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만난 천사같은 사람들
핀란드로 온 지 8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 곳이 처음의 나라는 아니었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비로소 정착을 하게 된 나라. 화려하지 않음에도 아름다운 나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말들이 있었으나 그건 개인 차이일 뿐. 내가 느낀 이 곳의 사람들은 무례하지 않고, 상대방이 허락하지 않으면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는 배려많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깊다. 이 곳의 소박하고 단조로운 삶이 나는 마음에 든다.
이 곳에 온 지 1년 하고 반년의 삶을 살았을 때 나는 한참 실습 중이었다. 핀란드에 오면 언어는 기본적으로 습득을 해야 했었다. 언어 코스는 무료이며, 2년 동안 지원금도 나온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열심히 언어를 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딸아이 때문이었다. 고민도 없이 로컬 유치원을 보냈기에 딸아이의 대변인이 되어 주겠다는 각오로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언어를 배우는 중에 몇 주 동안의 실습을 해야 했다. 실습을 하는 이유는 언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실습하는 곳에서 언어가 하나도 안 늘었다. 이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따뜻한 기억일 뿐.
내가 실습했던 곳은 요양원이었다. 이쪽으로 자격증이 있거나 연관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6주 동안의 실습을 허락받았었다. 이 곳의 요양원은 시설이며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잘 갖춰져 있다. 한 방에 한 명씩, 그리고 본인이 쓰던 가구와 물건을 그대로 배치해 어색함 없이 이 곳 생활에 적응을 시키고 있었다. 내가 담당한 그룹의 나이는 평균 85세. 거동이 느릴 뿐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스무 명 남짓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루 7시간을 보냈었다. 하루 이틀 일하고 나서 모두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실습이 끝나는 동안 내 이름을 수없이 말해야 했고 이 곳에 왜 왔는지 계속 반복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지나 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내일이 오면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마치 동화 속을 걷는 듯 나에게도 새롭고 들뜬 날들이었다.
7시까지 출근하여 부엌으로 향한다. 신선한 과일을 물로 씻어 세팅을 하고 배식 준비를 한다. 우유를 먹는 사람, 커피에 당뇨 설탕이 필요한 사람, 커피를 블랙으로 먹는 사람 등등 저마다의 취향을 기억해 그대로 배식을 한다. 먹는 동안 이들의 기억은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일까. 그릇을 다 비우고 먹지 않았다고 고집스레 얼굴을 붉히고 있다. 이런 일들은 그저 이곳에서 흔한 일상이었다. 아이 같은 이들을 대할 때 그에 맞게 상대해 줘야 한다. 때론 엄마처럼 말이다. 모두들 온전한 기억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섞인 새로운 기억으로 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76세 요르마와 짧은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요르마와 폭을 맞추려고 팔짱을 끼고 나는 느리게 요르마는 최선을 다해 걷는다. 86세 엠마와 함께 영화를 듣는다. 나는 안락의자에 엠마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웠다. 흐릿해진 엠마의 시선에서 티브이의 화려한 유혹은 그저 그렇다. 92세 안이아와 함께 나는 누구인지 여긴 어딘지 되새겨 본다. 방을 찾지 못해 요양원을 빙빙 돌아다니는 안이아에게 순간이라는 시간을 잡아 주고 싶었다. 안이아에게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 다만 지금 잠깐의 찰나를 사는 것이다. 유난히 커피를 많이 먹는 깔래비는 항상 가볍게 손이 떨린다. 계속 까무러치는 몸을 씁쓸한 커피로 채우고 버티는 것이다. 하루 중 혼잣말이 대부분인 피르오는 항상 웃는다. 그러다 갑자기 현실이 깨달아지면 우울함에 울기도 하고 맥이 풀린 듯 그대로 멈춰있다. 참 다행히도 그런 시간들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5분도 되지 않아 자기 세상으로 빠져든다. 다시 피르오가 웃는다. 피르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다른 세상이기에 나는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느덧 실습을 마무리하는 날이 왔고 정들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안녕을 해야 했다. 내일이 오면 나는 이들의 기억에서 없는 사람이라 안심을 했다. 내겐 그리움이지만 이들에게 나는 잠깐 머리를 넘겨주는 작은 바람이었기에. 바람을 기억해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다. 긴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며 때론 손과 발이 되어 도움을 줬다는 것으로 감사했다. 유난히 친했던 86세 엠마는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 했지만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괜찮다.
실습하는 동안의 기억이 새록새록 행복하게 떠오른다. 몸은 고되고, 언어는 늘지 않았으나 좋은 경험과 만남이 있었기에 값진 선물을 받은 몇 주였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엄마의 상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 있다. 다만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멀리 떨어진 나의 타향살이가 그저 미안할 뿐이다. 엄마도 가끔 딴 세상을 드나든다. 그래서 행복하면 굳이 현실을 마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도 나이가 들고 세월에게 기억을 뺏길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기억으로 현실에서 최선의 기쁨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