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 절정의 트롯 가수 김호중씨의 음주 및 뺑소니 사건이 있었다. 김호중씨의 팬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우상이 사라졌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김호중씨 자신은 ‘지금 너무도 잘 나가니 뭘 해도 계속 잘 나갈 것이다’라는 넘치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쳐서 화를 부른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나도 그간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자신감이 넘쳤던 적이 몇 번 있다. 강북구청 문화공보과장 시절, 시립대 기획과장 시절, 그다음이 신문팀장 시절, 인력개발과장 시절, 감사과장 시절 이렇게 다섯 번에 걸쳐 마치 리즈 시절처럼 자신감이 넘쳐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던 때가 있었다. 헌데 그때마다 나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씩 터졌다. 직장 차원의 문제든 내 개인적인 문제든....
강북구청 문화공보과장으로 막 발령났을 때 나를 신임하는 구청장님께 직장일로 거침 없이 직언을 하고, 얼마 후에 갑작스럽게 혼자서만 시로 발령이 났다. 시립대 기획과장을 마칠 때쯤엔 큰 돈을 사기 당했다. 신문팀장 6개월 만에 한강사업본부로 좌천 발령이 났다.(서울시 역사상 신문팀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더구나 좌천 발령이 난 경우는 내가 처음일 것임). 인력개발과장 시절에도 원래 1년 마치고 미국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는데도, 6개월로 단명하고 시립대 교무과장으로 좌천 발령이 났다. 감사과장을 마치고 승진은 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거액의 사기를 맞았다.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자신감이 충만할 때마다 사고를 일으킨 셈이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어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생겨난 일들이라고 진단이 된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우리가 뭔가를 잘할 자신이 생겼을 때 흔히 ‘자신감이 있다, 자신감이 넘친다’라고 한다. 한편 비슷한 용어로 자존감이라는 말도 있다. “그 친구는 자존감이 강해, 그 정도로는 꿈쩍도 안 할 걸“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두 단어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많이 다른 뜻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자신감은 ‘자기 신뢰감의 준말로 자신의 능력을 믿는 느낌’을 말한다. 이에 비해,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준말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 느낌’을 말한다.
이왕 한 김에 비슷한 용어 몇 가지를 더 공부해보자. 자신감, 자존감과 비슷한 용어로 자존심, 자만심, 자부심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 용어들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타인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공격이나 비난을 받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것이고, 만약 자존감이 높다면 타인의 공격이나 비난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편, 자만심은 ‘자신 또는 자신과 관련된 것을 스스로 자랑하거나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이고, 자부심은 ‘자신 또는 자신과 관련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만심이 높으면 대개 자존심이 높아져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기 쉽다.
결론적으로 이들을 잘 조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자존심과 자만심과 자신감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뻘이다. 이 셋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셋은 동반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자존감과 자부심은 또 다른 형제뻘이다. 자부심이 놓은 사람은 자존감도 높기 마련이다. 이들은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도 별로 없다.
내가 그랬다. 위 다섯 번의 그 시절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자신감이 넘치니 자존심이 쎄지고, 나아가 자만심까지 생겨난 것이다. 사실 자신감과 자존심은 중립적인 가치를 지닌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자신감이 없으면 우리는 반대로 우울해져서 아무 일도 할 자신이 없어지고, 실제로 생활 전반이 망가지게 된다. 따라서 자신감 자체는 죄가 없다. 상당한 정도의 자신감은 우리 삶의 필수라고 본다.(우리는 이걸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 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정도 근자감은 필요하다.) 자존심도 마찬가지다. 허나 자만심은 그 자체로 부정적 가치의 언어다. 그런데 자신감, 자존심이 넘치면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자만심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그때는 그런 걸 몰랐었다. ‘내가 뭐 자신 있는데...., 내 생각이 옳은데...., 내 말이 맞잖아?’ 늘상 이렇게 생각했었다.
자신감이 넘칠 때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조짐이 보이면, 사실 옆에서는 누구도 못 말린다. 스스로 ‘이렇게 계속 나가도 되나?’를 생각해보고, 브레이크를 밟든지, 악셀에서 발을 떼든지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종국에는 사단이 난다. 나처럼....
그 과정에서 그럼 나에게 자존감은 없었는가? 아니다. 나는 늘 어느 정도의 자존감은 있었다.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자신감이 너무 넘칠 때는 자존감이 있고 없고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자신감이 모든 것을 다 덮어 버리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고 하는 일은 틀리거나 잘못될 일이 없다고 굳게 믿는다. ‘천하의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했는데 그게 틀리겠어?’ 교만의 극치다. 옆에서 누가 ”잘 생각해보라“ 조언해줘도 소용이 없다. 거침이 없다. 나도 당시에는 집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으니까!(지금은 말을 아주 잘 듣는다)
자존감이 넘치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평정심을 갖는다. 진중하게 판단하고, 진중하게 말하고, 진중하게 행동한다. 자기를 겸손하게 낮춘다.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쉽게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쉽게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중용을 지킨다. 물론 뒷담화 이런 건 안 한다. 남을 돕는 일에는 신속하게 앞장선다. 꼭 말을 해야 할 때는 필요한 만큼만 무게 있게 말한다.(내가 얘기해 놓고도,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럼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없는 시절을 보내고 나서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평소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세상과 사람 즉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생각을 연마하며, 특히 일상생활에서 세평(世評) 즉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거의 부처님급인가?)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직장생활로 매일매일이 바쁜 일상이다. 평일에는 일하고, 쉬는 날에는 쉬기 바쁘다. 심지어 쉬는 날에도 또 무슨 일이 있기도 하다.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그냥 쉬게 두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맘대로 안 된다. 여유가 없다. 나를 돌아보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까지 하기엔 버겁다.
그렇다. 그래서 뭔가를 거창하게 도모하기엔 무리가 있다. 무리하게 시작했다가 어떨 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뭐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제안한다. 하루에 딱 한 가지 쉬운 것부터 해보자.
예를 들면, 하루에 10분씩만 눈 감고 명상하기, 퇴근할 때 2~3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어가기, 하루에 풋샵 한 번씩 하기, 저녁에 줄넘기 하고 자기, 하루에 한 사람씩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하기, 출·퇴근시에 읽거나 말거나 책 들고 다니기, 자기 전 20분 투자해서 인문학 관련 유투브 시청하기, 매일 퇴근하면서 집 앞 골목길 담배꽁초 줍기, 나에게 칭찬 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스스로에게 맛있는 거 사주기, 뭐 이런 거다. 이런 것까지 ‘어려워서 못 하겠다’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단 내가 쉽게 할 수 있고, 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당장 시작하는 거다. 부모님 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면 스스로 약속한 것은 매일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또 다른 일을 시도해 볼 용기도 난다. 그리고 또 쉬운 거 한 가지를 추가해본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넓혀간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시간은 많다. 그리고 ‘꼭 언제까지 뭘 해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은 가질 필요가 없다. 나 혼자 하는 일이니.... 이 일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해보자. 할 수 있고, 하다 보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긴다. 자신감도 키우고, 자존감도 넓혀보자.
「너 자신을 알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말보다 의미있는 말이다.
나에게 자존감이 있는지? 자신감이 있는지? 혹시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뭔가를 시작해보자.
”작은 변화가 새로운 나를 만든다.“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 내가 그려본 인생 사이클 곡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