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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까요?

by 보리

함께 쓰면 시너지 효과가 날까요?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제가 산증인입니다. 시너지(synergy)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분산 상태에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서로 적응하여 통합되어 가는 과정. 한 집단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소모하는 에너지의 총체라고 합니다. 이런 사전적 의미를 고스란히 제가 경험했습니다.


'분산 상태’에 있는 각자의 글쓰기는 남들과 함께하면 반드시 발전합니다. ‘서로 적응’하는 것은 금방입니다. 왜냐하면 글쓰기라는 동일한 ‘목표’가 있기에 서로에게 스며들기는 참 쉽습니다. 같은 종착지를 향해 손잡고 나아가는 단체 여행객이랄까요.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전년도에 글쓰기 모임에 다녔습니다. 대략 8, 9명의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 카페에서 모였습니다. 자기가 마실 차를 계산하고 예약된 공간에 시간 맞춰 앉는 거지요. 우리를 이끌어 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전업주부는 딱 한 사람이었어요. 수간호사, 학교서무과장, 심리상담사, 시인, 수필가, 네일아트 사장, 일본어 강사 등 다양했지요. 한 시간을 달려서 왔던 이십 대 중반 남자도 기억이 납니다. 다들 바삐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을 찾아갔습니다.


수간호사 회원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한다’는 칭찬을 요즘 만큼 많이 들은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살맛 나는 시간을 보낸다고 만족했지요. 그 회원은 워낙 책을 많이 읽었기에 처음 쓰는 글인데도 보통 수준을 웃돌았습니다. 많은 작가가 말하듯이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일단은 많이 읽으라고 하지요. 흐르고 넘치도록 읽으면 결국 쓰고 싶어진다고요. 그 회원이 그랬나 봅니다.


저는 모임에 가입해서 결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모임에 열의가 있었지요. 제가 전업주부일까요. 천만에요.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남편 일을 도와 가게도 보고 직접 현장에 나가 고객을 관리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글쓰는 일을 병행했습니다. 글쓰기 수업이 있는 수요일 저녁 7시는 무조건 시간을 비워둡니다. 이리저리 변경해서라도 시간을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아이들도 으레 수요일이 되면 엄마, 오늘 저녁에 가시겠네요, 아는 척을 합니다.


일주일만에 글 한 편을 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거쳐 2주에 한번 글을 내기로 했습니다. 회원들을 반으로 나눠서 격주로 내는 거지요. 저만 일주일에 한번 냈습니다. 한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다소 벅차다면 벅찰 수도 있지만 배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글이 써질 때 실컷 써보자 결심했거든요.


반강제가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억압을 즐기면서 숙제를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벅차서 이번은 참석만 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회원도 가끔 있었습니다. 수요일 모임이 있기 전날 저녁까지 글 숙제를 비공개 카페에 올려야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뒷날 오전에 피드백해 주는 게시글을 올립니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글을 정독하고 장단점을 상세히 올려줍니다. 그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지 모릅니다. 무조건 좋은 말만 해주는 분이 아니라서 어떨 때는 기분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풀어놓은 들판에서 곁길로 새는 염소를 막대기로 살살 치면 제자리로 돌아오지요. 선생님이 하나만 지적해줘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염소처럼 결국 도움을 받습니다.


어딜 가서 내 글을 그리 객관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혼자서 쓰고 혼자서 읽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일기입니다. 일기는 자신이 독자입니다. 자신만 만족시키면 그것으로 백 퍼센트 글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글은 남에게 읽히고자 씁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아주지만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합평을 합니다. 숙제해 온 사람들이 글의 배경과 대략적인 글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 다른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장단점을 이야기합니다. 면전이라 좋은 말을 주로 하지만 기어이 나올 말들은 나오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단점을 말하기 위해 열 마디의 장점으로 도포를 한달까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남이 보아주지 않으면 절대 발견되지 않는 약점들이 있습니다. 문법적인 문제나 글의 흐름에서 덜커덕거리는 부분이나 심지어 오타도 남이 지적하기 전에 거듭 퇴고했음에도 자신은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그 모임을 하면서 가장 놀라운 경험은 문학적인 글쓰기가 지지리도 안 되는 회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 회원은 착실히 숙제는 해오는데 매번 글이 일기나 생활 수기 같은 평범한 글이었습니다. 문학적인 장치가 배제된 다소 싱거운 글이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언제까지 이런 글로 시간을 보낼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사실, 딱히 뭐라고 지적할 부분은 아니니까요. 당신의 글은 너무나 평범하니 개선을 해보세요,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수업이 중지되기 한 달 전쯤부터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이런 게 수필이구나 하는 글을 내놓더라는 겁니다. 사유가 있는 문학적인 글쓰기에 한 발 들여놓은 글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회원은 알을 깨고 구겨진 날개를 펼치려는 몸짓을 했습니다.


다른 회원도 그랬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왔던 대학병원 간호사는 글 숙제가 있는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거라고 울상을 지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고 자신은 시간도 없노라고 그만두려 했습니다. 그런 부담감을 지니고 올 필요는 없으니 당분간 쓰지 말고 참석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던 회원은 다음 주에 숙제를 올렸습니다. 격주로 내는 숙제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글쓰기 전용 노트북을 사야겠다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역병이 번지는 시대로 접어들어 모임은 자연스레 중단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글을 내던 그 아름다운 저의 습관도 얄짤없이 끊어졌습니다. 아마도, 이런 시절이 올 줄 알고 폭풍같이 글을 몰아 썼나 봅니다. 혼자서는 제대로 된 글 한 편 끝내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그 많은 글자를 찍어냈었나 믿기지 않을 정도이지요. 다시 모임을 가지려 애를 쓰다가도 확진자가 확 들어서 또 미루어지고, 주춤해져서 모일까 하다 보면 어느새 뒤숭숭한 날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러던 때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이런 온라인 공간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나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여기도 카페는 카페잖아요. 서로 격려해주고 같은 목적으로 모였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입니다.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스스로에게 날마다 숙제를 내기도 하지 않나요. 매주 게시글 한 개는 올려서 나의 전진을 보이고 남의 발걸음도 눈여겨보자면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 친구랑 가는 것이라는 명답처럼 말이지요.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문장을 풀었더니 이렇게 긴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저는 손가락도 수다스럽네요. 긴 글 읽으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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