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를 피하는 백종원, 실력을 증명하는 안성재의 경제학
본문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속 백종원, 안성재 심사위원의 평가 방식을 경제학의 '신호 발송 게임'과 공용/분리 균형 이론으로 분석합니다.
명실상부 넷플릭스의 최고 인기 예능 <흑백요리사2 : 요리계급전쟁>. 서로의 심사 결과를 알 수 없는 백종원 대표의 손끝이 흔들린다.
흑백요리사를 상징하는 두 심사위원의 1라운드 '흑수저 평가'. 만약 당신이 이를 보며 안성재 셰프에 비해 백종원 대표가 좀 관대하다고 느꼈다면, 예능을 제대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 관대함의 정체가 배려라고 생각한다면 숨겨진 재미있는 '게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두 거물의 서로 다른 심사 스타일을 구경하는 것이다. 한 명은 요식업계의 대부로서 '대중의 언어'를 말하고, 한 명은 미슐랭 3스타 셰프로서 '미식의 정수'를 짚어낸다.
그렇다면 여기 숨겨진 게임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시즌2에 추가된, 두 심사위원 모두의 합격을 받아야 하는 '히든 백수저' 미션(위 이미지)에 주목해보자. 서로의 심사 결과를 모른 채 요리의 완성도만으로 합격 여부를 적어내야 하는 상황-그들이 마주하는 4가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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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구간...
이 4번 시나리오야말로 백종원 대표가 처한 '비대칭적인 위험'의 핵심이다. 3번 시나리오(백 합격, 안 탈락)는 "그럴 수 있지"라며 대중적인 입맛과 미슐랭의 디테일 차이로 충분히 설명되지만, 4번은 다르다. 미슐랭 3스타라는 절대적 기준이 인정한 실력자를 요식업 사업가가 몰라봤다는 프레임은 그의 전문성 전체를 뒤흔들 평판의 함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두 심사위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찾아가게 된다.
상대(안성재)가 어떤 패를 내놓을지 전혀 알 수 없는 게임에서, 백종원 대표는 자신의 거대한 브랜드를 지켜야 하는 ‘수성(守城)'의 입장이다. 여기서 그는 아주 노련한 수를 하나 둔다. 그것은 바로 요리의 미세한 결점이 보이더라도 일단 ‘합격’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왜일까? 그에게는 Scenario 4(백 탈락 & 안 합격)라는 치명적인 독이 든 성배를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깐깐한 안 셰프가 인정한 맛을 '감히' 대중 요리 전문가가 몰라봤다"는 평판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그로 상징되는 브랜드 전체의 전문성을 의심받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백 대표는 요리에 대해 가급적 ‘합격’이라는 동일한 신호를 보내는 공용 전략(Pooling Strategy)을 취한다. 만약 안 셰프가 합격을 준다면 거장들의 의견 합일이 되어 그의 위상이 동반 상승하고(Scenario 1), 안 셰프가 탈락을 주더라도 "나는 대중적인 입맛이라 좀 더 좋게 다가왔다."는 따뜻한 사업가의 프레임(Scenario 3) 뒤로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다. 결국 그의 너그러움은 그의 성품이면서도, 그 이전에 자신의 진짜 패를 감추고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는 가장 영리한 ‘전략적 모호함’인 셈이다.
상대의 패를 볼 수 없는 것은 이 쪽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안성재 셰프는 리스크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심사위원이라는 자격과 미슐랭 3스타라는 중압감은 이 시스템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기준이어야만 한다. 그는 백 대표가 합격을 주든 탈락을 주든, 혹은 대중의 여론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엄격한 미식 기준에 부합할 때만 ‘합격’ 신호를 보낸다.
이는 '완벽주의'란 자신의 유형에 따라 합격과 탈락이라는 신호를 명확하고 날카롭게 나누어 내보내는 분리 전략(Separating Strategy)의 전형이다. 그는 이 위험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만약 그가 백 대표의 눈치를 보며 기준을 완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평판에 가장 큰 오점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안 셰프는 이 신호 분리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전문적 권위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그가 휘두르는 단호한 탈락의 창 끝은, 자신을 다른 누구와도 섞이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전문가적 신호(Signaling)가 되는 셈이다.
혹시 방금 이 내용을 읽으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단번에 무릎을 치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당신은 방금 경제학 전공자들도 머리를 싸매는 '신호 발송 게임'의 초입을 마스터한 셈이다.
사실 우리가 예능을 보며 가볍게 이해한 이 ‘공용’과 ‘분리’의 메커니즘은 게임이론의 거장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주제다. 실제 대학 교과서에서 이 이론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짝 엿보자.
먼저 위 그림(공용 전략)을 봐보자. 갑자기 소송 단어와 그림이 나타나서 당황스럽겠지만, 원고에 해당하는 굵은 선과 필자가 붙여둔 포스트잇에만 주목하면 된다. *그림의 피고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금은 넘어가도 좋다.
핵심: 요리가 맛있든(승소유형) 아쉽든(패소유형) 관계없이, 백 대표의 선택을 나타내는 굵은 선은 단 한 방향, '합격(낮은 합의금 요구)'이라는 하나의 신호로 통일된다.
결과: 상대방이 어떤 패를 내든 'Scenario 4(안성재는 합격인데 나는 탈락)'라는 치명적인 독배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패를 숨기고 의견을 하나로 모아버리는 것이다. 영리한 '전략적 모호성'이다.
반면 이 그림은 안 셰프가 보여준 '분리전략'의 정석이다. 앞선 백 대표의 그림과 결정적인 차이가 보이는가?
핵심: 신호를 보내는 주체(안성재 셰프)는 요리가 맛있을 때(승소유형)와 아쉬울 때(패소유형) 내보내는 신호를 다르게 설계한다.
결과: 그래프의 굵은 선(안 셰프의 선택)이 유형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안 셰프는 이런 신호의 분리를 통해 자신의 엄격한 미식 기준과 전문성을 증명한다.
나를 한 학기 동안 괴롭혔던, 그 이름도 무서운 '동태적 미비정보 게임', 그러나 그 이름에 '백종원 대표, 안성재 셰프' 포스트잇을 붙이니 그 트라우마도 옅어지는 것 같아 뜻깊었다.
또한 글을 처음 썼을 때는 막 1~3화가 진행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말이 난 후에야 올리게 되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도 이 글이 <흑백요리사2 : 요리계급전쟁>을 즐기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법이 되었기를 바란다.
약간의 비하인드를 덧붙이자면 11~12화의 내용은 탑 7이 경쟁하는 '무한 요리 천국'이었다. 이 라운드에서 백종원 대표와 안성재 셰프는 각각의 점수를 서로 비공개로 써내려가는데, 실시간으로 보면서 안성재 셰프의 점수가 더 '박하기를' 기도하면서 보았다 ㅎㅎ 두 심사위원의 전략에 대해 서술한 글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도 19개의 '요리 천국' 음식에 대해 백종원 대표의 평균 점수는 약 89.2점, 안성재 셰프는 (8점 넘게 차이나는) 약 81.1의 평균 점수를 주며 각자의 공용 전략(일단은 좋은 평가를 주자!)&분리 전략(이건 아닌데... 제 점수는 65점입니다.)을 충실히 수행해주셨다.
혹여 다시 정주행하게 된다거나, 제작 발표가 난 흑백요리사 시즌3를 보게 된다면-혀끝으로 전해질 '맛'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더해 그들의 '행동 속에 숨겨진 전략'을 읽어내는 짜릿함을 함께 누려보면 어떨까?
※ 이번 포스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게임이론에서의 '신호'에 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전에 올린 '③ 너는 숨기고 나는 읽는, 기울어진 게임' 포스트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본문에 사용된 영상 <흑백요리사2 : 요리계급전쟁>의 이미지는 작품의 경제학적 분석을 돕기 위한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