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가게
사람들 오고 가는 길가
골목 시장 담벼락 아래
고사리 도라지 깻잎을
펼쳐 놓은 할머니.
새벽 별이 첫 손님이고
저녁 달이 끝 손님이다.
아파트4
매연 자욱한
도시의 한복판 아파트
베란다 난간 위로
나팔꽃 줄기가 기어올라
자꾸만 밖으로 몸을 내민다.
거긴 길이 아니야
위험해, 들어와
소리쳐도 소용없더니
어느 아침
기어코 나팔을 꺼내
하늘 향해 뚜뚜따따 나팔 분다.
대낮
파리채를 들고 있다.
포장으로 햇빛 가린
복숭아 장수 아저씨
대낮 열기 후끈한
큰길가 전봇대 아래
꾀는 파리를 쫓고 있다.
복숭아 살이 다칠까 봐
내려치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졸음을 참으며
파리채를 옆으로 휘젓고 있다.
여름
숲에 가면
바람이 많이 이는 건
햇볕이 뜨거워
바람도
몸을 식히러 온 때문이다.
때론 소풍 가듯
바람도 쉬고 싶은 것이다.
계곡물에
찰방찰방 발 담그고 있다가
마냥 놀아선 안 되지
바람은
마을로 내려간다.
모락모락
아파트 뒷마당에 갔더니
어떤 개가 방금 누고 갔는지
누런 똥에 김이 난다.
개나리 가지에도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해님이 누고 간 똥
긴 겨울 웅크리고 있던
땅이 더운 입김을 내쉰다.
1961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민중시> 5집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어린 민중』『그곳을 노래하지 못하리』 『겨울 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등이 있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정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89년 무크지 '민중시' 5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경기도 용인 토월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심장병으로 학교를 쉬고 있다가 2004년 뇌종양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이때부터 동시에 주력해온 정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글쓰기가 어려웠는데도 자신이 구상한 시를 아내와 자녀에게 받아적게 해 '창비 어린이', ‘어린이와 문학’ 등에 동시를 발표해왔다.
시인은 얼굴이 붓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을 출간. 45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