가 의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저 억울한 맘 가득이었던 시절들 그리고 지금. 자유로운 발걸음이 제한된 이후 시간은 더욱더 빨리 찰나를 달리고 있다. 그저 내 앞으로 지나는 빠른 바람을 놓치듯 멍하다.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 그에 따른 것들도 발맞추어 변화를 꿈꾼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잠깐 곁길로 빠져서 느리게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릴 적 살던 곳을 찾아보았다. 눈에 익은 곳을 그리움으로 훑으며 손으로 매만져보았다. 낡은 콘크리트 벽에 무참히 벗겨진 민트색 페인트. 무한했던지 여름 장미가 담벼락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균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층 집 구조에 삐져나온 돌계단은 푸른 이끼를 가득 품고 있다. 언제 사라질지 몰라 시퍼렇게 겁을 먹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개발이라는 팻말이 무섭도록 여기저기서 그것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화면을 바꿔 찾고 또 찾는다. 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살아 계셨던 곳의 흔적을. 시장통 위쪽에 자리 잡았던 우리 집은 이층이었다. 장날은 볼거리가 많았다. 집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날의 풍경이란 참으로 풍요로운 것이었다. 여러 음식이 섞인 냄새가 그러했고, 흥정의 소리가 그러했으며, 뉘 소린지 모르는 시끌벅적함이 더더욱 그랬었다. 리어카에서 흐르는 뽕짝은 흥을 돋우고 사고파는 이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었다. 장터가 끝나가는 시간, 대야 속 개와 닭들은 주인을 만나지 못해 지쳐있었고, 남겨진 물건들은 떨이를 외치며, 어느 누구의 야무진 손아귀로 헐값에 전사해 버렸다. 장터가 끝이 나면 비워진 그 길 사이로 아버지가 집으로 오셨었다. 하루 종일 나돌던 동생이며 언니들도 그 낡은 이층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가족이 되었었다. 그랬던 그곳이 사라지고 있다. 사춘기 시절 한 없이 걸었던 골목길도 절반은 모습을 바꾼 채로 나를 나 몰라라 하는 듯하다. 반쯤 뽑힌 그 옛날 가로등, 맥없이 허무한 날들을 보내는 듯하다. 잘 나가던 그 옛날엔 일자리를 찾는 스티커들과 빈방을 내놓은 전화번호들을 가득 안고 쓰레기를 방어벽 삶아 서 있었는데. 나의 늦은 밤 방황을 민망하게 했던 그때의 환한 빛, 모두가 그리움이고 아쉬움이다. 내 마음이 더욱더 그곳에 집착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그곳에 마지막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철없음이 있었고, 유년시절, 사춘기, 어른이 될락 말락 하는 그 시절이 그곳에 있었기에 사라짐에 그저 씁쓸한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곳을 얼른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긴 시간 동안 내 발목을 잡은 역병의 날들이 어서 흩어지기를, 사그라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여러 나라를 돌며 살다가 이제 정착한 이 곳은 나를 참 평안하게 감싸주는 나라다. 고요하고 번잡하지 않으며 정직한 나라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이 곳에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삶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바도 다를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와서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은 재활용이다. 중고를 판매하고 사는 이들의 마음이 어쩌면 나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새것도 나쁘지 않다. 중고 물품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힐링이 되는 듯하다. 삶의 흔적들을 가득 안고 또 다른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기꺼이 내 놓인 물건들이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그릇들은 만든 사람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아서인지 세월을 맞고도 기품이 있다. 매끈하고 튼튼한 원목 가구들은 투박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지녔다. 중고 가게에 물건을 내놓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정성스레 손질을 한 다음에 가져온다. 중고 물품들이지만 쓸모 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곳에 잠깐 머무는 사람들은 새것보다는 중고품들로 살림을 꾸리기도 한다. 이 곳 사람들은 중고품들을 활용하는 것이 몸에 베였다. 참으로 값진 습관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중고물품 가게에 종종 다녀온다. 꼭 무엇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보고 있노라면 새것에서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 그곳에 있기에 자주 발걸음을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을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포클레인처럼 빠른 세월은 무자비하다. 나는 잘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이 느린 이곳에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중고가게는 시간이 멈춘 듯하여 더 정겹다. 몇십 년은 훌쩍 넘은 가구들은 찰나의 시간 앞에서 느리고 당당해 보인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느리게 굴려서 잘 변하지 않는 진중함에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