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능력자 아냐가 정보 비대칭을 활용하는 방법
지난 글에서는 서로에게 끌리지만, 서로에게 속마음을 숨기는 두 사람에 대해 알아봤다.
다미안 데스몬드는 귀여운 아냐를 좋아하지만, 명문가의 자존심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아냐 포저는 임무를 위해 다미안과 반드시 친해져야 하지만, 재수 없고 가끔은 밉기도 하다.
그 결과 둘은 합리적으로 선택했으나 '죄수의 딜레마' 상태에 빠져버렸다.
(협력, 협력)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두고, (배신, 배신)이라는 내쉬 균형에 갇혀버린 것이다.
서로가 '너가 협력한다면 나도 협력할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
그러나, 여타 죄수의 딜레마와 다르게 이 관계에는 중요한 변수 하나가 숨어 있다.
아냐 포저의 정체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다.
MISSION 5 : 아냐만 아는 '정보의 비대칭'
다미안은 친해지려고 다가오면서 신경 쓰이게 해놓고, 또 때로는 자신을 밀어내고 놀리는 아냐의 마음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초능력자인 아냐는 다미안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보고 있다는 본심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우리가 경제학에서 배우는 정보의 비대칭이 나타난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한쪽 플레이어가 다른 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하며, 이에 따라 전략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개념을 다미안과 아냐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다미안 : 아냐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평소처럼 '안전하고 합리적인' 전략만 선택하게 된다.(내쉬 균형에 갇힌 상태)
아냐 : 다미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므로, 다미안이 무엇을 선택할지 예상하고 자신의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은 게임의 균형과 전략을 뒤흔든다.
아냐가 이 비대칭성을 활용한다면, '죄수의 딜레마' 상태에서 벗어나 최적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MISSION 6 : 신호(Signaling) & 스크리닝(Screening)
아냐가 본인이 가진 정보 우위를 활요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신호(Signaling)다.
신호란, 정보를 가진 쪽이 자신의 상태나 의도를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 경우 아냐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며, 다미안 쪽도 내심 바라 마지않는 협력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이 신호는 다미안에게 '나는 너와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가 불균형인 상태에서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은 전략을 조정하고 두 사람의 게임이 (배신, 배신)이라는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반대로, 아냐의 마음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다미안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쪽에서 본심을 떠보기 위해 쓸 수 있는 전략이 바로 스크리닝(Screening)이다.
스크리닝이란, 단순히 반응을 떠보는 것을 넘어 정보가 없는 쪽이 상대방의 선택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판을 설계하는 전략을 말한다.
위와 같이 다미안이 아냐를 위해 귀한 과자를 확보하고 선물한 장면을 돌이켜보자.
다미안은 좋아하는 아냐에게 사과하고 친해지기 위해 선물을 준비했지만,
한편으론 '이 과자를 받은 아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며 본심을 알아보려는 의도가 숨어있었을지 아무도(아마 다미안 본인도) 몰랐을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교과서에 나오는 완벽한 스크리닝은 아니더라도) 아냐의 진심이라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미안의 '초보적인 스크리닝 시도'라고 분석해볼 수 있다.
이런 스크리닝을 통해 다미안은 아냐의 본심(친해지고 싶어!)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 선택을 조정하여 역시 (배신, 배신)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MISSION 7 : 악당 아냐 포저 ㅡ 계약 전엔 '역선택', 계약 후엔 '도덕적 해이'
그러나 사실, 다미안과의 관계는 '정보 비대칭 스타라이트' 아냐에게 있어서 빙산의 일각이다.
실제로 아냐의 정보 비대칭 활용은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번에는 정보 비대칭이 낳는 대표적인 두 가지 문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로이드 포저의 '역선택' : 아냐의 유도 성공!
역선택이란, 계약이나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 정보를 갖지 못한 쪽이 '나쁜 매물'을 고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명문 이든 칼리지에 잠입해야 하는 로이드에게는 '똑똑하고 평범한 6살 아이'라는 조건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가 찾아간 고아원에서 만난 아냐는, '똑똑하지도, 평범하지도, 심지어 6살도 안된', 그의 기준에 미달하는 불량품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 조건을 모두 읽은 아냐는 까치발로 나이를 속이고, 어려운 십자말풀이를 풀어내며 자신을 완벽한 '우량품'으로 포장해버린다.
결국 '자녀 입양' 시장에 뛰어든 구매자 로이드는, 판매자 아냐가 던진 완벽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며 정보 비대칭이 낳는 역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중간고사에서의 '도덕적 해이' : 계약도 끝났고, 아냐는 나태하게 살래
역선택으로 아냐를 가족으로 들인 로이드. 하지만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계약이나 거래가 이루어진 '후',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완벽히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나태해지거나 약속과 다른 행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한다.
로이드와 아냐는 오퍼레이션 '올빼미'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암묵적인 계약을 맺었다.
로이드는 아냐에게 안정적이고 재밌는 가정을 제공하고, 아냐는 성실하게 공부해 별(스텔라)을 따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로이드가 24시간 아냐를 감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아냐의 '나태함'이 고개를 든다.
작중에서 묘사되듯 공부보다는 눈앞의 땅콩과 만화영화가 더 중요한 아냐는, 로이드의 눈이 없을 때마다 계약상의 의무를 소홀히 하기 일쑤다.
이 도덕적 해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시험 커닝' 시도다.
로이드가 자신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 없다는 '정보 비대칭'을 방패 삼아, 아냐는 계약을 위한 노력을 저버리는 것이다.
결국 '위장 가족'이라는 안전장치는 역설적으로 아냐가 임무를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도덕적 해이'의 배경이 된 셈이다.
SHORT MISSION? : 작가가 보내는 '이름'의 신호?
글을 마치며 문득, 이 작품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정보의 비대칭'을 발견했다. 바로 작가가 캐릭터들의 이름에 숨겨둔 규칙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스파이 패밀리>의 주요 인물들은 이름과 성의 첫 글자가 같은 '두운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미안 데스몬드 (Damian Desmond)
베키 블랙벨 (Becky Blackbell)
헨리 헨더슨 (Henry Henderson)
프랭키 프랭클린 (Franky Franklin)
하지만 흥미롭게도, 서로에게 정체를 숨기고 가족이 된 '포저 일가'와 '유리'는 이 규칙에서 빗겨나 있다.
로이드 포저, 요르 브라이어, 아냐 포저, 유리 브라이어. 이들은 모두 작중에서 가장 거대한 비밀(스파이, 암살자, 초능력, 비밀경찰)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아직 애니메이션에서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인물 중 이 규칙을 깨는 사람은 누구일까? 도노반 데스몬드의 부인 멜린다 데스몬드(Melinda Desmond). 그리고 최근 등장한 수상한 이웃 지그문트 오센(Sigmund Authen).
이들의 이름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만 살짝 흘려준, 이들에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신호(Signaling)'가 아닐까? 이 가설이 맞을지 틀릴지 지켜보는 것 또한, 정보의 비대칭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만화 <스파이 패밀리> © Tatsuya Endo / Shueisha, 한국판 (주)학산문화사
모든 저작권은 원작자(Tatsuya Endo), 출판사(Shueisha), 국내 퍼블리셔(학산문화사)에 있습니다. 이 글은 비평과 교육을 목적으로 해당 작품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