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아냐와 다미안
지난 1편에서, 우리는 스파이와 비밀경찰이라는, 두 어른의 치열한 심리전을 엿보았다.
결국 냉철한 스파이 로이드는 처남 유리의 '우월 전략'을 간파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요원다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 싸움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가 각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둘 다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역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알아볼 게임 이론의 가장 유명한 모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그리고 이 역설적인 게임의 주인공으로, 이든 컬리지의 두 아이만큼 완벽한 조합은 없을 것이다.
'플랜 B'의 핵심, 다미안 데스몬드와 어떻게든 그와 친해져야만 하는 초능력 소녀, 아냐 포저다.
먼저 아냐 포저(오른쪽). 그녀는 아버지의 임무를 돕기 위해 '타겟'의 차남 다미안과 반드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특명을 받았다.
하지만 눈앞의 다미안은 생각보다도 더 재수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도련님이다.
아냐는 임무를 위해 자존심을 누르고 그에게 다가서려 하지만(협력),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고 싶기도 하다(배신).
한편 다미안 데스몬드(왼쪽)의 마음속은 더 복잡하다.
별 볼 일 없는 조그만 녀석이라고 무시하면서도, 자꾸만 아냐가 신경 쓰이고 얼굴이 붉어진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녀에게 잘해주고 싶지만(협력), 데스몬드 가문이라는 자존심이 서민 계집과는 엮이지 말라며 앞을 가로막는다(배신).
임무와 자존심. 설렘과 가문의 이름.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서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밀어내야 할 이유도 확실한 둘.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용해 '죄수의 딜레마'를 알아보자.
MISSION 3 :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다
이전 미션처럼, 이번에도 아냐와 다미안에게는 각자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아냐 포저 : [임무를 위해 차남(다미안)과 가까워지려 노력한다(협력) vs 재수 없는 다미안을 거부, 거리 둔다(배신)]
다미안 데스몬드 : [아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잘해준다(협력) vs 서민인 아냐를 무시한다(배신)]
이번에도 각 선택에 따른 조합을 먼저 정리하고 보수 행렬을 전개해보자.
1. 아냐 [협력] & 다미안 [협력] → (+5, +5)
두 사람 모두 용기를 낸 최고의 결과.
다미안은 그와 친해지고 싶다는 아냐의 마음을 확인하고, 아냐 또한 다미안의 진심을 알아챈다.
2. 아냐 [협력] & 다미안 [배신] → (-10, +10)
아냐는 용기를 내 손을 내밀었지만, 다미안은 너같은 땅딸보 서민 계집하고는 엮이지 않는다며 무시한다.
주변 친구들은 "역시 명문가의 차남!"라며 환호하고, 그의 '데스몬드 가문'으로서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반면, 아냐는 모두의 비웃음 속에서 '주제도 모르는 서민'이 되어버린다.
3. 아냐 [배신] & 다미안 [협력] → (+10, -10)
기적적으로 다미안이 먼저 마음을 열었지만, 아냐는 임무고 뭐고 그 순간의 욱하는 감정에 재수없는 다미안의 마음을 거절한다.
그 결과 아냐는 의도치 않게 '데스몬드 가문을 거절한 여학생'이라는 전설적인 명성을 얻고,
다미안은 '서민에게 차인 도련님'이라는 최악의 굴욕을 맛본다.
4. 아냐 [배신] & 다미안 [배신] → (0, 0)
서로 진심을 숨기고 티격태격만 할 뿐, 얻는 건 없다.
이걸 이제 능숙하게 보수 행렬로 만든다면 다음과 같다.
각자에게 우월 전략이 있는가? 있다!
먼저 아냐의 경우로 들어가보자.
- 만약 다미안이 '협력'한다면?
아냐는 지금이 다미안에게 한 방 먹일 타이밍이다. 손을 잡는다면 +5의 보수를 얻지만, 여기서 '배신'하면 +10의 보수를 얻는다.
- 만약 다미안이 '배신'한다면?
아냐는 곤란하다. 여기서 '협력'해봤자 자신은 -10점을 받을 뿐이다. 차라리 같이 '배신'하여 0에 머무르는 게 나은 선택이다.
이와 같이 아냐는 상대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상관없이 '배신'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다미안도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계산을 하고 있다.
상대(아냐)가 협력하든 배신하든, 협력하는 그녀의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하는 그녀에 맞게 무조건적으로 같이 배신하는 게 우월전략이다.
결국,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과인 [협력, 협력](5,5)에 도달하지 못한 채 '합리적'으로 우월전략을 선택하며 (0, 0)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개인의 합리성이 집단의 최선을 막는 역설적인 상황. 이것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의 핵심이다.
MISSION 4 : 벗어날 수 없는 '내쉬 균형'의 덫
이 비극이 과연 이든 컬리지 속 두 문제아의 최선일까?
(+5, +5)라는 안정적인 보수가 있는데, (0,0)을 얻는 이 상황은 과연 안정적인가?
나아가, 만약 한 명이라도 마음을 바꿔 다른 선택을 한다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내쉬가 만든 개념,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소환해야 한다.
내쉬 균형이란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전략을 최적화하여, 아무도 혼자서는 현재 상태를 바꿀 유인이 없는 안정 상태'를 말한다.
다시 우리의 게임판 (0, 0) 지점을 보자.
아냐 입장: 다미안이 [배신]을 선택한 이상, 나도 [배신]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여기서 나 혼자 [협력]으로 바꿔봤자 나만 바보가 될 뿐!
다미안 입장: 아냐가 [배신]을 선택한 이상, 나도 [배신]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여기서 나 혼자 [협력]으로 바꿔봤자 나만 굴욕을 맛볼 뿐이다.
결국, (배신, 배신)이라는 결과는 두 사람 모두 혼자서는 빠져나갈 이유가 없는, 이 게임의 유일하고도 강력한 '내쉬 균형'이다.
한 번 균형 상태에 빠지고 나면, 균형 상태의 어떤 플레이어도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 무서운 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미션의 예시를 다시 가져왔다.
이 상황에서 유리의 우월 전략은 '소극', 그리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유리의 우월 전략을 읽은 로이드의 '적극'까지가 기존의 균형이었다.
이 균형 상태가 과연 내쉬 균형인지, 다시 말해 로이드도 유리도 혼자 자신의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인지 그들에게 몰입해서 검토해보자.
유리 : 지금의 전략은 '소극'. 이 상태에서 나 혼자 '적극'으로 선택을 바꾼다면 -15였던 나의 보수가 누나를 실망시켜 -20으로 떨어져버린다. 두 경우 다 마음에 안들지만 그래도 손해는 적은 게 낫지. 근데, 내가 어느 상황이든 '소극'을 선택하는 게 유리한 거 이미 계산한 거 아니었어?
로이드 : 지금의 전략은 '적극'. 이 상태에서 나 혼자 '소극'으로 선택을 바꾼다면, +10이었던 나의 보수가 +3이 되어버린다. 유리의 우월전략이 '소극'인 이상 내가 굳이 전략을 바꿔서 잘 차려진 밥상을 걷어찰 필요가 없지. 아니 애초에, 유리가 '소극'을 선택한 시점에서 나에겐 '적극' 전략이 '소극' 전략보다 이득인 건 내 선택을 고를 때 이미 계산했었잖아.
...그렇다. '내쉬 균형'이라 무섭게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계산을 통해 게임이 도달할 균형점을 찾았었고 이에 '내쉬 균형'이란 이름만을 붙여준 것.
당연히 이전 미션의 균형도 (혼자서는 현재 상태를 바꿀 유인이 없는) 내쉬 균형이었다.
이처럼, '내쉬 균형'은 상대방의 선택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나의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게임이 어떤 상태로 수렴하게 될지 알려주는 강력한 분석 도구다.
하지만 <스파이 패밀리>의 모든 게임이 지금까지의 예시들처럼 하나의 명확한 균형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로이드와 요르가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균형점이 두 개 이상이라면?
혹은, 아무리 분석해도 안정적인 균형점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눈치 싸움이라면?
이 또한 추후에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SHORT MISSION:
이번 미션에서 아냐와 다미안은 영원히 (배신, 배신)의 균형점에 갇혀 혼자서는 빠져나올 생각을 안하는 '내쉬 균형'에 도달함을 알았다.
특히 그들이 빠진 '죄수의 딜레마' 속 내쉬 균형에서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너가 정말 협력하겠다는 마음만 내가 읽을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협력할 텐데'라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어라..?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아냐는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나? 다미안이 정말로 '협력'하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냐는 확신할 수 있지 않나?
마음을 읽는 아냐는 그렇다면 죄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거 아닐까?
이 질문을 해결할 실마리, '정보의 비대칭성'은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해서 다룬다.
이미지 출처 : 만화 <스파이 패밀리> © Tatsuya Endo / Shueisha, 한국판 (주)학산문화사
모든 저작권은 원작자(Tatsuya Endo), 출판사(Shueisha), 국내 퍼블리셔(학산문화사)에 있습니다. 이 글은 비평과 교육을 목적으로 해당 작품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