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나는 4번의 유배를 당했다(4)
이번이 마지막 이기를....
세 번쯤 유배를 당했으면, 한 공무원에게는 충분치 않을까? 난 애초에 될성부른 나무가 아니었나 보다.
나는 또 유배를 당한다. 제발 이번이 내 유배의 끝이기를 비는 마음으로 마지막 유배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본다.(사실 공무원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더 이상 그럴 일도 그럴 시간도 없으리라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유배가 유배의 끝판왕이므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부터 조금은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나간 3번의 유배 이야기가 근대사 같다면, 이번 마지막 4번째 유배 이야기는 웬지 현대사 같다는 느낌이다. 지나간 3번은 기억속에 있는 것을 끄집에 내어서 썼다면, 이번 것은 너무도 생생하여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 역사도 근대사 보다 현대사가 좀 더 복잡했던가? 내 경험도 그렇다.
나는 서기관 승진이 늦은 만큼, 국장 승진도 순조롭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님께서 끝까지 나를 승진시키지 않으셨다. 시장님 최측근인 인사보좌관은 승진자 발표 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시장님께서 마지막까지 과장님과 모과장님 둘을 놓고 고민하시다가, 결국 모 과장님을 낙점하시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 과장은 참 특이하지? 라고요. 한 번만 더 참고 계시면, 다음번엔 꼭 승진되실 겁니다.“
그랬다. 나는 박원순 시장님께도 좀 특이하게 보였나 보다. ”난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합니다“라는 말로 일약 스타가 된 누구가 있다. 사실 나도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위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난 박원순 시장님 개인에게 충성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시장님도 혜안을 가지셨으니, 그걸 알아차리신 것일 수도 있다.
시장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뒤에 ○○○ 권한대행(행정1부시장) 체제에서, 나는 어렵게 어렵게 그리고 뒤늦게 국장으로 승진을 했다. 2021년 일이다.
승진해서 나는 바로 민생사법경찰단장 임무를 맡았다. 다른 시·도에서는 특별사법경찰단이라 부르는데, 우리시는 박원순 시장님께서 민생을 강조하셔서 이름에 민생을 넣어서 그렇게 불렸다. 약칭 민사단은 법률에서 위임받은 16개 분야에서 행정경찰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민사단에 발령이 나면 검찰청에서 수사관 자격을 부여해준다. 진짜 경찰들처럼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검찰에 송치를 해서, 범법자들을 다스리고 범법행위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시 민사단은 한적하게 남산 중턱에 독립되어 위치해 있고, 약 100여명의 수사관이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나는 발령을 받아 대표적 수사분야의 현장을 같이 돌아다녔고, 실제로 수사관들과 같이 개별 수사건에 대해 잠입수사도 하는 등 재미나게 수사를 배워가고 있었다. 한편 수사관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조치 등을 하면서 민사단 전체의 역할을 확대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세훈 시장님께서 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시장으로 부임하셨고, 바로 며칠 뒤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인사과장님께서 1인가구특별대책추진단장으로 내정되었으니, 바로 다음 주부터 거기로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민사단이 좋다"라고 하였으나, 시장님께서 강국장님을 찍으셨으니 이미 게임 끝이라고 했다.(사실은 내 인생에 3번의 유배 끝에 처음 있는 발탁인사였다)
그렇게 해서 느닷없이 팔자에도 없는 1인가구특별대책추진단장 자리를 맡았다.(나는 다인 가구인데도....) 1인가구특별대책은 오세훈 시장님의 선거 1호 공약이었고, 그래서 시장님께서 입성하시자 마자 관련기구를 꾸린 것이었고, 정규발령이 아닌 4.19일자에 나부터 발령이 났던 것이다. 그날 나와 시장 비서실장 2명만이 발령이 났는데, 발령장을 주시면서 시장님께서 나에게 ”국장님, 1인가구가 저의 제1호 공약인 거 아시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고, 나는 ”잘 해보겠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인사과에서는 일단 직원이 나를 포함 총 17명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사무실로 출근하니, 인사과에서 나와 동시에 과장 1명, 주무팀장 1명, 6급 선임주임 2명 총 5명을 발령내었고, 나머지 팀장 2명과 직원 10명을 추가로 발령낼 예정이라고 하였다. 나는 인사과에 그 10명은 내가 직접 뽑겠다 라고 했고, 허락을 득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팀장들 중에 일을 꼼꼼하게 잘 하는 지인 친구 두 명을 섭외했고, 지인이 추천한 행정6급 직원을 한 명 받아들였고, 나머지 7명은 시 업무공지에 ‘1인가구에서 멋지게 일할 직원을 뽑습니다.’라고 방을 붙여서, 많은 지원자 중에 면접으로 패기 넘치는 젊은 친구들을 뽑았다.
그래서 대부분 스스로 온 직원들과 함께 혼연일체가 되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참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하는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헤멜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하나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다. 사실 1인가구 관련한 사업은 그전에도 여성실, 복지실, 주택실 등 관련 부서에서 나름 진행하고 있었고, 우리 1인가구단은 이를 통합하고, 새로운 시책을 발굴하는 업무였다.
우리는 일단 서울시 1인 가구의 현황이 어떤지부터 살펴봤다. 2019년 통계만 해도, 서울시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이미 33.4%이고, 심지어 관악구 같은 경우는 전체 가구의 50% 이상이 1인 가구일 정도로 많았고, 심지어 그 증가속도도 엄청 빨랐다. 과거에는 독거노인 정도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이미 청년 1인 가구, 4~50대 중년 1인 가구가 굉장히 많아졌고, 문제는 이들의 약 80% 가까이가 어쩔 수 없는 경우로서 대부분이 경제적 빈곤층으로 사회에서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심각한 문제에 비해, 기존에 무슨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1인가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현장들을 차분히 둘러봤다. 그리고 진짜로 1인가구의 여러 부류(청년, 중년, 장년 층)의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시장님께 이런 내용을 중간보고 드렸더니,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검토했네요. 기대가 매우 큽니다.“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다.
우리 단은 진짜 몇 명 안 되는 인원이지만 혼연일체가 되어 그것도 짧은 시간에 가장 필요하고 실효성 있다고 생각되는 정책 3가지를 위시하여, 10여 가지가 넘는 새로운 시책을 발굴하여 시장님께 보고드렸고, 시장님께서는 일단 3가지 정책에 대해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그 3가지 정책은, 1. 「병원 동행서비스」 2. 「안심마을 보안관」 3. 「안심도어 지킴이」 사업이었다. 각 사업들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병원 동행서비스」는 1인가구가 갑자기 아팠을 때, 특히 평소에도 중·장년 중 몸이 아픈 사람들이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이든 누군가 꼭 병원에 동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소해주고자 함이다. 당시 이미 민간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고비용으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우리시가 일반인들도 누구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저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 「안심마을 보안관 제도」는 현장들을 둘러 본 결과, 건대입구 뒤편 화양동 같은 경우, 주택 밀집지역인데 여기가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해서 많은 여대생 및 여성 직장인들이 거주한다. 헌데 환경이 열악하여 각종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전체가 옛 모습 그대로 좁고 긴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고, 보안등도 희미한 백열등 위주로 설치되어 있어, 한 마디로 밤이 좀 늦으면 지나가기 매우 겁나는 곳이었다. 내 딸들이 만약 여기에서 산다면, 나는 단연코 못 살게 했으리라. 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여기서 거주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고, 범죄에 대해 현재까지는 아무런 방비가 없는 것이다. 경찰분들과 같이 현장을 둘러봤는데. 경찰 입장에서도 이런 곳이 서울에 여러 곳이 있고, 골목으로 되어 있어 순찰차가 아닌 도보로 순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 줘야겠다’라고 마음 먹고 해결책을 강구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경찰력과 비슷한 분들을 배치해서 밤길을 안전하게 만들고 범죄를 원천적으로 예방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래서 안심마을 보안관을 임명하여, 2인 1조로 2개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여 그 구간 전체를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 순찰하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경찰과 협조하여 서울시내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주택밀집지역 15곳을 선정하여 시범사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 당시 얼마 전 ‘노원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애인과 헤어짐에 앙심을 품은 남성이 택배원으로 위장하여 애인을 비롯한 세 모녀를 차례로 살해한 아주 끔찍한 사건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착안하여 혼자 사는 여성 1인가구 집에 IT기술을 활용하여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그게 바로 「안심 도어 지킴이」 서비스이다. 간단히 말하면, 집 현관에 모션센서를 부착하고, 그 화면을 핸드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평소 내 집에 누가 얼쩡거리는지도 알 수 있고, 지금 내 현관 앞에 누가 있는지 알고 대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침 이 서비스를 개발하여 일반에게 판매하고 있는 민간 보안전문 업체가 있었다. 하지만 설치비 및 서비스 이용료가 비싸, 실제 이용하는 가구는 얼마 되지 않고 있어 업체로서도 힘든 상황이었다. 보통 1인가구 여성 중에 이 서비스가 필요한데,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업체 대표단을 불러서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자고 했다. 시가 이 사업에 보조를 해주는 대신, 업체에서도 가격을 많이 내려서 가능한 선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결국 서로 타협이 되어, 도어지킴이를 신청하는 여성 1인가구에게 저렴하게 설치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업을 그해 추경으로 예산 편성하여 바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약 3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시의회의 심의를 받게 되었다. 나는 사전에 우리단 소관인 기획경제위원회(이하 ‘기경위’라 한다) 위원장님과 당시 위원님 중에 오래전에 1인가구 지원조례를 발의하신 의원님께 추경예산안에 대해 설명드리고 협조를 구하였다. 그리고 실제 심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4번째 유배의 서막이 서서히 올라간다. 아무도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1인 가구 사업은 무슨 정치성을 띤 사업이 전혀 아니므로, 국민의힘 소속 시장님의 제안이라고 해서 다수당인 민주당이 점유하고 있는 시의회에서 시비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데 유배의 씨앗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아되었다. 기경위에서 유일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신 한 위원님이 추경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나에게 문제점을 지적하신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사건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사건 전개과정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 부분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서 추경예산안 심의가 시작되었다. 위원장님의 시작을 알리는 방망이 바로 뒤에 국힘 소속 아주 젊은 여성 시의원님께서 질의를 시작하셨다. ”강국장님, 제가 1인가구특별대책추진단이 생겼다고 해서 매우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에 추경예산안 올라온 걸 보니까 매우 실망스러운데요.“라고 질의하셨다. 나는 너무도 뜻밖의 질문이라 속으로 ‘이게 뭐지?’ 하면서 ”의원님, 제가 의원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사업이 이렇게 밖에 안되나요?, 새로운 게 없어요. 올리신 사업들이 다 기존 사업을 좀 세밀하게 했거나 확장했거나 하는 수준밖에 안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였다. 나는 차츰 속으로 성질이 났지만, 나름 차분히 답변하려고 노력하였다. ”의원님, 의원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1인 가구가 생긴지가 불과 두 달이 채 안 됩니다.“ 여기서 의원님께서 내 말을 끊고 혼자말처럼 ”그럼 올리지를 말던지, 그러면 두 달 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이런 사업들을 20억씩 들여서 하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두달 밖에 고민을 안 하시고 예산을 20억이나 쓰시겠다고요?“ 하시는 거였다. 나는 ”의원님, 일단 세 가지 사업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와 같습니다. 그런데 위원님께서 어떤 점을 보시고 이게 단순한 과거에 있던 사업의 연속이다, 고민도 안 했다 라고 얘기하시는 지 제가 그걸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 아시다시피 저희가 지난 4월 19일 발족해서, 그간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전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사업을 발굴해서, 우선 가장 급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 세 가지 사업을 추경안으로 올렸습니다. 그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했더니,
그 순간 국힘 의원님과 또 다른 곳에서 폭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기경위 소속의 다른 의원님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까칠하다고 소문나 있는 모 의원님께서 ”저봐 저봐, 국장 태도가 저게 뭐예요?, 예산을 따러 온 국장의 태도가 맞나요? 정회합시다.“라고 하는 거였다. 위원장님께서 ”일단은 질의하실 위원님 질의부터 하고 정회하는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본인부터 질의하겠다고 해서 질의를 시작했다. ”1인가구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했느냐? 얼마 전 나온 설문조사 결과 논문은 읽었느냐? 현장은 다녀왔느냐?, 누구 누구 관계자는 만났느냐?“ 등등. 마침 내가 다 해본 거였기에 나는 자신있게 ”네“라고 답하였다. 사전 공부 부분은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니까 옆의 다른 의원님이 또 다른 질책을 시작하였다. 앉아서 답변하던 나를 발언대로 불러세우시더니, ”본 의원은 예전시절부터 강국장의 태도가 불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불손하다“고 하시면서 강하게 질타하셨다. 이에 위원장님도 나에게 지적하셨다. ”천만 시민의 대표인 시의원에게 그리고 시의회에서 이렇게 불손한 태도로 임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당사자인 국힘 의원님은 회의실에서 나가셨다.
그때, 1인가구 지원조례를 발의하셨고, 내가 사전에 추경안을 보고드렸던 의원님께서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셔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국장님, 1인가구 단장으로 오셨다고 해서 제가 평판을 좀 알아봤습니다. 아주 훌륭하시고, 선배 공무원으로서 후배들이 잘 따르는 공무원이라는 말씀들이 많더군요. 근데 우리 시의원들이 모두가 다 합리적이지는 않습니다. 어떤 위원님들은 옆에서 동료의원들이 들어도 질문이 무슨 말인지 모르도록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설령 시의원께서 그렇게 질문하셨다 하더라도 집행부 간부가 그렇게 답변하시면 안 되죠. 안 그렇습니까? 빨리 사과하세요!“라고 일부러 마지막 사과 멘트에 힘을 주어서 지적하시는 거였다.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질문과 답을 하고, 정회하자는 요구에 위원장님께서 정회 방망이를 두드리려는 순간, 그 최초 발원지 국힘 시의원님께서 다시 회의실로 들어오시더니 당신도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정회하자고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국장님, 지금 바로 속기록을 확인하여, 제가 국장님께 드린 질문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면 제가 사과하고,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국장님께서 올리신 추경예산 전부를 삭감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나는 너무도 합리적인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순간 나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네’ 한마디에 더 커졌다. 그 순간 나를 질책했던 두 분의 시의원님께서 일제히 ”저거 봐, 저거 봐, 예산을 따러 온 국장 태도가 저거 봐. 안 되겠어. 예산은 다 깍아야 하고, 정회하고 따로 논의하시죠“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정회되었다.
(지금도 국힘 시의원님이 나에게 그렇게 질의를 하신 이유를 모르겠다. 후설에 의하면 사실은 유일하게 시장님과 같은 당으로서 1인가구 사업을 지원해주려는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질문을 시작했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정회를 마치고 의원님들이 다시 들어오셨다. 그리곤 바로 내 직속상관인 기획조정실장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우리 실장님께서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리곤 나에게도 사과를 요구하였다. 난 사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의 진화를 위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였다.
내가 여기까지 하고 끝냈어야 했다. 정말.... 허나 내 마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죄송합니다“ 말 끝에 ”다만“을 붙였다. 옆에서 실장님께서 나의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제발 하지 마’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망설이다가 ”다만....“ 다시 ”다만....“ 총 세 번의 다만을 되뇌었다. 나는 다만 뒤에 뭐라고 한마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이 ‘다만’으로 모든 것은 정리되었다.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의원님들은 다시 정회하고 바로 나가셨고,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전갈을 받았다. ”1인가구 추경예산은 전액 삭감될 것이며, 그에 앞서 내일 상임위 전에 행정1부시장께서 나와서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한다.“는 것이다.(왜 아무 죄 없는 1부시장님까지 부르나? 난처하게....)
의회가 끝나고, 나는 실장님과 함께 부시장님을 찾아 뵈었다. 부시장님은 누가 보고를 했는지 사건을 이미 알고 계셨다. 방에 들어가서 앉자 마자 소위 혼났다. ”강국장은 어떻게 했길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책임져!“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부시장님께 송구스러워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
다음날 1부시장님께서 상임위에 가셨고, 사과를 하셨다. 그런데 사과하시는 자리에서도 서 있는 채로 호통을 받으셨다는 얘기다. 부시장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예산은 아주 일부만을 남겨두고 거의 전액이 삭감되었다.
나는 그러는 사이에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국힘 의원님을 만나서 사과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나는 대신에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당시 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과를 드렸다. 다행히 원내대표님은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국민의힘 쪽에서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라는 답을 주셨다.
반면에 기경위 의사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경위원장님께서 국장님을 보자고 하십니다. 오셔서 개인적으로 사과하시라구요. 그러면 예산문제도 도와 줄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팀장님, 저는 더 이상 기경위 누구에게든 사과하러 가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사과했고, 심지어 부시장님마저 사과했는데도 예산을 다 깍아버린 사람들 아닙니까?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제 문제는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어떻게 예산결산위원회(이하 ‘예결위’ 라고 함)에서 되살리느냐 였다. 다행히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 기경위 소속이자 내가 사는 지역의 지역구 의원님이 계셨다. 사실 계수조정소위 위원은 그 권한이 상당하다. 해서 나는 그 의원님께 전화를 드려 다시 한 번 이번 예산안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정파와 관계없이 서울시 전체 1인가구 시민들에게 서비스가 시작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내가 올린 추경예산이 아주 일부 삭감되고, 거의 전액이 다시 살아났다. 어찌나 기쁘던지.... 당시 우리 1인가구 사무실에서는 전 직원이 이 소식을 접하고 만세를 불렀다. 이게 대략 6월말의 일이다.
나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시장님의 1호 공약사업에 대한 첫 번째 추경예산이니 만큼, 부시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의 노력이 있었을 테고, 아마도 정무적으로 그런 노력이 성공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름 정리가 잘 되어서, 우리 1인가구 전 직원들은 예산을 가지고 사업을 어떻게 전개해나갈지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현장과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1차적 결과물을 시장님께 보고드렸다. 시장님께서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대가 큽니다.“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렇게 평온하게 7월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나의 4번째 유배는 갑자기 그 그림자를 드러냈다.
서울시 직원의 인사발령은 1년에 두 번 있다. 1월초와 7월초. 국장급부터 인사가 시작된다. 나는 사실 1인가구추진단에 내가 원해서 간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다보니 굉장히 보람된 측면이 많았다. 1인가구의 문제를 직원들과 같이 집중 분석해보니,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불어 서울시가 하고 있던 여러 가지 대책 외에도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국에서 최초의 1인가구 전담 국장이므로, 1인 가구 문제에 관해 쌈빡한 대책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진짜 하늘이 나를 시기한 것일까? 생각지도 않은 발령이 있다고 갑자기 전화가 온 것이다. 7월 18일 오전이 거의 다 지날 무렵, 내가 존경하는 행정국장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강국장, 잘 들어라. 너 이따가 발령난다. 다시 민사단 단장으로 간다. 지난번 그 문제로 시장님께서도 다 그렇게 이해하셨다. 이번에도 조용히 가라.“ 이 분은 나에게 ”조용히 가라“라고 이번이 두 번째 말씀하신 거다.(참고로 첫번째는 나의 유배 3편 인력개발과장에서 갑자기 시립대 교무과장으로 갈 때도 똑같이 조언해 주셨었다) 나는 ‘이건 또 무슨 얘긴가?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흡연실로 내려가 추경예산 때 도와준 시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시의회에서 나를 보내려고 했나요?“ 그랬단다. 추가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시의회에서 그 이후에 부시장님께 나를 그 자리에서 내보내라고 했고, 아마도 당시 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요청이라서, 시장님 임기초에 시의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하여 내가 가는 것으로 윗분들께서 결정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므로 뭔가 더 자세한 사항이 있거나, 다른 이유도 추가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이 문제에 관해 누구도 나에게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으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해서 나는 느닷없이 발탁되어 4.19일자로 1인가구 단장으로 갔다가, 정확히 3개월 되는 날인 7.19일자로 다시 민사단 단장으로 복귀한다. 나는 행정국장님 말씀대로 정말 조용히 아무말 없이 왔다. 1인가구 직원들은 하나같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무슨 조화속인지? 어리둥절한 가운데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무척이나 서운하고 아쉬웠다.
반면에, 민사단 직원분들은 다시 돌아온 나를 엄청 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다시 남산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옛일은 다 묻어두기로 하고, 당시 극성으로 치닫던 코로나 방역대책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도 장황하게 유배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까? 사실 나도 모르겠다. 나란 놈을 자랑하고 싶어서? 아니다.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유배당한 것이 후회되어서? 그것도 아니다. 지금도 지난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각 장면마다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지금 생각해도 그게 어떤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한 가지는 후회한다. 이왕 이렇게 될 거였다면, 그때 ”다만“ 이후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히 할 걸....(그럼 문제가 더 커졌을까?)
따지고 보면, 나는 공직생활하면서 서울시 역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몇 개가 있을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승진자리인 신문팀장에서 6개월만에 쫓겨난 것, 그리하여 서기관 승진을 14년 몇달 만에 한 것. 4번에 걸친 좌천발령을 받은 것, 시의회의 강력한 요청에 국장급을 발령내는 일의 당사자가 된 것, 결국 고시로 들어와서 한 직급도 승진 못 한 것 등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특이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유배 글은 나의 이런 독특한 이력을 소개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냥 아 공무원 중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한편 이런 일도 있구나 라고 재미 측면에서 읽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공직과 관련한 불합리한 점을 고발하기 위해서? 사실 이런 측면이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시의회의 요청으로 집행부에서 국장급 공무원을 이렇게도 쉽게 발령내는 것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럼 독자 여러분께 어떤 교훈을 주려고? 사실 이 문제는 매우 어렵다. 혹시 독자 여러분께서 공직생활 하면서 이런 비슷한 경우를 맞딱뜨린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다 라고 말 하기가 어렵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하는 수 밖에....
그래도 나처럼 바로 그 앞에서 즉흥적인 언행을 하는 것은 꼭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주변의 어른스러운 사람과 내 뜻을 전달하면서도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 본다.
그리고 젊은 혈기로 하는 이런 생각들은 결코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앞 뒤 안 가리고’, ‘물 불 안 가리고’, ‘에이 까짓 것, 죽기야 하겠어?’ ‘난 죽어도 못 참아’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는다’ ‘내가 여기서 말면 사람이 아니다’ 등등
나를 봐라. 나는 유배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씩은 더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은 안 바뀐다. 한 번 기분으로 대들고, 결국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은 포기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나한테는 나 스스로만 인정하는 헛된 명예가 남아있을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내지도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것이 조직에서 우리의 목표가 아닐까? 일도 못하고, 더구나 ‘저 친구하고 같이 일하기 힘들겠네’라는 좋지 않은 인상만을 남겼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상사가 나 같은 ‘트러블 메이커’와 같이 일을 하고 싶겠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함부로 까불지 말자.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