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어둠이
아카시아 꽃을
꽁꽁 싸맸다
답답하다고
답답하다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밖으로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푹, 절여진
봄밤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내가 고장 났어!
두 눈이
말똥 말똥
내가
커져 있어
아무리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아
어쩌죠?
하루 종일
꽃밭에 앉아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장미라고 우기는
저 고양이
날카로운 발톱을
땅에다 묻을까요?
무럭무럭 자라서
야옹야옹 꽃을 피우면
고양이 울음을 꺾어다가
꽃병에 꽂을까요?
하루 종일
장미라고 우기는
저 고집쟁이 고양이를
어쩌죠?
나는 1학년
연필 지팡이를 짚고
또박또박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는 중이야
할머니처럼
지팡이 짚고
나무의 집
나무 밑에서
쉬고 싶을 땐
그냥 들어가면 안 돼
똑, 똑,
나무 아저씨
여기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돼요?
그렇게 물어봐야 해
왜냐하면
나무가 팔 벌린 만큼
나무의 집이고
그 밑의 그늘만큼
나무의 마당이거든
-2022 상반기,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작-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1995년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에서 시 「가뭄」외 1편이 당선되었고,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사과의 길」과 「냄비」가,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할미꽃」과 「고무줄놀이」가 나란히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으로 시집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 동시집 『사과의 길』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