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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Jan 03. 2023

[순우의 여행노트 1] 출항 - 홍도 배낭여행(1)

홍도로 가는 하루 동안의 뱃길

  07:00 목포행 버스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목포행 버스에 올랐다. 광주가 고향이고 나의 클래스메이트인 도현이와 짝을 이룬 여행이었다. 여름방학을 한 바로 그날 밤 광주행 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광주에 도착해서 목포행 버스를 탄 것이다. 이곳 남도 여행은 지난해 생도 3학년 때 광주의 육군보병학교에서 하계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군용 열차 편으로 송정리역을 통해 오갔던 게 그 첫 번째. 이번은 4학년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홍도(紅島)를 찾는 배낭여행을 위한 두 번째의 남도 쪽 발걸음이다. 한 시간 반쯤이 걸려 목포에 도착했다.   

   

  09:10 출항

  흑산도행 향남호(鄕南號)가 목포항을 떠났다. 남쪽을 향하는 배 向南號가 아니라 고향을 남쪽에 둔 배 鄕南號다. 가슴이 설렌다. 흑산도까지는 6시간의 뱃길이란다. 목적지 홍도를 가려면 거기서 배를 갈아타야만 한다. 여러 동행을 만났다. 같은 학번의 영철, 상설, 광섭, 그리고 2년 후배인 2학년 생도 대여섯도 같은 배를 탔다. 나의 이번 여행 도반 도현이와 나를 합하면 생도 여행객만 열 명이 넘는다. 흑산도를 향하는 사람들과 짐을 실은 배가 파도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간다. 배의 확성기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석별과 이별, 재회의 부두, 먼바다로 나가는 어부의 항구... “나는 왔네 나는 왔네 못 잊어서 찾아왔네... 눈물 젖은 목포항구 동백꽃도 한때드라...” 처연한 곡조의 ‘비나리는 목포항’ 노래다.


목포항 흑산도행 출항을 앞둔 여객선 위에서(영철, 도현, 나 그리고 광섭)

     

  10:20 한 시간 남짓한 항행, 배의 발동이 꺼졌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리만큼 조용해졌다. 안좌도(安佐島)란다. 갯벌의 염전이 보인다. 제법 커 보이는 섬이다. 배는 작은 나룻배에 여남은 사람과 짐짝 몇 개를 내려놓는다. 배가 다시 출발했다. 바닷길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이제 배의 속력이 좀 더 빨라지겠지.

      

  11:40 두 시간여의 항해 끝에 넓은 갯벌이 섬 앞에 펼쳐진다. 배가 다시 발동을 껐다. 비금도(飛禽島)란다. 섬의 모양이 큰 새가 날아가는 것과 같다 해서 비금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룻배에 다시 여남은 사람이 몇 개의 짐짝과 함께 내린다.

      

  12:00 자욱한 안개가 몰려온다. 멀리 안개 속에 잠겨 있는 몇 척 고깃배들의 풍경이 신비롭다. 뱃고동이 또 한 번 울렸다. 도초도(都草島). 목포에서 홍도까지의 중간쯤에 있는 섬이란다. 여기에서는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이제 파도가 좀 일어나는 듯하다. 배의 선창에 오르니 바람도 제법 거칠다. 바다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시야를 분간할 수 없는 큰 바다로 배가 들어간다. 안개 바다? 바다 안개?


  망망대해, 만경창파. 안개 때문에 얼마쯤의 도착 시간이 늦어질 것이란다. 머리에 물 방물을 맺어주는 안개 더미. 안개 속에서 배는 3시간쯤을 내리 쉬지 않고 달린다. 그사이에 나는 맨 아래층의 객실에서 늘어지게 한잠을 잤다.    


흑산도로 가는 중 몇몇 섬 앞에 배가 멈춰서 나룻배애 사람과 짐을 내려놓는다


  15:00 안개 속을 달리던 배가 갑자기 멈춰 섰다. 하선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선원 하나가 연거푸 큰소리를 지른다. 배는 긴 고동을 울린다. 무엇인가 어둑한 물체가 안갯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깃배 한 척의 모습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배가 멈추지 않고 달렸다면 하마터면 서로 부딪히지 않았을까? 그 고깃배가 빗기어 지나가자 그제야 우리 배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5:50 다물도(多勿都)란 섬이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여러 가지 고기가 잡힌다고 하여 다물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섬 주위에 안개가 조금 걸려있다. 멀리에는 굴 양식장이 보인다. 해변 가까이에 있는 해녀들이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한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소라, 굴, 전복... 저 바다의 해녀들은 무엇을 따고 있을까? 이 섬도 수십 개의 섬이 흑산군도(黑山群島)를 이루는 흑산면의 일부라니 흑산도가 그리 멀지는 않은 모양이다.      


  16:30 흑산도(黑山島)다. 상록의 나무들이 이룬 산 숲이 깊게 우거져서 검은빛으로 보이는 섬이기에 흑산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섬의 바다 물색이 푸르다 못해 검푸르기에 흑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오후의 성긴 해무에 안긴 섬은 검은 회색빛이다. 섬의 연안은 곳곳이 기암괴석이다. 여기저기 낚시꾼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예정 6시간보다 1시간쯤이 더 걸렸다. 하지만 향남호의 항행은 여기까지. 홍도까지는 작은 배를 구해서 다시 뱃길을 이어가야만 한다. 10여 명의 홍도행 승객들이 홍도행 작은 목선 하나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방학을 맞아 남도 섬을 배낭 여행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다.   

  

흑산도 전경(자료: 한국관광공사)


  17:00 향남호의 확성기에서 때아닌 방송이 흘러나왔다. 향남호가 홍도까지의 출항을 허락받았으니 홍도행 승객은 승선하라는 안내였다. 흑산도 토박이라는 어떤 분이 배에서 내리기에 앞서 자신이 선장에게 홍도까지의 특별 출항을 부탁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생도들이 이런 내 강토 사랑 여행을 하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분의 간청이 통했던 모양이다. 얏 호! 벗어놓았던 배낭을 다시 메고 서둘러 내렸던 배에 다시 올랐다. 다시 출항이다. 근해의 섬들을 제치고 배가 나간다.  

    

  19:00 구름 속의 연약한 저녁 햇살이 기울며 바다 위에 은빛 물결을 만든다. 새의 깃털과도 같은 겹겹의 파도가 배 양쪽으로 긴 은빛 나래를 펼친다. 서편의 햇살이 저녁 안개에 숨어들자 배 뒤편의 바다는 이내 회색빛 고요와 검푸른 심연의 파도 속으로 잦아든다. 은빛 반짝임이 부서지는 서편으로 멀리 섬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 홍도(紅島)가 멀지 않다.     


  19:10 향남호가 긴 뱃고동을 울리며 섬으로 접근한다.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배 가까이 다가와 사람과 짐을 옮겨 싣고 선착장을 향한다. 10시간이 걸려서야 홍도에 도착했다.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어린아이들이 부둣가로 몰려나왔다. 부둣가에서 뱃사람들도 여럿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거친 바람과 억센 파도를 이기고 살아가는 강인함을 지닌 듯해 보였다. 섬사람들 특유의 고뇌와 애수와 같은 것이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19:30 배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바닷가로 흩어져 텐트를 치는 이들도, 민박집을 찾는 이들도 있다. 도현이와 나는 마을 위쪽으로 걸어 올라 민박집을 찾았다. 하룻밤 묶는 방값이 600원이다. 무엇인가를 한 광주리 걸머지고 집으로 들어선 그 집 어른이 그 광주리를 집안 뜰에 내동댕이친다. 톳이란다. 많이 먹기도 하고 말려서 수출용으로 내다 판다고 한다. 물이 귀하다고 해서 세수한 물로 발을 씻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무엇인가를 한 소반 담아 툇마루로 내왔다. 삶은 고동이라고 한다. 나무꼬챙이로 빼먹으란다. 살은 쫄깃한 맛이고 쌉싸래한 뒷맛이 별미다. 어린 시절 시골 개울에서 잡아먹었던 다슬기가 떠올랐다.   

   

  홍도는 6㎢의 면적에 1,200명쯤의 사람이 산다고 한다. 쌀은 거의 나지 않지만, 해산물보다는 농산물을 더 많이 재배한다고 한다. 마늘이 주된 작목이며 김, 미역 따위를 따기도 하지만 이제 그도 양식 김과 미역에 밀려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톳 등의 해초가 이곳 주민들의 주된 먹거리라고 한다. 섬에는 160명쯤의 어린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하나가 있고 중학교는 흑산도, 고등학교는 목포로 나가야만 한단다.   

   

  21:00 무척이나 간소한 저녁상이었지만 많이 시장했던 터라 그 맛은 꿀맛이었다. 해삼을 먹어보라고 주는데 양념이 된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에 찍어서 먹으란다. 홍도는 고추장이 귀하다고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닷바람을 쐬러 바닷가로 나갔다. 한여름 밤바다의 바람결은 아주 부드러웠다. 쏴~쏴~, 찰싹찰싹. 쒀~쒀~,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밤은 인박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 뒤에도 쉬지 않고 몰려오는 파도 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만 할 터였다. (계속됩니다...) (19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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