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순간포착, 세상이 이런 일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즐겨 봤다. SBS 최장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1998년 5월부터 얼마 전인 2024년 5월까지 무려 1,279회를 방영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기하고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재미나게 다룬 덕분에, 시청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사랑받은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시청자들의 항의에 ‘24년 10월부터 방송을 재개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뜬금없이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이유는,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공무원 세계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흔히 우리 공직생활은 판에 박힌 듯 별 특이한 일이 없이 진행되는 것 같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특이한 일들도 가끔씩 일어난다. 특히 요즘처럼 공직을 둘러싼 환경이 공직보다 강할 때, 그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공직이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이니 “정말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의심하지 말고, 들어보기 바란다. 지난 일이지만 특종 감이다. 한편의 코미디다.
때는 2011년 7월로 거슬러 간다.(정확히는 앞의 글 유배 3번째 이야기의 1년 전 일이다) 내가 정말 정말 뒤늦게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첫 보직으로 당시 경제진흥실 소속의 외국인생활지원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강남 개포동에 있던 일본인 학교를 서울 마포구 상암동(DMC 지구)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새롭게 국제학교를 신설하는 일이 당면한 중요한 업무였다. 국제학교를 운영할 주체(학교 법인)을 선정하는 일이다.
내가 발령 나자마자 당시 경제진흥실장님께서 “그 일이 가장 중요하니, 강과장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제대로 처리해 달라”고 당부하셨고, 나야 뭐 그런 일이라면 최대한 좋은 학교법인을 잘 선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의 경과를 알아보니, 미국, 영국에 본사를 둔 굴지의 학교법인 6곳과 한국의 유명한 법인 1곳 해서 총 7개의 법인이 신청을 했고, 심사위원을 선정해서 심사를 진행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교육계의 저명한 인사를 리쿠르팅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을 했고,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도 공문을 보내 시의원 2분을 심사위원으로 추천받았다.
본격적인 심사를 진행하기 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시 출입기자로 있는 모 방송국 캡틴 기자가 실장님을 통해서 나를 찾아왔다. 전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낸 적은 없는 기자였다. 요는 자기가 관련이 있는 모 학교법인을 선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그 법인은 서울시로부터 인가를 받아 국제학교를 운영중에 있었는데, 그 학교가 아마도 당시에 중학교까지 인가가 되어있어 이번 기회에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 교육체계를 완성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선정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사실 방송국 기자라는 타이틀은 우리 사회에서 무시 못 할 존재이기도 했다. 꼭 한 번 둘이서 같이 점심을 하자기에, 여러 번 거절했다가, 자꾸 거절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점심약속을 했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그 학교법인 홍보이사라는 친구가 같이 와 있었고, 기자가 자기 학교법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경위와 함께 학교의 내력 등을 소개하면서 잘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불편했지만 이왕 온 김에 얘기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올 때, 그 식당의 시그니처 음식이라며 집에 가져가서 아이들 주라고 2펙을 내미는 것을 사양하고 왔다.
하지만 기자는 그 후로도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 기자는 나하고 동년배쯤 되는 나이인데, “이 기회에 친구 맺자. 우리 학교법인이 세계적으로도 많은 국제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넘버 원 클라스이고, 이미 서울에도 있는데 이번 기회에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을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내 아들도 상하이에 있는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사정이 딱하니 좀 도와달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등의 부탁인지 압력인지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판단에, 그 학교법인 서울지사 운영이사(외국인)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강하게 그 기자가 계속 로비를 한다면, 그 댓가로 내가 당신네 학교법인에 대해서 심사할 때 심각하게 고려하겠다(사실 내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위와 같은 뜻으로 말한다는 것이, 짧고 단호한 어투로, IF Mr. ○○ continue ....., I will kill your school in future evaluation. 이라고 말함.)
그리고 얼마 후에 감사원으로부터 나에게 연락이 왔다. ’민원이 접수되어서 감사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에 선물까지 주었다는 식당 영수증을 보여주며, 국제학교 선정 심의과정에서 편파적으로 일처리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사원에서 온 감사관 2명에게 그간의 사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했고, 일단 그들은 알겠다며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며칠 후에 별일이 아닌 것 같아 민원은 종결처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당연하지)
그즈음 총 7개 신청법인을 심사하여 일단 5개로 압축해 놓았다. 그런데 또 이 심의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시의원 1명이 심의과정에 태클을 건 것이다. 그 시의원은 예전부터 우리 집행부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소문 난 시의원이었다. 독불장군 그 자체였다.
7개 법인의 기존 국제학교 운영 상황, 규모, 능력, 서울 국제학교 운영계획 등을 심의하기 때문에, 오전부터 하루종일 심의 일정을 잡았다. 심의 위원장을 외부 교수님으로 뽑고, 심의를 시작하려고 내가 심의 개요을 설명하는 데, 그 시의원께서 제동을 거셨다. “이렇게 어려운 내용이라면, 자기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과장이 미리 와서 설명을 자세하게 해 주었어야지 자기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며 나를 나무라는 것이다. 시의원에게는 그랬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안의 내용과 중요성에 비추어 사전에 누구에게도 자료를 유출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음을 이해해 달라는 말에도 계속 자기 주장을 한 끝에, 위원장께서 주의를 주었고, 이에 반발한 시의원은 자기는 심의를 할 수 없다며 중간에 퇴장해 버렸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심의를 계속 진행하여 5개 팀을 선정하고, 이 팀들이 속한 본국의 학교법인을 현지 실사하기로 하고 심의를 마쳤다.
문제는 그 시의원이 이 사건을 우리 실장님께 고했고, 실장님은 화가 나셔서 나에게 시의원에게 가서 직접 사과하고 다음 심의 때부터 참여하시도록 조치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명하셨다. 나는 그럴 목적으로 시의원 사무실로 찾아갔으나, 오래도록 기다려도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상황을 장문의 문자로 실장님께 보고드렸다.
또 여기서 생각지도 않은 이상한 문제가 생기면서, 그 유명한 ’말랑말랑 사건‘이 발생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당시 시의회 건물에서 나오면서 바로 실장님께 아주 장문의 문자로 설명을 드리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가 사무실로 복귀하는 동안에도 그 문자는 발송이 되지 않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업무 담당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 핸드폰에 문제가 있으니, 니 핸드폰으로 내가 쓴 문자 그대로 써서 실장님께 보내되, 보내는 사람을 내 이름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직원은 그렇게 했고, 실장님은 평소처럼 ’오키’라고 답장까지 주셨다.
별일 없이 지나갈 일이 기계작동의 오류로 또 문제가 터졌다.(한 번 꼬이면 계속 꼬인다니까)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8시쯤 출근하고 있는데, 당시 건물 밖에서 담배를 태우시던 국장님께서 “지금 실장님이 강과장 때문에 노발대발하고 계시니 빨리 가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제 보고도 잘 드렸는데 무슨 문제지?’라고 생각하며, 실장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실장님은 나에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어제 보고한 똑같은 것을 왜 새벽부터 다시 보내. 짜증나게”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신데요. 어제 저녁에 보내고, 저는 새벽에 또 보내지 않았는데요?” 했더니, 핸드폰을 보여주시면서 새벽에 똑같은 내용이 또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내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진짜 빙글빙글 돌던 그 문자가 송신처리 되어 있었다.(아뿔싸, 안 그래도 전화에 매우 예민하신 분인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실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했더니 실장님께서는 “그렇게 다른 사람 핸드폰으로 어떻게 니 명의로 보낼 수 있느냐”면서 “그건 안 되지” 하며 다시 화를 내시는 거였다. 해서 나는 어제 메시지를 보낸 직원을 불러서 확인시켜드리겠다고 하고 실장님 방을 나왔다.
그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마침 입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빛의 젊은 팀장이 실장님께 보고할 게 있다며 들어왔다. 당시 비서가 그 팀장을 가로막으며 “지금은 보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평소 그 비서랑 매우 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 비서, 왜 안돼? 지금 실장님이 나 때문에 오해하시고 매우 화나 계신데, 실장님이 좋아하는 ○○팀장이 기분좋은 걸로 보고하면 분위기 몰랑몰랑해지고 좋잖아! 들여보내”라고....
이 말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이야!. 물론 내 말이 표현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건은 문제 이상으로 심하게 커졌다. 바로 비서가 실장님 방으로 들어갔고, 마침 내가 부른 직원이 올라와 나는 ‘이제 해명해 드리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실장님 방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방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실장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매우 험상궂은 얼굴로 다가오시면서 “야, 강과장, 뭐 몰랑몰랑? 내가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보이냐? 너 당장 나가. 앞으로 내 눈앞에 보이지 마. 나한테 보고도 들어오지 말고, 앞으로 너희 과는 대면 보고도 하지 말고 비대면으로 해. 그리고 너는 당분간 결재도 하지 말고, 일에서 손 떼”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너무도 놀라 뒷걸음질 치면서 상황을 판단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서 “실장님 한 말씀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 직원이 올라왔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장님의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했고, 비서가 이유 없이 보고를 막길래 한 얘깁니다” 이에 실장님께서 “저 입을 재봉틀로 꼬매버려야 말을 안 할거냐? 당장 나가!”하시는 거였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물고기는 먹이를 먹으려다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항상 입으로 걸린다’라고.... 그렇다. 내 입이 방정이어서 문제다. 말랑말랑이라는 단어 선택이 문제였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사안을 너무 가볍게 봤다. 내 딴에는 비서에게 별 뜻 없이 농담식으로 했던 말이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갑자기 인사과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좀 보자고.
인사과장은 평소 88클럽(키 80, 몸무게 80 이상인 팀장급 이상 직원 모임, 내가 제의하여 만듦) 회원이기도 한 친한 형님이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인사과 사무실로 갔다. 인사과장 선배는 “왜 경제진흥실장님이 강과장을 인사조치하라고 하는 거야? 왜 그래? 이유가 뭐야?”라고 묻는다. 나는 그간의 상황을 아주 소상히 설명하였고, 나름 이해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전혀 빗나가고, 인사과장은 나에게 “내가 강과장 그렇게 안 봤는데, 나쁜 놈이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침 그날 저녁 내가 신문팀장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고 나름 나를 아껴주던 신문사 1진 기자 2명의 형들과 저녁 약속이었는데, 계속해서 인사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내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는 그 형들이 “야 인사과장 선배인데 전화 좀 받아라”하는 걸 나는 받지 않았다. 결국 한 형이 전화를 받아 나를 바꿔줬는데, 얘기하다가 별로 좋지 않은 말이어서 나는 버럭 화를 냈다.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당신은 선배도 아니야. 나한테 전화하지 마. 인사발령은 내든지 말든지 니 맘대로 해”라고.(너무 쎘다. 나는 그게 늘 문제다. 화를 참지 못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 그런데 다행히도 그 뒤로 인사조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지나가고, 실장님께서 나에게 “다 지나갔으니, 이젠 심사를 제대로 해, 나는 특별히 관여 안 할테니...”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네”라고 답을 하고, 다시 심사업무에 진력하였다. 이른바 실장님과 내가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사단이 일어난다. 갑자기 내 주변의 직원들이 “과장님, 느닷없이 감사과 직원들이 과장님 어떠냐고 묻습니다. 일은 어떻게 하냐? 술은 많이 먹냐? 무슨 문제는 없냐? 등등요” 무슨 말이야 하고, 나는 당시에 감사국 조사과장으로 있는 88회 멤버인 선배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선배는 간단히 “윗선의 지시가 있어서, 원래는 우리 조사과 일인데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못하겠다고 했고, 대신 감사과에서 너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바로 그 시간에 실장님과 같이 출장을 나가 있는 경제진흥과장 선배에게 문자 메시지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나를 왜 뒷조사하느냐? 실장님이 지시한 거냐? 실장님께 말씀드려달라”고 했다.
곧바로 실장님께서 당시 우리 국장님께 전화를 걸어 “어떤 놈이 내 지시도 없이 강과장을 조사하느냐? 당장 그만두게 해라”라고 해서, 곧바로 뒷조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 후로 바로 알게 된 사실은 이렇다. 다음 날쯤인가 당시 대변인께서 나를 보자 하시어 갔다. 대뜸 “야, 강과장.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하시면서 나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여주셨다. 당시 1부시장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문자인데, 문자 내용은 “강과장을 그 자리에서 빼 주세요”였다. 이런 기막힌 일이.... 1부시장님이 그 기자로부터 부탁을 받고, 감사국장에게 강과장을 조사해보라고 지시하였다는 얘기다.
위의 조사과장 선배에게 다시 물어보니, 개인의 비리 등은 본래 조사과 업무인데, 감사국장의 지시에 본인은 그런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조사할 수는 없다고 거부하였고, 해서 감사과에서 조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요는 그 기자가 감사원 민원, 인사조치 등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니, 털어서 먼지나게 해서 빼달라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아무튼 이 일은 결단력 있는 우리 실장님의 빠른 조치로 일단락 되었다.(참고로 그 조사과장 선배는 이 일 포함하여 감사국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바로 다음 인사에서 좌천 발령이 났다. 슬픈 일이다. 나는 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의로운 선배 공직자이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진짜 공무원 세계에서 이런 일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더 흥미지진한 이야기가 후편에 기다리고 있으니, 채널 고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