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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Dec 27. 2022

[ 순우의 여행노트] Prelude

나의 여행노트에 담긴 세상의 자연, 사람과 문화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삶은 소풍이었고, 그 소풍은 아름다웠노라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소 긴 여정의 아름다운 소풍을 즐기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하지만 소풍이라고 하면 너무 짧고 쉽게 끝나 버릴 것만 같은 아쉬움이 있으니, 그걸 여행이라고 하면 어떨까? 소풍과도 같은 우리의 인생, 오늘도 나는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하루의 여행을 떠난다.  

    

  어느 시인도 이야기했다. 한 사람의 삶은 곧 하나의 여행이라고. 그는 태어남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네 삶의 여행은 죽음이라는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또 그는 여행이 완성되려면 우리가 그 여행으로부터 돌아와야만 한다고도 했다. 우리가 오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작하는 일상 하루하루의 짧은 여행, 그리고 더 멀리 며칠이고 떠나는 긴 여행 모두 우리는 다시 오늘의 이 자리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무수한 여행의 완성을 이어나가는 하나의 긴 여로(旅路)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있던 곳, 나에게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그래서 오늘이고 언제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길에...

     

  내 나이 70, 이른바 종심(從心)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순기로 접어들었다. 뒤돌아보니 농촌에서의 어린 시절, 자연 속으로 떠났던 무수한 동심의 여행은 꿈과도 같다. 처음으로 고향 마을을 벗어났던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바깥세상으로의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숱한 여행을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도시에서의 유학, 학교 공부 여행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사회 속에서의 내 삶은 나라 안뿐만이 아니라 나라 바깥의 세상으로도 이어졌고, 일상 속 하루하루의 여행과 함께 때때로 일상 밖으로의 색다른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직업의 특성상 나는 일을 위해서 내 나라는 물론 여러 다른 나라를 여행하기도, 해외에서 살면서 그 나라의 먼 지방을 여행하기도 했다. 특히 나는 주로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이른바 개도국의 여러 지방을 많이 여행했다. 그곳은 문명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었고 사람들의 발길 또한 많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리 때 묻지 않은 그곳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이방인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을 즐겼다. 또 그때그때의 느낌이나 생각을 메모해 두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것을 글로 써서 「여행 노트」라는 나만의 여행기록으로 남겨두고는 했다.      


  나의 그런 여행기록이 이런 메모장, 저런 노트에 한편 한편씩 쌓여 있다. 그 기록은 50년 전쯤 내 대학 시절의 배낭여행 노트로부터 2주여 전 그 당시의 학우였던 5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제주 여행 노트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나왔다. 다만 중간 한동안의 기록이 사라지기도 했다. 7년 전 프랑스 파리의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여행 노트가 담긴 가방을 날치기당하고 말았다. 수년 동안 DR콩고, 코트디부아르, 에티오피아, 이집트, 네팔 등지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것을 도난당했다. 여권이나 컴퓨터는 그것을 새로 만들거나 사면되었지만, 나의 여행기록을 새로 쓸 수는 없었다.      


  올 상반기에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글벗 모임의 인터넷 카페에 그간 2년 동안 매주 글을 써오다 보니 기존에 써오던 자연에 대한 글의 소재도 어느 만큼은 바닥이 났다. 글을 계속해서 쓰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의 글감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문득 서재에서 잠자고 있는 나의 여행기록을 깨워서 그것을 되살려 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치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그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들이었지만 그 여행 당시와 똑같은 설렘, 호기심,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련한 기억의 추억이나마 그 속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지금의 시간으로 소환해 보기로 했다. 추억을 떠올리고 회상하며 내가 보았던 곳과 그곳 사람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기 시작했다. 내가 여행하면서 느끼고 생각해서 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선 내가 여행한 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풍경이었다. 하나의 작은 마을이 되었지만, 지구촌 곳곳은 여전히 그 광활하고 장대한 모습과 함께 경이로운 다양성과 다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 그곳의 자연환경이 매우 독특하고 우리의 것과는 많이 다른 것과 같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도 우리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낸 그들의 문화 또한 각 지역과 나라에 따라 매우 독특한 만큼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들 자연과 삶의 모습이 우리와는 서로 적잖이 달랐지만, 그들이 지니는 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른 게 없는 듯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따뜻한 마음은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윌리엄 서로이언(William Saroyan)의 소설『인간 희극(The Human Comedy(1943)』에 나오는 한 장면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미국 서부의 어느 농장에서 일하는 소설 속의 소년이  멀리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라치면 열차의 난간에 서 있던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 그에게 답을 해주고는 했다. 서로 느끼고 나누는 따스한 온정과 인간적 유대감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여러 해 전 베트남을 여행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공유한 적이 있다. 베트남 북부 변방 지역인 라오까이로부터 하노이로 돌아오는 야간 여행길, 12시간이 걸리는 완행열차 속이었다. 맞은편 앞자리에는 아내와 나를 마주하고 앉은 사람이 있었다. 의사소통이라고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방인 간의 마주함, 그와 우리 간의 분위기는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우리는 그에게 아무 말 없이 몇 조각의 비스킷을 건넸다. 그런데 얼마 만이었을까? 그가 그의 배낭 속에서 자두 몇 알을 꺼내 그것을 불쑥 우리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단 한마디의 말을 했다. ‘먼’이었다. 우리는 그 여행에서 북부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자두 농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과일 자두가 베트남어로 ‘먼’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몇 되지 않는 베트남어의 하나였다. 우리가 그것을 반갑게 받아서 스스럼없이 먹어보자 그의 표정이 이내 환해지고 우리 사이에 있는 듯했던 묘한 긴장감, 어색함 같은 것은 이내 사라졌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서로가 확인한 것이었다.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더없이 정겹고 순박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빈민가 등의 일부 지역에서는 도둑질이나 날치기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지역에서는 서로가 이웃이 되고 마을을 이루며 서로를 돕고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일수록 사람들은 이웃과 이웃 간에 더 가까운 공동체적 유대감과 연대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듯하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더 여유가 있고 너그러워 보였다. 나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나 우리 역시 가난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모습은 서로 간에 더 가깝고 정겹게 지냈던 우리의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도, 이웃 간에 별다른 오감 없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세상 곳곳의 환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데는 그 어떤 차이도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비슷한 것에 즐거워하고 또 서로 같은 것에 슬퍼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은 나에게 또 다른 것을 알려주었다. 인종과 피부색, 종교와 사상, 전통과 문화는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나가 지니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또 사람들이 때로는 서로 다투고 반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산과 강, 바다를 찾아서 떠났던 여행, 그리고 1982년 여름 대만(Taiwan)과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으로 시작된 해외여행 모두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디론가 여행을 하게 되면 틈틈이 메모하고 기록하여 그것을 나의 여행 노트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는 내가 있던 곳의 내게로 되돌아왔다. 그간 내 나라 안으로, 때로는 나라 밖으로 떠났던 나의 여행기록, 내 여행 노트 속 그때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여기에 옮겨 보려 한다. 내가 여행하면서 나의 시선과 관점으로 살펴보았던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 그 삶의 모습을 이야기할 것이다. 『순우(順愚)의 여행노트』라는 제하의 글로 이제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이어나갈 것이다. (20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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