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답사기
저녁 아홉 시 반 하노이(Hanoi)역을 출발한 중국 곤명(昆明, Kunming)행 열차는 환하게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베트남의 西北 변방 지역에 위치한 라오까이(Lao Cai)역 도착했다. 끈적한 한여름 밤의 공기를 머금은 깊은 어둠을 뚫고 밤새 달려온 기차는 몇 무리의 사람들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여전히 유난히도 큰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북녘 쪽으로 사라져 간다. 강렬한 태양열로 달구어진 낮시간의 찜통 같은 객차 안에서 시속 20여Km에 불과한 속도로 10시간이 넘는 지루한 여행을 했다면, 결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부신 아침 햇살이 가득한 역사를 빠져나왔다.
라오까이시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100리(40km)쯤 떨어져 있는 고산 마을 사파(Sapa). 프랑스의 식민시절 프랑스인들의 여름 휴양지인 하이랜드 리조트였다고는 하지만 오래전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가 불과 4년 전인 1993년부터 외국인의 여행이 허용된 지역이다. 예전 휴양지 풍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 변방 소수민족의 생활 터전인 산간마을. 지금은 휴양지이기보다는 이 지역 주변에 산재해 있는 변방 소수민족들의 토속적인 생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로서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두세 명씩 짝을 이룬 외국인 배낭여행객들이 주된 승객으로 금세 열네 개의 자리를 모두 채운 사파행 미니버스는 곧 라오까이 시내를 빠져나와 단조로운 산골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나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민둥산 허리를 돌아 오르기를 얼마만큼, 버스는 경사가 꽤 가팔라지는 꼬부랑길을 간신히 올라간다. 산허리 중턱을 조금 넘었을까쯤에서 운전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나간다. 이 외딴곳에서 혹시나 차가 고장 난 것이나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는데, 알고 보니 이쯤에서 차비를 받는 것이 아닌가. 버스 바깥쪽에서 열린 차창을 통해 1인당 3만 동(우리 돈으로 약 2천 5백 원) 씩을 받는다. 혹 차비를 내지 않게 되면 외딴 이곳에다 승객을 내려놓기라도 하고 가겠다는 심사란 말인가.
버스가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사파마을에 가까워지면서 한결같이 깡마르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 모습을 한 작은 체구의 고산족 사람들의 모습이 이따금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베트남 인구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비엣(Viet)족(Kinh족)이 농사지을 땅이 풍부하고 살기가 편리한 평야 지역을 차지하여 살고 있다면, 이곳 북서부 변방 지역의 고산지역에는 몽(Hmong), 타이(Tay), 메오(Meo), 자오(Zao) 등 여러 소수민족의 사람들이 고립되다시피 하여 그들 나름의 독특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엣족 여인이라면 누구나가 쓰고 있는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고깔모자 논 라(Non La)나, 누구나가 즐겨 입는 흰색 아오자이(Ao Dai)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들만의 아주 독특한 복식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결같이 짙은 군청색이나 검은색 바탕의 옷들을 입고 있다. 연중 무더위가 가실 줄 모르는 산 아래 평야 지역의 기후와는 달라 서늘하고 쾌적한 데다가 한밤이 되면 더욱 기온이 내려갈 테니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더 많이 흡수해 두어야만 하지 않을까. 물이 귀한 산간지대에서 빨래의 횟수를 줄이자면 그런 색깔의 옷이 훨씬 더 실용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30여 킬로미터의 산길을 한 시간 반여의 시간 만에 도착한 사파마을은 청량한 공기와 화사한 햇살을 가득히 머금고 있다. 산등성 서북 편 한쪽에 무리 지어 들어서 있는 하얀 가옥과 건물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소담스럽다. 저 아래편의 푸르른 계곡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북쪽으로는 베트남의 최고봉인 판시판(Fan Si Pan)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산의 높이가 3,143미터.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이곳 사파마을 쪽의 날씨와는 아랑곳없이 흰 구름의 무리가 산허리 가슴 윗부분을 두텁게 감싸고 있어서 산의 정상 부분은 구름 속에 그 신비로운 모습을 숨기고 있다.
사파 읍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2~3층 높이의 나지막한 건물들의 이름만큼은 시설의 모습과 관계없이 모두가 호텔. 그린 뱀부(Green Bamboo)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호텔에 짐을 풀고 스낵바와 같은 그 호텔의 간이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내와 함께 장터 구경에 나섰다.
사파마을 사방 10여 Km 지역에 흩어져서 사는 소수민족들의 장터이다 보니 약 200m쯤 되는 읍내 중간도로의 좌우에는 이런저런 일용품 상점과 외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이 지역 특유의 토산품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와 난전들이 즐비하다. 거리에는 어느새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자연스럽게 열리는 장에 나온 여러 소수민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오르내림이 분주하고 여러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걸음도 활기를 띠고 있다.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지나가거나 두서너 명씩 짝을 지어 거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는 각자가 준비해온 팔 것들을 열심히 세일즈 하고 있다. 팔고 있는 것들은 손수 짠 것으로 보이는 등산조끼, 멜빵이 달린 작은 손가방, 두드려서 만든 듯한 은장식 목걸이, 팔찌 등 다양하다. 키가 멀쑥하게 큰 서양 여행객 한두 사람을 둥그렇게 에워싸고는 자기의 것을 사달라고 주문하는 왜소한 이곳 산촌 사람들의 모습이 천진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게도 느껴진다. 중간도로 뒤쪽으로 연결된 좁은 골목길 바닥에는 고추, 양배추, 옥수수, 푸성귀 채소 등을 올망졸망 늘어놓고 팔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찰옥수수를 삶아서 팔고 있는 아낙네가 있는가 하면 숯 풍로 불에 구운 옥수수를 파는 여인의 모습도 눈에 뜨인다.
거리를 오가는 고산족 아낙네, 남정네들은 대부분이 대나무로 만든 둥근 바구니 망태를 지고 다닌다. 옥수수, 과일이나 채소, 또는 말린 약초를 이곳 장터의 상점에 일찌감치 넘기고 나서는 그 망태 속에 이런저런 일용품들을 몇 가지씩 사서 담았을 것이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두른 여인네들은 하나같이 보자기로 만든 색다른 모습의 모자를 쓰고 있다. 어떤 종족은 아주 화려한 수가 놓인 원색의 모습인가 하면, 어느 종족은 짙은 군청색 단색의 모자를 두르고 있다.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그들이 어느 종족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아낙네들 모두는 발목에서부터 무릎까지를 감싸는 종아리 싸개, 토시와도 같은 것을 하고 있다. 그들 나름의 패션인지,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신발만큼은 모두가 질기고 편리한 듯이 보이는 플라스틱 샌들을 신고 있다.
해맑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어느 한구석엔가 그늘이 어려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척박하고 거친 이 고산지역의 산과 들에서 그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행여 조금씩 그들의 삶과 생활 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하는 물질문명에 대한 열등감이나 외래문화에 대한 소외감 같은 것들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장 통로 맨 위쪽에 자리 잡은 공터는 이곳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가 가장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 대목의 공간이다. 배구장 하나와 족구장 하나쯤이 들어갈 만한 면적 정도의 그리 넓지 않은 빈터. 평소에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 터로 이용되기도 하겠지만, 토요일 저녁의 어스름이 깔리면서부터 사방 곳곳으로부터 몰려드는 고산족의 젊은 남녀들이 서로의 짝을 찾아서 사랑의 밀회를 시작하는 설레는 만남의 장소, ‘사랑의 야시장(夜市場), Marriage Market’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설렘의 공간에 모여들고는 했던 젊은 남녀들의 숫자보다도 많아진 외지관광객들의 눈길 때문에 이 낭만적인 만남의 밤 축제가 더는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순박하고 여린 감성의 그들이 짓궂고 호기심 어린 외지관광객들의 시선을 더는 견뎌낼 수 없었으리라.
이곳 변방의 여러 소수민족은 사파마을로부터 10여 Km가 넘는 거리의 지역까지 여러 곳에 산재한다고 한다. 한편 이들이 사는 마을까지 그들의 독특한 생활 모습과 함께 이곳의 자연 풍경을 답사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을 답사하고도 싶었지만 먼 걸음걸이에 자신이 없다는 아내의 의향을 고려, 사파마을 오른편 아래쪽 계곡에 비교적 가까이 위치한 깟깟(Cat Cat)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가벼운 산보를 하기로 했다.
산허리 아래쪽으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몇 채의 작은 집들과 산 아래쪽 허리를 맴돌아 충충히 띠를 두른 계단식 논과 밭, 꼬불꼬불한 산골 도랑의 모습이 흔들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한눈에 들어온다. 따가운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꽤 널찍하게 닦아놓은 가파른 신작로 길을 따라 점차 그 모습이 가까워지는 아래쪽 계곡 마을로 내려간다. 여기저기 소를 놓아 풀을 먹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뜨이는가 하면 밭일이나 논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나무 쪽으로 엮어서 만든 벽체에 마른 풀로 지붕을 한 초가(草家), 맨땅 그대로의 집안 바닥과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한 키 높이쯤의 거실 겸 침실. 집안 전체가 벽으로 칸을 막거나 별도로 방을 꾸민 공간이 없는 모두가 하나의 트인 공간이다.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다시피 하는 이들의 모든 집안 생활이 이 한 개의 열린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베트남어인 띠엥비엣(Tieng Viet)을 쓰지 않고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곳 소수민족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방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그들도 이제는 외지인과의 만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해 보인다. (1997.6.)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