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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 Dec 09. 2024

36. 나는 「코리안 타이머」 이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만든 한국식 영어다. 미군정 시절과 한국전쟁 시기에 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하면 대체로 약속시간에 늦는 걸 경험하고 미국 사람들이 만든 신조어란다. 참고로 차이니즈 타임이나 재패니즈 타임은 없다.     


한국의 표준시는 UTC+9시간이다. 실제 서울은 북경과 동경의 거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UTC+8: 28이 맞다. 실제와 28분 차이가 난다. 편의상 동경 표준시를 따르는 것이다.     

※ UTC : 세계 협정시, 전 세계가 공통의 기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한 과학적 표준시간(Coordinated Universal Time)     


우리 몸이 기억하는 생체 리듬 시간과 정해진 시간의 차이인 30분의 편차 때문에 코리안 타임이 생긴 것일까? 아마도 당시엔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는 개념이 좀 부족해서였으리라.     


아무튼 나는 코리안 타이머이다. 그것도 평생을 말이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서둘러 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학생 신분일 때 한 번도 학교에 일찍 등교한 적이 없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부든 새로운 시도든 나 혼자서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할 때도 항상 더 이상 미루면 안되는 때가 되서야 비로소 시작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마지노선까지 생각만 하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내는 타입이다.     

사람과의 약속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약속시간에 대략 5분에서 10분 정도 늦는 것이 다반사였다. 딱 맞게 출발한다고 시간을 설정하고서는 실제는 화장실 문제나 하던 일 마무리 등으로 조금 늦게 출발하여 결국 약속에 늦는다.      


약속장소에 가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그런 날에는 꼭 그날따라 왜 이렇게 버스나 지하철은 늦게 오는지? 약속장소는 왜 이렇게 생각보다 지하철 출구에서 먼지? ‘상대가 화를 내면 어쩌나, 뭐라고 변명하나’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상대에게 조금 늦는다고 연락한다.      


어쩌다 제시간에 맞추면 안도감과 함께 ‘그럼 그렇지 이렇게 오면 되는거야’라는 이상한 만족감(?)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음부터는 꼭 일찍 가야지 결심도 한다.     


어쩌다 조금 여유있게 출발할 때는, 내가 상대적으로 단기 집중력이 좋아서 유투브로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지하철을 몇 개 지나쳐서 결국엔 늦는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땐, 한마디로 대책이 안 선다. 스스로 자책한다. 넌 뭐하는 놈이냐고....     


결국 나는 어떤 이유로든 친구들 사이에서 거의 매번 늦는 놈이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맘먹고 제시간에 갔는데 아무도 없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짜고 나에게만 실제 약속시간보다 30분 이르게 말한 것이다. 난 겉으로는 화를 냈지만, 속으론 뜨끔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유전일까? 일단 돌아가신 어머님이 평생을 바쁘게 사시다 보니 어딜 가시려면 항상 늦게 출발하셨다. 당장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으셨으니깐, 당장 그 일을 마무리 하시고 다음 일을 하셔야 했으니깐..     


나는 어떤가? 난 나의 엄마하고는 전혀 다르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천성이 느긋해서이다. 모든 일은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어쩌면 시작하고부터는 일의 능률이 오른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기한 내에 일을 끝낸다. 그건 다행이다.     


하지만 사람과의 약속은 다르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그 일을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게 아니고, 상대가 있다. 내가 늦으면 상대는 그만큼의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또한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다. 몇 번 지속되면 나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무너져 언젠가부터는 피할 수도 있다.     


이렇게 늦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보면, 어떤 중요한 미팅에서 늦어서 좋은 기회를 놓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큰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후회가 막급할 것이다. 따라서 약속시간에는 평소에 늦지 않는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난 이렇게 늦는 버릇으로 50 중반까지 살다가, 얼마 전 선배와의 약속에서 연속적으로 늦었고, 안그래도 가면서 ‘큰일이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날 선배로부터 진심 어린 꾸중을 들었다. “당신 본인도 그런 타입이긴 하지만, 나처럼 늦는게 습관화되어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씀이셨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는 이런 얘기는 듣지 말아야지’ 진심으로 반성했다.     


그 후로 최근 나는 약속에 늦지 않기로 결심했다. 약속 시간을 체크하고 일찍 출발한다. 해보니 가는 내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른 일들도 느긋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일찍 도착하면 대체로 바둑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기다린다. ‘상대가 오면 무슨 얘기를 하지? 오늘 만남을 어떻게 진행할까?’ 계획도 하고..     


혹시 나처럼 느긋한 성격으로 코리안 타이머라면 한 번쯤 본인을 돌아보기 바란다.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최소한 일상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약속에 늦는게 습관화되어 있다면 당장 바꾸도록 하자.     


「역 코리안 타이머」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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