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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Aug 07. 2023

동시에 동시해 - 김철순 동시들

동시

봄밤


어둠이

아카시아 꽃을

꽁꽁 싸맸다


답답하다고

답답하다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밖으로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푹, 절여진

봄밤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내가 고장 났어!


두 눈이

말똥 말똥


내가

커져 있어


아무리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아


 


 


 


 


어쩌죠?


하루 종일

꽃밭에 앉아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장미라고 우기는

저 고양이


날카로운 발톱을

땅에다 묻을까요?


무럭무럭 자라서

야옹야옹 꽃을 피우면


고양이 울음을 꺾어다가

꽃병에 꽂을까요?


하루 종일

장미라고 우기는

저 고집쟁이 고양이를


어쩌죠?


 


 


 

 


나는 1학년


연필 지팡이를 짚고


또박또박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는 중이야


할머니처럼

지팡이 짚고


 


 


 


 


나무의 집


나무 밑에서

쉬고 싶을 땐

그냥 들어가면 안 돼


똑, 똑,

나무 아저씨

여기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돼요?

그렇게 물어봐야 해


왜냐하면

나무가 팔 벌린 만큼

나무의 집이고

그 밑의 그늘만큼

나무의 마당이거든


 


 


-2022 상반기,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작-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1995년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에서 시 「가뭄」외 1편이 당선되었고,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사과의 길」과 「냄비」가,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할미꽃」과 「고무줄놀이」가 나란히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으로 시집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 동시집 『사과의 길』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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