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가 문을 여는 유일한 도구였을 때가 있었다. 예전 우리 집도 그랬다. 일곱 식구 모두가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아마 열쇠 두어 개로 엄마나 또 다른 누군가가 지니고 있었을 터였다. 열쇠를 가진 두 사람이 언제나 집에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왜 우리 집은 식구끼리만 아는 비밀 장소에 열쇠를 두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가끔 아파트 계단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고 문은 잠겨있어서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열쇠는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으로 엉덩이가 식어갔다. 열쇠를 지닌 식구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손전화도 없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퍼질러 앉아 책을 보는 것뿐이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달리 할 게 없었다. 억지로 눈을 글자에 고정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누구처럼 그림에 소질이라도 있으면 연습장을 꺼내서 스케치라도 했으려나. 글에 취미가 있었지만 그런 공간은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심심해서 몸을 배배 꼬며 두어 시간을 보냈을 무렵이었다.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 엄마였는지 아버지였는지 내 위로 언니들이었는지 내 밑으로 동생들이었는지 기억은 없다. 그중 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문 앞에 있었고 집 안에 식구는 문밖에 사람이 있는지 모른 채 있었던 것이다.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따듯한 공간과 차가운 공간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둘이 눈이 마주쳤을 때 반응이 달랐다. 집 안에 있던 사람은 당황한 표정이고 집 밖에 나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분명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렸을 텐데 무슨 까닭에선지 집 안에서는 감지하지 못했다. 미처 문을 열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당황했을 터이다. 나는 어떤가. 빈집이라 생각하고 포기한 채 맨바닥에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사람이 있었다니 황당함을 감출 길 없었다. 급기야 눈물이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좀 세게 문을 두드려보지?” 하는 비겁한 변명이 날아들고 “뭐하다가 사람을 몇 시간씩 세워 두냐?”는 원망을 한껏 실은 볼멘소리를 했다. 시간이 금이라는 격언을 대지 않더라도 아파트 계단에서 보낸 몇 시간은 아깝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에 한 번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 집은 4층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바짝 귀를 세웠다. 그러다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었다. 3층 아줌마 목소리였다. 엄마 목소리도 구분 못 할 정도로 4층 계단에서 들으면 저 밑 1층에서 나는 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엄마다, 에서 엄마일 거다, 에서 엄마여야 한다, 에서 결국 엄마가 아니다, 로 끝나는 잠깐의 해프닝이었다.
한번은 나랑 동생이 같이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러면 별로 심심하지 않다. ‘뭉치면 살고’까지는 아니지만 둘만 되어도 견딜 만은 했다. 시간이 흘러 시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엄마는 기다리는 우리를 발견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는 대단한 꼬투리를 잡은 양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뭐라뭐라 심통 난 말 몇 마디도 던졌을 것이다. 언제 우리가 엄마를 상대로 이런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열쇠가 사라진 시대라고 할 만큼 절대적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열쇠 가게를 하는 지인의 말을 빌리면 ‘상부상조하던 좀도둑이 사라져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옛날에는 간밤에 좀도둑이 드는 적이 많았다. 밤손님이 열쇠뭉치를 망가트리면 열쇠집이 다음날 수리를 해야 했다. 죽이 척척 맞았던 좀도둑도 사라진 열쇠처럼 근황을 못 들은 지 제법 되었다.
최첨단 시대에 맞춰 집이든 어디든 번호 키가 대세다. ‘틱틱틱틱’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목에 열쇠 줄을 목걸이 삼아 걸고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은 없다. 예전에는 맞벌이하는 부모가 아이 목에 열쇠를 걸어주었다. 호주머니에 넣었다간 잃어버릴 수 있어서였다. 걸을 때마다 이리저리로 흔들리던 열쇠 목걸이가 왜 그리 보기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퇴근길에 남편은 처음 보는 아이 둘과 함께 집에 온 적이 있다. 열쇠가 없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남매였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다. 무슨 일인지 언질을 주지 않아도 아이들 얼굴만 보아도 알아들었다. 얼굴이 얼어서 무척 붉었다. 손도 붉었다. 인사도 제대로 못 하는 남매는 여동생이 일곱 살 오빠가 아홉 살 정도로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도 우리 집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금세 만두를 쪄서 상에 올렸다. 허기진 남매는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만두를 잘 먹었다. 부모님이 돌아와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단다. 내가 그랬듯 남매는 열쇠가 없었다. 유난히 추운 날인 데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어둑어둑한 저녁인데 마을에서 얼쩡거리더라며 데리고 왔다. 새끼손가락만 한 열쇠가 뭐라고 아이들을 한데서 어슬렁거리게 했을까. 몸이 얼어서 온통 빨갛던 모습에 나는 빨간 남매로 이름 붙이고 가끔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각자에게만 의미 있는 숫자 몇 개로 열쇠를 대신하는 요즘이다. 무겁지는 않았던 열쇠인데 그조차도 거부한다. 열쇠가 사라졌으나 더 까다롭게 변한 것도 사실이다. 좀도둑도 손을 들 만큼이지 않은가. 아날로그 방식의 고 작은 열쇠 하나로 집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시절이 새록새록 그립다. 문을 열면 익숙한 우리 집 냄새가 훅 끼치고 주름이 별로 없는 엄마도 항상 있던 그 시간 속 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