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소녀의 미소는 힘겨워 보였다.

by 올랜진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나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 곧 천둥 번개로 지랄을 떨던 날씨. 우리는 핀란드로 오기 전 싱가포르에서 한 5년 정도 살았었다. 한국 문화가 많이 들어온 상태라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인 슈퍼, 치과, 종교단체, 각종 고깃집, 떡집, 건설업 등등 작은 한국 사회가 잘 마련된 곳이었다. 한국 유학생도 넘쳤고, 그에 따른 학원들도 즐비했다. 집값이 비싼 것만 빼면 살기 좋은 곳이다. 치안도 좋고, 세금도 높지 않다. 크지 않은 나라지만 오밀조밀 예쁘고 동화 같은 나라다.


이 곳에 와서 딱히 불편한 것도 어려운 것도 없었으나 딱 한 가지 거슬렸던 것이 있었다. 거슬렸다기보다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다, 싱가포르는 메이드 문화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사 도우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 같다. 그러나 한국의 가사 도우미와 이 곳의 메이드는 많이 달랐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제일 많이 고용을 하는 것 같았다. 자주 가는 상가에는 메이드를 소개하고 교육하는 곳이 층별로 되어 있었다. 나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어린 소녀들이었다. 개중에는 서른이 넘는 여성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미얀마, 방글라데시에서 어린 소녀들이 이 곳에 일을 하러 온 것이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돼 보이는 소녀들도 있었다. 큰 케리어를 들고 가족들을 떠나 일을 하겠다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육아를 배우고 때론 병자를 간호하는 것도 배운다. 한참 외모에 호기심을 갖고 예쁜 것들을 모으며 친구들과 재잘거릴 나이인데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상가로 들어가면 한 줄로 소녀들과 2~30대 여성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다. 최대한 밝은 얼굴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같은 색 유니폼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얼른 한 번이라도 눈을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관심이 없는 나에게 눈길을 줄 때마다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한 번은 일을 못했다며 매질을 하고 다시 메이드 사무실로 쫓겨난 여성을 본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메이드들을 학대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일한 돈을 주지 않기도 하고, 주말도 없이 일을 시키거나, 마음대로 자르거나, 남은 음식을 처리하게 하거나, 도둑으로 몰거나, 짐을 충분히 나눠 들 수 있는 상황에도 절대 도와주지 않거나... 인간으로서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직업을 찾아 먼 이국땅으로 온 어린 소녀들이 가엽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들의 냉혹한 현실도 안타까웠다. 직업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고용주는 사람을 부리는 모양새를 하고서 흔히 말하는 갑질을 하는 것이다. 한 번은 이사 문제로 며칠이 공중에 붕 떠 버려 잠시 머물 곳을 찾고 있었다. 집을 찾던 중 한국 사람이 랜트를 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집을 보러 갔었고, 그 집도 메이드가 있었다. 방을 소개해 주고 부엌을 보는데 옆에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 보였다. 집주인은 그곳은 메이드가 사는 곳이라고 했다. 딱 봐도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 거기다 갖가지 박스나 쓰지 않는 물건도 넣어 두었다. 창고나 다름없는 곳에 얇은 홑이불만 힘겹게 그들을 마주하는 듯해 애처롭고 씁쓸했다. 어떤 메이드들은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망을 가는 일도 있었다. 생계를 책임지겠다며, 부푼 마음으로 온 어린 소녀들은 직장인으로서 대우보다는 거의 몸종에 가까운 살이에 몸도 맘도 지쳐서 이골이 났을 것이다.


뽀얀 얼굴에 살포시 자리 잡은 여드름, 수줍음 가득 담긴 홍조 띤 미소,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를 떠나 온 얼떨떨한 소녀들이 웃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짐을 지고, 과한 야단을 맞고, 제 몸의 반만 한 아이를 둘러업고, 힘겨운 타향살이에 울고 웃는다. 일을 하러 와서 제대로 대우를 받고 온당한 대가를 받았다면 나는 이 소녀들을 다르게 봤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 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닐 텐데. 뭔가 우위에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순간 사람은 이성이 마비가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은 고용주도 있었다. 드물어서 그렇지.


가끔 그 어린 소녀들이 생각이 났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행복을 잠깐 빌기도 했었다.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받기를, 그 나이에 맞게 행복할 수 있기를, 생계를 빌미로 자녀들을 험악한 세상으로 내몰지 않기를 말이다. 꽃을 피울 나이에 차가운 서리를 잔뜩 맞은 듯 풀이 죽어 있는 그곳의 소녀들이 마땅히 보호받기를 또 나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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