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부부관계는 어떤가?
결론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우리 집 부부는 개와 양의 관계다. 나는 67년 양띠이고, 아내는 70년 개띠이다. 초원에서 개 한 마리가 양 천마리를 몰고 다닌다. 더구나 개는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순한 양이 되어 꼼짝 못 하고 산다고 보면 된다.
내 아내는 70년생으로 89학번이다. 그 당시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또는 학생운동이 활발한 시대였고, 아내도 그런 시대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해서 사리 분별이 상당히 분명하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나의 잘못을 끊임없이 정확하게 지적하신다. 따갑고 매섭다. 허나 변명의 여지는 없다. 가끔 본인 스스로 액셀을 밟아 필요 이상으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깨갱한다. 매번 다짐도 하고 약속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 했던가? 하루 이틀에 변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하는 중이다. 아직까지도 술이 문제이긴 하다. 허나 그것도 ‘지가 언제까지 그러겠어, 힘 떨어지면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진짜 그럴 테니깐....
그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아내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가끔 큰일을 아내와 상의 없이 저질러서 문제지, 일상에서는 아내의 말에 복종하는 편이다. 아내에게는 딸 셋이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으니, 나는 수적으로도 열세다.
한창 일할 때는 나도 상당한 워크홀릭이었다. 언제나 머리속에서 사무실 일이 떠나지 않았었다. 심지어 오랜
만에 며칠 휴가를 내서 가족여행을 가서도 사무실과 관련된 일로 전화하는 등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에 몰입하지 않았었다. 거기에 평소 저녁에는 술자리가 잦았으니, 아내는 늘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을 지내다가, 아내의 불만이 폭발할 즈음 나도 깨달은 바가 있어서, 아내에게 한 달에 한 번 「부부의 날」을 갖자고 제안했다. 아내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얼마나 집에 소홀했으면, 꼴랑 한 달에 한 번 데이트하는 것이 이벤트가 될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40대 중반 무렵부터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부부의 날」로 정하고, 그날은 둘이서만 시내에서 만나 영화 보고, 밥 먹고, 이야기하고 그랬다.
종종 나는 영화보다가 피곤이 몰려와 잠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 코를 곯아서 아내가 창피하다고 깨우는 날도 있었지만, 아내는 모처럼 남편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날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주로 내가 그간 잘못한 일을 상기시키고 다짐을 받는 대화이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맨정신에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성과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당한 기간 동안 이 부부의 날이 지켜졌다. 그러다가 2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오고, 다시 사무실 일이 바빠지면서 부부의 날이 흐지부지 되었지만, 당시에는 나에게나 아내에게나 참 좋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차례로 대입 수험생이 되어 아내는 아이들에게 온 정신을 다 쏟고, 나는 나대로 승진과 해임과 복직과 돈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해서 아내와 나는 또다시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고 지냈었다.
큰딸이 대학 졸업하고 자기 갈 길을 찾아가고 있고, 둘째 딸은 4학년인데 1년 휴학하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고 하고, 막내는 언니들은 하지 않은 재수생활을 기꺼이 하고 있고, 해서 최근 아내가 숨을 좀 돌리고 그간 놓아먹이던 남편에게 다시 신경을 쓰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2024년 연초부터 얼른 다른 것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가정의 날」이다. 그것도 통 크게 일주일에 하루 「매주 목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서,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근해서 아내나 식구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시간이 되면 같이 저녁을 먹고, 아니면 아내와 나는 모처럼 가볍게 외식을 하고 차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물론 아직도 우리들의 대화는 주로 나의 지나간 큰 잘못과 그에 상응하는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길잡이 역할에 관한 것이다. 아내는 항상 의기양양하다. 나는 언제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로 답한다. 아내는 불안하지만 일단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나의 긍정적인 대답에 “지켜보겠어요” 한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도 큰 갈등은 없었다. 다투거나 싸운 적은 있었으나, 언제나 내가 숙이면 해결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아주 좋은 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삐뚤어진 놈도 아니고, 중요한 순간마다 노력하는 기미도 보이니까’ 데리고 살아주신다. 어디 흠 없는 놈이 있으랴? 고맙기만 하다. 사실은 이렇게 살아준 아내에게 살짝 존경하는 마음도 있다. 여인의 몸으로 딸 셋의 아토피를 이겨냈으며, 속 썩이는 남편을 교화시키면서 데리고 산다는 것이 어찌 쉽기만 했겠는가?
부부는 2인 3각 게임의 선수와도 같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두 사람의 발이 묶여 있어서 서로 호흡을 잘 맞춰야 전진이 되는 관계이다. 어느 한 사람이 자기 생각만 하거나, 자기 페이스만을 고집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내 달리면 스텝이 꼬여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부부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화합을 이루면서 사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막상 하루하루를 같이 살다보면 자기랑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둘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니, 자세히 보면 가치관부터 일상적인 생활습관까지 다를 수 밖에 없다. 육아나 교육 방식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각자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하다못해 식성도 다를 수 있다.
대개 결혼 전에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가급적 상대에게 양보하고 본성을 숨기다가, 결혼 이후에는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슬그머니 발톱을 드러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주로 남자들이 그랬는데, 요즘에는 남녀평등이라서 잘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서로의 장점만을 보다가, 결혼하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단점을 연구하고, 급기야 지적질로 간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어느 정도는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시인 고은님의 「그 꽃」이라는 시가 있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결혼하고 나서야 보았네
결혼 전에 보지 못한
그 점들
이거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결혼한 부부 중 90% 이상이 그럴 것이고, 그중에 상당수가 이것 때문에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기 전에 갈 길을 달리했을 수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부부끼리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있음을 강조코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족은 몇 명 되지 않지만 매우 복잡한 사회다. 서로에게 사랑과 혈연이라는 기본 바탕이 있지만, 그 안에서 이해관계가 다 다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내는 사랑을 원하고, 남편은 안정을 원한다. 특히 남편이 가장 바라는 것은 엄마같은 아내다. 내가 그랬다.
가정은 조직에서처럼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만 하고,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모른 척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공식적인 집단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상황이 변화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역할을 요구하며, 때로는 희생이 필요하고, 구성원끼리 감정적인 교류가 늘 오가야 한다. 그래서 쉽지만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가족끼리 섞어보기, 바꿔보기, 멀리보기, 기다려 주기, 서로의 장점을 보기, 단점은 못 본 척 지나가기, 문제가 있으면 정식 의제로 붙여서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정 참기 어려우면 가끔은 싸움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정확하게 말해주기 등을 해보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바라기보다 그들에게 ‘엄마 아빠는 너를 믿는다’는 신뢰감 주기가 필요하다. 엄마와 아빠를 든든한 후원자로 여기게끔 하는 것이, 아이들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혹시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꼭 한 가지 실무적인 조언을 하고 싶다. 육아는 정말 힘든 일이다. 아무리 남편이 잘 도와준다고 해도 엄마와 아이의 부대낌은 여전히 엄마를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해서 남편은 육아 중인 부인에게 꼭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하루(가급적 1박으로) 정도는 휴가를 줘야 한다. 친구 집에 가건 친정집에 가건 어딜 가든 부인이 아이에게서 온전히 하루 정도는 떨어져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며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 시간에 아빠가 하루라도 독박육아를 하면서 실제로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몸소 체험해야 부인의 심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야 육아가 지속가능하다. 꼭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내 경험으로는 아빠가 잘해야 한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어찌 되었든 가정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아이들과도 더 많은 접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하는 일이 적은 아빠가 묵묵하게 가족들의 감정변화를 가슴으로 담아내고, 가족 구성원들이 든든하게 여길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있는 바위 역할을 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이 바위 역할을, 술 먹고 집에 들어갈 때, 꾸준히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어릴 때 그런 것을 못 먹어보고 자랐기 때문에,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결핍의 느낌을 갖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아이들은 “와~~~ 과자다. 뭐 뭐 사왔나 보자”라고 소리치지만, 아내는 “사 오지 말래도, 이런 거 또 사왔다”고 소리친다.
이제 ‘나는 집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답할 시간이다.
얼마 전 하루짜리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이 글을 머릿속에서 쓰고 있던 차에, 나는 운전하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아내와 1번 2번 두 딸에게 “아빤 집에서 어떤 존재냐고?‘
아내는 ”당신은 밖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존재가 미미한 거 알죠?“
1번 딸은 ”우리가 뭐 먹고 싶다면 사 가지고 오는 존재“
2번 딸은 ”엄마에게 가끔 등짝 스메싱을 맞는 아빠“
막내딸은 재수생이라 여행에서 빠졌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막내딸에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요. 나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