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속 노벨상 이론 : 게일-섀플리 알고리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 숨겨진 경제학의 비밀

by 묘한 경제

※ 본문은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을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파트너 선정 과정을 통해 분석합니다.

다운로드.png 형이 날 찍으면 안되죠! 날 언제 봤다고 형이..!

역대 최고의 무한도전 가요제라고 불리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

음악도 무대도 모두 잡았지만, 초반부-가요제의 파트너를 선정하는 디너쇼 또한 너무도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정형돈과 '초면'인 정재형의 어색한 만남부터 처음부터 지드래곤만 바라보던 박명수의 일편단심까지.


그런데, 이 가요제를 보며 웃은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급의 아이디어를 놓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시계를 약간 돌려 2012년으로 가보자. 전 세계 경제학의 시선은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로이드 섀플리와 앨빈 로스 교수가 '안정적 배분 정착과 시장 설계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용이 조금 졸려졌지만, 참고 조금만 더 가보자. 이 지루해 보이는 이론이 도대체 무한도전과 무슨 상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는 게 없는 무도'란 말처럼- 노벨상 위원회가 스웨덴에서 해당 논문을 검토하고 있었을 2011년에 이미 이 이론을 (말그대로)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말이다.


긴 이름 빼고 전혀 닮은 게 없어보이는 '안정적 배분 정착과 시장 설계 이론(및 게일-섀플리 알고리즘)'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디너쇼'. 그러나 둘은 그들 공통의 목표인 '파트너 선정'을 위해 몇 개의 합리적 배경 뼈대를 구축했다.


1. 첫번째 공통점 : 박명수 씨는..? 지드래곤, 빅뱅의 지드래곤이요.

다운로드 (1).png 지드래곤(GD)은 박명수에게 확고부동한 '1순위' 뮤지션이다. GD 입장에서의 박명수는...

첫번째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확고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전제다. 쉽게 말해 '저는... 뭐 아무나 좋아요'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박치인 노홍철보다는 가수인 하하를, 까칠한 정재형보다는 홍일점 바다를 향해 단 1%라도 더 기우는 마음이 있어야 파트너 매칭은 비로소 작동한다.


사진에서처럼 박명수는 일관된 선호를 보이며 다른 뮤지션들이 나올 땐 미동도 않다가 오직 GD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는 박명수에게 GD는 '1순위' 파트너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각자의 선호 리스트는 뮤지션에게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GD 역시 정준하와 박명수 사이에서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저울질했고, 결국 박명수를 택함으로 박명수가 정준하보다 그의 리스트 '상단'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모두가 각자의 마음속에 확실한 등수를 매긴 리스트를 들고 있다'는 사실. 가요제 디너쇼가 노벨상 알고리즘 급의 매칭 연구소가 되는 첫 번째 세팅이었다.


2. 두번째 공통점 : 깔끔하게 나뉜 '갑'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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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토대가 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의 특징은 '제안하는 집단'과 '선택하는 집단'이 엄격히 나누어진다는 점에 있다. 단적으로, 제안하는 집단(멤버)은 '영업사원'으로서 자신의 노래를 보여주고, 춤을 추고, 자신의 본질(?)인 콧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구애를 보낸다. 어떻게든 선택하는 집단(뮤지션)의 선호 리스트 상단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다.


반면, 의자에 앉아 멤버들의 재롱을 지켜보는 뮤지션들은 멤버들의 선호 리스트를 알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에게 찾아온 제안자들 중 누가 가장 자신의 음악적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뮤지션들은 이 '아쉬운 쪽'인 멤버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길들이기 시작한다.

"녹음할 때 콧소리 빼라면 빼실 수 있으세요?"
"몽환적인 음악을 소화하실 수 있으신지..."

이런 질문들은 수락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제안자의 색깔을 자신의 음악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이다. 결국, 상암동 디너쇼의 그 난장판 같던 장기 자랑은 단순한 웃음 사냥이 아니라, 수락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고 설득하는 필사적인 영업 활동이었던 셈이다.


3. 세번째 공통점-거절을 통한 최적화

다운로드 (3).png 거절당한 제안자는 처참하게 끌려나오면서도, 다음으론 누구에게 제안할지 생각해야 한다.

디너쇼에서 한 명의 뮤지션에게 여러 멤버가 몰릴 때, 뮤지션은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거절'한다. 거절당한 멤버는 질질 끌려나온 뒤, 자신이 선호하는 다음 뮤지션에게 다시 구애해야 한다. 이 과정은 1인자인 유재석조차도 피할 수 없다. 이 '구애-거절-재구애'의 반복이야말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이 최적의 짝을 찾아가는 핵심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차 없는 쳐내기: 한 명의 뮤지션(수락자)에게 여러 명의 멤버(제안자)가 몰려들 때, 뮤지션은 냉정하게 자신의 리스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한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쳐낸다.

"질질질~", 다음 타겟을 향한 강제 이주: 유재석이 무대 밖으로 끌려나가는 장면은 알고리즘의 '재시도' 단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거절당한 제안자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즉시 다음 뮤지션(이적)에게 달려가 다시 구애한다.

이 반복은 겉으로 보기엔 정신 없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한 최적화 프로세스다. 거절당한 멤버들이 끌려나가며 다른 뮤지션에게 기회를 옮길 때마다, 사회 전체의 매칭은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모한다.

* '안정적'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 :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말은 "나 사실 저 사람이랑 하고 싶은데!"라며 판을 뒤엎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거절의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회가 안정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 제안자(멤버) 입장: "내가 가장 좋아했던 1순위에게는 이미 차였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고백해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이야."
- 수락자(뮤지션) 입장: "나에게 온 수많은 고백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옆에 세워뒀어. 굳이 다른 사람을 쳐다볼 이유가 없지."

결국, 거절당한 멤버들이 부지런히 다음 타겟을 찾아 질질 끌려가며 고백을 이어가는 과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함이나 미련이 남지 않는 최적의 짝'을 찾아가는 미련 제거 방법인 셈입니다.
즉, 이렇게 모두가 "이 정도면...만족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상기했듯 노벨상을 거머쥔 '안정적 배분 정착과 시장 설계 이론'의 '안정적' 부분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런데...예능과 학문은 다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공통점대로만 흘러갔다면, 2011년 상암동은 경제학의 성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의 신은 이 평화로운 알고리즘에 아주 치명적인 독을 탔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이 알고리즘의 가장 잔인하면서도 위대한 ‘심장’을 들여다봐야 한다.


알고리즘의 심장 : "잠시만요, 보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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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이 매칭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을 증명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 규칙에 있다. 바로 '잠정 수락(지연 수락) 후 일괄배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과정에 단 하나를 추가-수락자는 당장 고백을 수락하는 게 아니라 해당 한 명에게 "일단 내 옆에 서 계세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합법적 어장관리다. 나에게 고백한 사람이 현재로선 최선일지라도, 나중에 더 나은(우선순위가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가차 없이 차버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이 잔인한 기다림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안정적 매칭'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GD의 선호도를 가상으로 아래와 같이 가정해보자.

1. 정형돈

2. 박명수

3. 정준하

(...)

GD는 박명수와 정준하가 구애한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박명수'를 선택했다. 이때 GD는 박명수를 최종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잠정 수락' 상태로 곁에 둔다.


그런데 잠시 후, 자신의 1순위 뮤지션에게 차인 정형돈이 뒤늦게 GD에게 구애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미련 없이 박명수를 쫓아내고 선호도 1위인 정형돈을 선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GD는 자신의 최선을 찾고, 박명수는 다시 다른 짝을 찾아 떠난다. 결과적으로 GD는 1순위 파트너를 얻었기에 판을 뒤엎을 이유가 없어진다.

반대로 정형돈이 끝까지 오지 않더라도 GD에게는 보험으로 둔 2순위 박명수가 남아있다. "기다려본 결과, 이 사람이 정말 나의 현실적 최선이다"라는 확신을 모두에게 심어주는 장치, 그것이 바로 잠정 수락의 마법이다.


예능의 심장 : "정형돈씨 안돼요! 낙장불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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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한도전 제작진은 이 노벨상급 안전장치를 아주 정교하게 박살 냈다. 가요제 파트너 선정 룰에는 '지연 수락'이 없었다. 뮤지션이 구애한 멤버 중 한 명을 선택하는 순간 그 커플은 종신 계약이다. 나중에 갈아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불안정한 매칭'을 이끌어내었다.

당시 정형돈은 모든 뮤지션 라인업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GD와 같이 더 선호하는 뮤지션이 있었지만, 예능인으로서의 본능이 속삭였다. "지금 정재형이랑 좀 투닥거려서 분량을 뽑고, 나중에 GD한테 가자!"

이것은 큰 실수였다. 정형돈이 예능적으로 정재형에게 다가간 순간, 정재형은 게일-섀플리라면 응당 행사했어야 할 '잠정 수락(보류)' 대신 '즉시 수락'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형이 날 찍으면 안되죠! 날 언제 봤다고 형이..!"
"나 잘 몰라요..! 오늘 처음 본 분이에요!!"

정형돈의 이 절규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인한 매칭 실패에 대한 처절한 비명이었다. 뒤에 GD라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음을 알면서도, 예능이란 족쇄에 쓰라린 뒤통수를 맞은...


마치며 : 사실은...

여기까지 읽은 독자분들에게 작은 고백을 하자면, 실은 2011년에 무한도전 가요제를 보고 알고리즘을 고안했더라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이 글의 주인공인 게일-섀플리 알고리즘(Gale-Shapley Algorithm)은 무려 1962년에 고안된 이론이고, 노벨상 위원회가 이 정교한 이론의 가치를 인정해 상을 준 것이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2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50년의 시간차와 핵심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과 <무한도전>을 같은 선상에서 들춰보게 되는 이유는- 경제학은 '가장 효율적인 짝'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무한도전은 '잘못 만난 짝과 어떻게 레전드를 만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1년, 불안정한 매칭에 해당하는 정형돈과 정재형의 만남(파리돼지앵)은 그 해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탄생시켰고, GD를 향한 박명수의 일편단심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시원한 명곡을 만들었다.

어쩌면 현실에서의 매칭도 완벽한 알고리즘보다는, 그 때는 싫었던 '낙장불입'의 순간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감동과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본문에 사용된 영상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편)>의 이미지는 작품의 경제학적 분석을 돕기 위한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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