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단순하게 또는 복잡하게?
나는 복잡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단순한 쪽으로 가고 있다.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단순하다. 별생각 없이 산다. 고민할 것도 없다.
아이 셋이 다 커서 막내만 재수 마치고 대학 가면 걱정할 게 없다. 직장은 아직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 없다. 돈이야 거액을 사기당한 여파로 매우 쪼들리나 ‘내 잘못이고, 내 업보다’ 라고 생각하고, 계속 극도의 긴축경제로 버티면 된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지만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운동과 약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술과 사람들은 내가 불쌍해서인지 여전히 자주 사람들과 음주 교우를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주말엔 제일 돈 안 드는 테니스로 웃고 즐기면서 심신을 단련하니 주말이 기다려진다. 가장 중요한 아내와는 앞으론 잘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귀가 시간, 가정의 날 등을 정해서 나름 잘 지키니 나름 이쁨도 받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니 마음이 평안하다. 출세는 이번 생에는 틀렸다 생각하니 더 욕심부릴 일이 없다. 이만하면 거의 안빈낙도(?)의 삶 아닌가?
젊었을 때는 나도 생각이 많고 복잡했다. 고시 수석으로서 동기들보다 또는 이왕이면 선배보다 빨리 승진해서 부시장을 해야겠다고 맘 먹었으니....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 그 일을 어떡하면 멋있게 할 수 있을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쩌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도 생각은 콩밭에 있었다.
사람들 눈치도 많이 봤다. 능력 있고 일 잘하고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과 인정을 받기 위해. 그 과정에서 상사들과 많이도 부딪히고 깨지고. 사람들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왜 저 사람들은 내맘 같지 않을까? 왜 내 진심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혼자 슬퍼하기도 하고... 기분에 취해, 술에 취해 결국 아파트 앞 화단 긴 의자에서 편안히 신발 벗고 주무시는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아내와 술과 귀가시간 문제로 자주 다투고.... 등등 늘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많이 썼다. 지금에 와서 부질없다고 퉁 치기엔 그 시절의 내 고뇌가 아깝지만, 그렇다고 그런 게 꼭 필요했을까 싶다.
내가 살아본 경험과 실패를 바탕으로 볼 때, 단순하게 사는 걸 방해하는 아래와 같은 녀석들이 있다고 본다. 독자 여러분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동의한다면 과감하게 없애보자.
1. 상사에게 또는 동료 직원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욕심
⇒ 직장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스스로 무리하게 된다. 높은 산을 오를 때, 묵묵하게 걷다 보면 산 정상에 다다른다. 그게 가장 지름길이다.
2. 착한 사람 콤플렉스
⇒ 우리는 보통 남들에게 착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잘해줄 수는 없다. 또한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타인의 호감을 받으려 하지 마라. 나만 피곤하다.
3. 왜 다 내 맘 같지 않지? 라고 생각하는 서운함
⇒ 가족을 비롯하여 그 누구에게든지 80% 정도만 에너지를 쏟아라. 그게 최선이다. 남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쓰는데 나만 힘들고 괴로워한다.
4. 남을 바꾸려 하는 마음
⇒ 친구든 동료든 누구든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바꾸려 애쓰지 마라. 특히 부부관계에서 상대를 바꾸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남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해라.
5. 미리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마음
⇒ 고민하고 걱정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걱정해서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일 중에 진짜로 고민과 걱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적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웃고 넘어간다.
6.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 지동설·천동설도 아니면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 아니어도 다 된다. 우리 조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특히 간부님들...
7. 주변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생각
⇒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다. 때로는 뻔뻔한 게 해법이다. 특히 가장으로서 가족이 행복한 것을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기러기 아빠는 그리 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8. 모난 행동, 감정의 태도화
⇒ 단순하다고 해서 내 맘대로 해도 괜찮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괜히 센치하거나, 얼굴 붉히거나, 너무 눈치없는 행동을 하면 동료들에게 피곤함을 준다. 이런 감정의 태도화는 인간관계의 적이다. 가급적 예측 가능한 행동으로 나만 두드러지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때는 당당하게 미리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면 된다.
9. 돈 욕심
⇒ 동료간에 친구간에 일정 이상의 돈을 빌려주고 빌리고 하는 일은 결국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옛말에도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라고 했다. 소액이라면 그냥 주는 것으로 하고 잊어 버리자. 돈 잃고 사람 잃는다. 돈 문제는 얽힘이 없어야 한다.
단순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있다. 함 같이 보자.
1. 메모하는 습관
⇒ 업무든 사생활이든 잊으면 안되는 것들은 그때그때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메모한 것을 보고 중요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한다. 중요한 일을 놓쳐서 낭패보는 경우가 생기면 일이 복잡해진다.
2. 자기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열정과 성취감
⇒ 단순하게 산다고 해서 직장에서 업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어디서나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직장은 내 삶의 터전이요, 경제의 원천이며, 특히 공무원으로서 시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베이스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서 인정받기는 어렵다.
3. 가족과의 대화
⇒ 가족은 내 삶의 근본이요, 이유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부부끼리, 아이들과 자주 대화시간과 놀이시간을 갖는다. 가끔씩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도 안부 전화 드리는 것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부모님은 자식 전화 한 통에 여러 날이 즐겁다.
4. 내 맘을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몇 명의 친구, 동료
⇒ 친구는 평생 간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위로해주고 소주 한잔할 수 있는 친구는 보석보다 귀한 존재다. 지금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만약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간단한 준비물이 있다. 좋은 나.
5. 자기 성향에 맞는 취미 활동
⇒ 정적인 것이든 동적인 것이든, 내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 있다는 것은 삶의 윤활유다. 뭐든 좋다. 자기 경제 수준에 맞는 취미 활동을 찾아보자. 나도 힘들 때 선배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를 권유해서 한 6개월 청계천을 걸었다. 참 좋았다.
6. 꾸준하고 규칙적인 운동
⇒ 건강하지 않으면 삶은 곧바로 피폐해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땀 흘리는 운동을 하고, 그 시간 동안 일상을 완전히 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육체의 건강도 좋아지지만, 마음의 건강 측면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편안해진다. 이왕이면 사람들과 같이 즐거움을 나누는 운동을 권한다. 탁구, 베드민턴, 테니스 등
7. 적당한 인문학 공부
⇒ 우리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AI 시대, 알고리즘 사회다. 하지만 사회를 통할하는 기본이 있다. 고전이기도 하고 인문학 이기도 하다. 책이나 유투브 등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기초 지식을 갖고 산다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요즘 「지식브런치」와 「지식해적단」을 자주 듣는다. 재밌다. 업무에도 인문학이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책 모임도 좋다.
8. 종교
⇒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의 좋은 힘을 믿는다. 나도 마음이 어려울 때 종교를 가져볼까도 생각했었다. 주변에서 보면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의지할 곳이 있어서 그런지 대체로 평안하다. 결정적으로 어려울 때 마음을 다해 그분에게 기도하면 풀리기도 할 것이다.
이상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우리가 살면서 이것들을 다 지키고 살기는 어렵다. 어떤 것이든 한두 가지라도 실행에 옮겨보자.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다른 것도 잘하게 되어 있다. 부담 갖지 말고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해보자.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어느새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고딩 이후부터 『배짱으로 삽시다』를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단순하게 삽시다』로 바뀌고 있다. 배짱으로 망했으니...
모름지기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효리씨의 말처럼 독고다이로 살아보자.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것이다.
별 거 아니다. 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