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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디카시

- 강자/박일례

by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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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박일례


어떻게든 살아남아

살고 있는 너




힘이나 세력이 강한 존재를 강자라고 부른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거나 맹수들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면서 살아간다. 강자는 약자의 반대말이다. 약자가 존재해야 강자가 있게 되니 강자임을 입증해 줄 약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조건이다.

디카시 강자에서는 소나무가 강자이다. 그렇다면 약자는 누구일까. 강자에 패한 약자는 벌써 꼬리를 감춘 것인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살고 있는 너’는 죽어 없어질 수 있는 처지를 전복시킬 묘책이 있었다. 어쩌자고 저런 데 씨를 슬어놓고 갔는지 바람을 원망하며 운명 탓으로 돌렸다면 현재의 ‘살고 있는 너’는 없을 터이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척박한 땅이 아니라 흙 한줌 없어 보이는 단단한 바윗덩어리다. 흙에 씨가 들어앉아 꼬물꼬물 초록 깃발을 뽑아 올리는 평범한 생은 애당초 ‘너’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면 살 것이라 했던가. 소나무는 어찌 그 진리를 알고 슬기롭게 대처했는지 쳐다볼수록 기특하다.

몹시도 추운 겨울을 보낸 시절이 있었다. 양말을 세 개 신어도 발에 동상이 걸리고 언 손을 녹이려 가스렌지에 불을 켜니 손이 녹았는지 눈에서 물이 흐르던 시골 겨울이었다. 그때 먹었던 정부미 쌀은 뜨신 밥이었지만 속 깊은 허기는 몰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달까. 이제 그런 매운 겨울 따위는 지나가버렸다. 새로운 페이지를 넘겼다. 윤기 흐르는 밥에 두툼한 겨울이불을 덮지 않아도 충분히 집은 따듯하다. 비로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살고 있는’ 내가 되었다.

연둣빛 화환을 쓴 저 매력적인 몸매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징글징글한 겨울을 그냥 넘겨버린 것이 아니듯이. ‘어떻게든’이 있었기에 ‘살아남아’ 지금이 있다. 씨가 발아할 수 있게 기울인 온갖 노력이 ‘어떻게든’이지 않았을까. 비바람에 굴복하지 않고 바위라도 비빌 언덕으로 여기며 받아들였다. 빚을 내서라도 아이 셋 키우는데 끈을 놓지 않은 나처럼 말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발아가 불발되는 것은 초목이든 아이든 다르지 않더라.

흔한 말로 강자라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자라고 한다. 소나무는 살아남은 것을 자축하듯 카메라를 향해 승리의 V자로 요염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무렴 어떠랴. 너는 존재 자체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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