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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Aug 17. 2023

[순우여행노트 27] 박하를 다녀온 사파 여행(2)

베트남 변방 박하시장 여행기

  사파(Sapa) 마을 저녁 시장에서의 느긋한 저녁 시간 이후 모처럼의 깊은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전날의 무덥고 지루했던 한밤 내내의 긴 기차여행에서 쌓인 피로, 에어컨을 틀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이곳의 쾌적한 기후와 조용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틀쯤 이곳에 더 머무르면서 이곳 산간지역의 정취를 느끼고자 했던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아침 다섯 시에 서둘러 일어나서는 짐을 꾸리고 박하(Bac Ha, 北河)라는 곳으로의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했던 차파(Chapa)라는 레스토랑의 벽면 한쪽에 게시되어있던 ‘Bac Ha로의 민속문화 탐방’이란 흥미로운 여행안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차파 레스토랑의 매니저인 비(Vi)씨가 주선하는 박하로의 특별 투어는 1주일 중에서 박하 읍내에 장이 서는 일요일에만 이루어진다. 라오까이에서 사파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그곳에서 다시 사파와는 반대편인 북동편 방향으로 약 70Km쯤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여러 변방 소수민족들의 생활 중심지가 바로 박하라는 곳이다. 박하(Bac Ha)라는 그곳의 이름은 北河(북하)라는 한자에서 왔다고 한다. 보다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소수민족들의 생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설명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역시 모두가 외국인 여행객으로 가득한 25인승 버스는 아침 6시 30분 아침의 어둠이 채 말끔히 씻겨지지 않은 사파에는 아쉬움을 남긴 채 출발했다.


  버스는 라오까이에서 북동쪽으로, 중국과의 국경 지역을 따라 올라가다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는 다시 북동쪽의 산간지방으로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한 운행을 계속한다. 박하로 넘어가는 높다란 고갯마루 못 미쳐서 10여 분간의 휴식을 취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달렸는데도 10시가 좀 넘어서야 박하 읍내에 도착했다. 세 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박하 마을 스케치맵

  박하 읍내에 가까워지면서 보니 어디쯤에서부터인가 화려한 의상을 할 사람들이 그들의 등과 머리, 그리고 조랑말의 안장 위에 무엇인가 가득 이거나 지고, 싣고 박하 쪽을 향해 오고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박하 장터로 모여드는 주변 소수민족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      


  박하읍을 중심으로 폭넓게 흩어져서 사는 소수민족 마을 사람들이 아침을 서둘러 이곳에 당도하게 되는 것이 오전 10시쯤. 이 시간부터 12시쯤까지가 장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거래도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산간마을의 중심인 사파보다도 더 변방에 자리해 있지만 보다 폭넓은 지역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더 큰 장이 서는 것이다. 주변 각지에서 모여드는 장꾼들의 숫자가 사파 시장보다도 훨씬 많은 데다가 그들의 고유한 의상 모습은 더욱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또 다른 매우 토속적인 삶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쾌적한 기후여건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는 사파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지만, 변방의 여러 소수민족 사람들의 살아있는 숨결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나르기 위해 끌고 나온 조랑말들을 매어두는 말 터를 중심으로 하여 아래위 쪽으로 형성되는 대로변의 장터 모습은 원색으로 수놓은 고유의상을 입은 장꾼들의 무리로 활기가 가득하다. 제각기 팔려고 펼쳐놓은 각종의 농산물, 옥수수, 땅콩, 채소, 과일.... 과일 중에서는 이곳의 특산물인 자두 먼(Man)이 제철을 만난 듯 대바구니마다 가득하다. 한 아름 정도의 가지런한 모습으로 예쁘게 묶어서 팔리고 있는 장작은 시장 아래쪽 한 편에 별도의 장터를 벌리고 있다. 몇 Km씩이나 무거운 장작 등짐을 지고 온 조랑말들은 무거운 안장을 푼 채 길가에 늘어서서 모처럼의 오붓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 아침 장터를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자료: 네이버블로그)

  소수민족 원주민들이 파는 상품이 과일, 옥수수, 채소 등 농산물과 나무 장작 등으로 간편한 만큼 그들이 사들여가는 물품 또한 매우 간단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과 샌들 등의 일용품과 소금, 등유 등의 기초생필품이 그들의 주된 구매대상이다. 엄마나 아빠를 따라 장에 나온 어린이들은 달콤한 얼음과자를 사서는 신기한 듯 빨아먹기도 한다. 그런데 도매상이 대도시로의 반출을 위해서 대량으로 구매하는 과일의 경우 비교적 손쉬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장작의 경우에는 좀처럼 이것들을 사겠다는 작자가 나타나지 않아 시름에 차 있는 듯한 모습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은 몽(Hmong)족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사파지역의 몽족과는 옷을 입은 모습들이 크게 다르다. 사파지역의 몽족 사람들은 검정 순색 바탕의 옷에 검은색 통 모자를 쓴 어두운 모습이었는데 비해 이곳의 몽족 사람들은 울긋불긋한 수가 놓인 수려한 옷에 모자 또한 알록달록한 예쁜 색깔의 모습이다. 치마 앞뒤 쪽으로 멋을 내기 위해서 덧입은 치맛자락과 어린 아기를 둘러업는데 쓰는 포대기나 망태에 놓은 원색적인 자수가 돋보인다. 그래서 이렇듯 화려한 원색적인 모습의 몽족 여성의 치마를 이름하여 ‘Hmong Flower'라고 한다나. 밝은 색깔의 현대식 양산을 받쳐 들고 있는 몽족 여인들의 모습이 한편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 화려한 그들의 의상과 잘 어울려 보인다. 


  어느새 장 볼 일을 모두 마친 아낙네들은 거리의 한쪽에 모여앉아 분주히 오가는 장꾼들을 구경하고 있기도 하다. 오랜만에 장에 나와 이렇게 활기에 찬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니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마을로 함께 되돌아갈 길동무의 장보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하시장 소수민족 여인들의 모습(자료: 네이버 블로그)
자료: 네이버블로그)
자두를 파는 여인(자료: 네이버 블로그)

  여러 사람의 무리에 휩싸여 장터거리를 오르내리기를 두어 차례. 삶은 옥수수와 자두를 사서 먹기도 하고 간이매점에 들러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는 사이에 어느새 12시. 장터 다음의 일정은 장터로부터 약 4Km쯤 떨어져 있는 몽족 마을까지 땡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적한 시골길을 함께 트레킹하는 것이다. 여남은 채의 몽족 마을의 가옥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의 나무 그늘에서 우리는 여행가이드 호아(Hoa)양이 미리 준비해온 빵과 치즈, 바나나 등으로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발길을 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렸다.

  갔던 길을 되돌아 박하 읍내 쪽으로 돌아오면서 보는 시골길 주변은 더욱 한가한 모습이다. 재래종이라 그런지 열매의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나뭇가지마다 가득히 달린 자두나무가 무성한 과수원. 일찍 시장거래를 마치고 조금은 지친 듯, 빈 안장의 조랑말을 끌고 산마을 쪽 길을 거슬러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는 아낙네와 남정네들의 모습. 바람기 없는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맨땅을 되받아 무더운 지열을 뿜어 올린다.     


  오후 2시 반쯤 장터 부근에서 박하를 출발한 버스는 4시 반쯤 라오까이역 광장에 도착, 다른 여행객들과는 헤어져 그 근처의 조그만 식당에서 때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노이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침대차 칸의 좌석은 이미 매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열 시간도 더 걸릴 후덥지근한 밤의 긴 여행을 생각하니 그저 아득할 뿐이다.     


  해질 저녁 무렵인 오후 6시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까이역에 도착했던 하노이행 기차는 그들이 쏭홍(Song Hong)이라고 부르는 홍강(紅江)을 오른쪽으로 하고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강 건너 먼 서편 쪽의 높다란 산등성 너머로 해가 지면서 드리워주는 낙조가 홍강을 황홀한 저녁노을로 곱게 물들이더니 이내 저녁의 어스름이 온 산야를 어둡게 감싸 안는다. 왼쪽 창밖으로 내다뵈는 잔잔한 홍강의 물결, 평소의 황토색 물빛이 저녁 어둠 속에 잠겨 들어 무거운 침묵의 빛을 발한다. 강 건너편 멀지 않은 거리의 산록과 봉우리들의 모습은 제법 선명한데 그 뒤 멀리 아득한 거리에 있는 홍리엔(Hong Lien)산맥의 산 모습은 그 자태가 희미하다. 어둠이 깊어지면서 각각의 자기 색을 내던 물색, 여러 겹을 이루던 산색의 모습들도 검은 어둠 속으로 모두 사라져 버린다.     

홍강 풍경(자료: 네이버 블로그)

  기차는 포루(Pho Lu), 바오하(Bao Ha), 엔바이(Yen Bai), 베엣찌(Viet Tri), 동안(Dong An) 따위의 이름을 가진 역들을 거쳐 11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5시에 하노이역에 도착했다.     


  하노이 주변의 농촌과는 그 모습이 적지 않게 다른 변방의 새로운 자연의 모습 발견하고 그 속에서 독특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하고도 토속적인 생활 모습을 보고 또 느낄 수 있었던 2일의 기치 박을 포함하여 3박 4일간의 인상 깊었던 여행. 애초의 여행 계획상에는 없었던 박하라는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때문에 이번의 여행은 『박하를 다녀온 사파 여행』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만 같다.


  카메라 셔터에 무감각할 만큼 문명의 손길에 때 묻지 않은 박하 장터의 순박하기 그지없어 보였던 몽족 사람들, 조랑말에 무거운 나무 장작의 등짐을 지우고 장터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타이족 사람들, 하노이로 돌아오는 기차 안 우리 바로 앞의 좌석에 앉아있던 어떤 몽족 남자가 그의 검은색 바랑 속에서 꺼내 건네주던 몇 개의 자두...      


  머지않아 필시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개발의 흐름에 밀려 커다란 변화를 겪고 말게 될 그들의 삶과 생활. 아직은 자연에 순응하고 의존해서 또 그와 어우러져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느끼게 해준 따스한 마음은 나의 기억과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겨져 있을 것이다. (19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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