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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Jan 10. 2023

[순우의 여행노트] 목선 크루즈 - 홍도 배낭여행(2)

   06:00 일찍 눈을 떴다. 마당으로 나와 날씨부터 살펴보았다. 구름이 끼기는 했으나 비가 쉬 올 것 같지는 않다. 바닷가로 나갔다. 아침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선착장 바닷가에서 낚싯줄을 드리운 이도 있다. 아득한 수평선,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다. 물이 가득한 바다가 허공으로 텅 비어있다. 이 섬을 왜 홍도(紅島)라고 부를까? 붉을 紅, 섬 島. 아침 해가 뜨면서, 또 저녁 해가 지면서 홍도에 빗겨 드는 햇살에 섬이 붉은색으로 물든다고 한다. 아침 햇살에 섬의 붉은 기운이 묻어난다.

     

  07:30 이리저리 바닷가를 거닐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를 어린이들이 가방을 메고 지나간다. “학교가 몇 시에 시작하니?” “.....” “몇 학년이지?” “.....” 대답이 없다. 낯선 사람에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가 보다.

     

  09:30 선착장으로 나와 빌린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른 사람은 모두 배낭여행을 하는 우리 사관생도 일행 14명, 선장, 그리고 뱃사람 하나를 포함하면 모두 16명이다. 작은 목선이라 비켜 앉을 틈이 없을 만큼 비좁다. 배로 남쪽 바다를 서쪽으로 돌아서 북쪽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섬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오늘의 여정이다. 네 시간쯤이 걸린다고 한다. 배에서 내려 등대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면 1시간쯤이 더 소요될 것이란다. 배가 바다로 미끄러져 나간다.

      

  목포로부터 300리 길의 절해고도인 홍도는 섬과 그 인근의 권역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섬 전체와 인근의 섬들 모두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보호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면적은 일부의 주거지역을 제외하고 17만 7천여 평(약 53만㎡)에 이른다. 해안선 총길이는 20.8km, 남북으로 비스듬하게 놓여있는 섬의 면적은 6㎢, 섬 남북의 길이는 6.4km, 동서의 폭은 1.6km에 달한다. 홍도 1구 부두가 있는 섬의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236.0m, 섬 북편 홍도 2구 석화촌 쪽에는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깃대봉(367.4m)이 솟아 있다. 서울 남산의 높이가 270m인 걸 보면 이들은 결코 낮은 봉우리가 아니다.

홍도 전경(자료: 신안군 홈페이지 www.shinan.go.kr)

  09:50 부두 앞 남쪽 바다로 나온 배가 서편으로 방향을 잡고 서서히 나간다. 홍도의 관문이자 제1경이라고 하는 남문바위가 첫 번째 볼거리다. 기암절벽 사이에 우뚝 솟아 뚫려있는 문 하나가 보인다. 뱃사람으로부터 이 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개뿔여’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은 배 한 척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남문바위 앞쪽에 있는 건 돛대바위, 바로 옆에 있는 바위는 장군바위라고 한다.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연결된 바위산이 일렁이는 파도 위에 솟아 있다. 병풍처럼 둘러있는 병풍암, 갓 아래 쓰던 탕건의 모습을 꼭 닮은 탕건바위도 있다.   

   

  10:20 배가 바다로 길게 뻗어 나온 산자락을 돌아서 아늑한 해안을 끼고 잔잔한 물결을 천천히 헤치고 나간다. 우람한 바위벽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동굴이 보인다. 배가 물이 가득한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이 꽤 넓어 보인다. 동굴 안을 돌아 나오며 바위 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 따위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종로의 신신백화점에서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는 풍란(風蘭)이 바위 위쪽 언덕에 자생한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난초는 나무 위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사향 냄새와도 같은 향기를 가진 하얀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제비가 막 날아오르려는 형상의 모습을 한 바위 제빗여와 주전자 모양의 주전자바위도 볼 수 있다. 개뿔여, 제빗여 등 여자로 끝나는 바위의 이름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아마도 바위를 여라고 부르는가 보다.      

서안 절벽(자료: Naver Blog '나파의 여행일기')

  섬의 서편 연안으로 기암의 절벽과 바위 언덕, 작은 돌섬이 연이어 펼쳐진다. 거칠어지는 파도가 연신 바위벽 돌부리와 바위기둥에 부딪치며 부서진다. 파도는 저 벼랑의 바위를 때리고 또 때려면서 부서져 저토록 깊고 푸른 멍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도와 바람이 바위벽 켜켜이 그토록 선명한 물결무늬를 만들었으니 그 부딪힘의 숫자, 그 세월의 길이가 얼마나 될까? 바위벽 아래쪽에 이따금 드러나는 동글동글한 몽돌의 모습도 그 긴 세월의 풍파를 말해 준다.

     

  10:50 거칠어지는 바람의 거센 물결과 함께 갖가지 모습의 바위가 나타난다. 도미 모양의 돔바위, 높이 깎아 세운 듯한 네댓의 기둥바위, 큰 코를 가진 듯한 모양의 장군바위가 있는가 하면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 근처에는 물질하는 해녀들이 있다. 전복을 따고 소라나 해삼을 잡는다고 한다. 용바위 주위에는 용나들둠벙, 용이 드나들었다는 물 웅덩이가 있다. 바다로 내려오던 용이 임신한 여인을 보자 그곳에서 목욕한 뒤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곧이어 흡사 부처가 가부좌한 모습의 바위가 구멍으로 내다보이는 부처굴이라는 이름의 바위도 보인다. 거북이바위는 거북이가 고개를 바짝 쳐든 모습이다.      

섬 일주 목선 위에서(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11:20 홍도의 북쪽 해안도 기암괴석의 절경은 이어진다. 거북이바위를 지나면 만물상, 그리고 자연탑(自然塔)과 부부탑... 온갖 다채로운 무늬와 형상의 바위벽, 돌을 깎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돌탑의 모습이 진기하기만 하다. 태초의 자연, 세월의 파도가 만들어낸 신묘한 조화가 신비롭다. 가파른 바위벽 틈새를 살아가는 풀과 나무들, 그 경이로운 생명체들의 숨결과 그들이 부여잡은 삶의 끈기를 생각하게 한다. 석화굴(石花窟)이라는 동굴 벽 연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섬의 북쪽 끝자락 아래로 내려와 아늑한 포구의 마을로 들어간다. 배가 선착장에 닻을 내렸다. 석화촌*이라는 홍도 북쪽의 작은 마을이다. 50여 호의 가구에 200명쯤의 주민이 마치 그곳의 검푸른 바다와 검붉은 빛 바위를 닮은 강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이 마을은 홍도 2구(석기미)라고 불리는 마을로 석화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아마도 1972년에 개봉된 영화 "석화촌(石花村)"이 이곳에서 촬영된 데서 이곳을 석화촌이라고 소개한 것을 필자가 그곳의 마을 이름을 석화촌으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필자 주)

   

  12:00 배에서 내려 마을 뒤쪽의 산길을 걸어 올랐다. 언덕 위에 있는 등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망망대해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외딴섬의 등대는 카사 블랑카, 하얀 집이다. 8각의 반듯하고 단아한 바닥층, 그 위에 살짝 넓혀서 달아낸 야트막한 높이의 난간이 가지런하다. 난간 안쪽에 올라앉은 원통형의 등대실은 둥근 돔 형태의 지붕을 이고 있다. 등대실 바다 쪽의 투명한 유리창을 제외하고는 등대 건물 모두가 새하얀 색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탄흔의 상처를 입었지만, 이제껏 굳건한 모습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 마루턱의 구조물은 백옥의 예술품과도 같이 아름답다. 5만 촉광의 강한 빛을 23마일(약 37km) 멀리까지 비춘다고 한다. 등대가 있는 마루턱에서 내다보는 서북 녘의 바다는 더 넓고 푸르러 보였다.   

홍도2구 등대(자료: Naver Cafe 'bryce' travel')

   13:00 한 시간 만에 내렸던 배에 다시 올랐다. 선착장을 떠난 배는 석화촌 앞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 몇 개를 돌아서 섬의 동쪽 바다로 나간다. 그런데 그런대로 좋았던 날씨가 수상해지기 시작한다. 배는 속력을 내면서 서둘러 배가 떠났던 섬 남동 해안을 따라서 부둣가를 향한다. 하늘이 흐려지면서 바다색은 깊어지고 바람결이 거칠어진다. 7월 초 장마철 날씨가 이제껏 이만큼 좋았던 것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섬 여행은 여기까지. 깃대봉 산을 오르는 등의 섬 여행 계획은 애초에도 없었다. 2주의 하계휴가 후에는 지난해의 하계훈련 때도, 이번 여름의 하계훈련 때도 산이나 비행 타워를 수도 없이 올랐고 또 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가 흐린 하늘로 음산해진 선착장으로 들어선다.     


  14:00 하선. 반나절 동안의 목선 크루즈를 끝냈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아 떠났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꿈만 같았던 시간, 하지만 시장기가 배에서 내린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홍도국민학교 뒤뜰 한쪽에 버너를 켜고 코펠에 밥을 했다. 밥이 거의 다 되었을 때쯤 버너의 펌프질을 하던 중 코펠이 나뒹굴며 거의 다 된 밥이 땅바닥 모래 위로 쏟아졌다. 다시 밥을 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중에 밥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듯이 설익은 밥이지만 아마도 그 밥맛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17:10 출발했던 곳으로의 귀항을 위한 출항이다. 날씨가 나빠져서 배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마음을 조아리며 배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배가 들어왔다. 배를 기다리는 중에 바람이 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자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었다. 나룻배에 몇 사람과 짐을 내리고 새 사람들을 태운 배가 고동을 울리며 20여 분 만에 부두를 떠났다. 홍도는 독특한 풍경의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것들은 나의 눈과 마음속에 담겼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여행자의 귀소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가는 빗줄기가 자욱한 비안개를 만든다. 파도가 거칠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배가 앞으로 나간다.      


 18:40 광순호. 긴 뱃고동을 울리며 어스름이 지는 흑산도 부두로 배가 들어선다. 1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에서 동으로 부는 바람결에 배가 순항을 한 모양이다. 검은 산의 섬, 흑산도. 섬은 이미 어둠에 휩싸였다. 배가 선착장에 닻을 내렸지만, 우리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선실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어서 내일 아침 목적지인 목포로 다시 출항하는 이 배에 몸을 싣기로 한 때문이다. 선장의 배려로 선상 하룻밤의 낭만도 즐기고 숙박비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행운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나빠지고 있어서 내일의 출항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발이 묶여선 안 되는데... 궂은비가 내리는 선창에 내려 인근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 후 배로 돌아와 일찍 선실의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의 날씨가 무난하기를 기도하면서... (계속...) (1974.7.2.)


[후기]

천연기념물 170호이기도 한 홍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보호구역으로 1965년에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홍도 이외에 설악산, 한라산, 독도, 성산일출봉, 마라도, 창녕우포늪 등 모두 11곳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홍도는 1981년에 지정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최서단의 권역이기도 하다.         

홍도는 1974년 7월 여행 당시 약 1,2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의 여행노트에 기록되어 있다. 그간 홍도 인구는255가구에  585명(2021년 기준. 자료: 한국의 섬 - 신안군)으로 1974년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여행 당시 홍도까지는 흑산도 등의 여러 섬을 거치는 하루 1편의 여객선으로 8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으나, 지금은 목포-홍도 간 쾌속 여객선이 일 2회 욍복 운행되며 약 2시간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20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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