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ep3
공항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노숙자 분들이 많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며 24시간 개방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곳곳에 노숙자 분들이 머물고 있다. 공항 입장에서도 이용객들과 큰 마찰을 일으키거나 시설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
보안요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그리고 다양한 노숙자 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계단 밑에 카트와 버려진 캐리어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생활하는 노숙자,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공병을 수거하는 여성 노숙자 등 특이한 분들은 근무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하다.
그중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다른 노숙자 분들과는 조금 다른 한 노숙자 어르신이 있다.
출국장 구석에서 낡은 정장 차림에 짙은 보라색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어르신이다. 이분은 다른 노숙자 분들과 달리, 근무자를 보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승객들이 두고 간 쓰레기를 대신 치워주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일 없이 조용히 공항에서 지내신다.
나 역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분을 노숙자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르신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출국하는 승객들을 구경하고, 공항 전광판에 나오는 미국행 비행기들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는 것. 우리 근무자들 역시 그 어르신만큼은 다른 노숙자 분들과 다르게, 호의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근무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 멀리서 그 어르신이 나를 불렀다. 인사를 몇 번 나눈 게 전부인 나를 부르신 것이 의아해, 나는 서둘러 다가갔다.
어르신은 오늘 자식 부부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혹시 몇 시 비행기인지 알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분이 오랫동안 혼자 계신 것만 봐왔지, 자식 부부로 보이는 일행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자녀분들은 어디에 계시냐고 여쭤보았다.
어르신은 아들 부부가 지금 티켓을 사러 갔다며, 조금만 기다리면 온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미국행 비행기를 현장에서 예매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시간을 알려면 티켓이 필요하다며, 아드님께 전화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휴대전화를 보여주시며 고장이 나서 안 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아드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대신 걸어보겠다고 했지만, 어르신은 번호를 모르신다고만 하셨다. 휴대전화를 받아 확인해 보니 배터리가 없는 상태였다. 근처 카페로 가 휴대전화를 충전했다.
충전되는 동안 어르신은 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며느리는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과학자라며 자랑을 하셨다. 나는 그저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휴대전화 전원이 켜졌고, 화면에는 학사모를 쓴 남자의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떠 있었다.
나는 연락처에 ‘아들’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 대신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휴대전화를 어르신께 돌려드리며, 혹시 며느리 되시는 분께 전화를 걸어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된 것처럼 보였는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오라고 말씀하셨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다시 휴대전화를 받아 귀에 대보았지만, 삐— 하는 신호음만 울릴 뿐이었다. 그 번호 역시 없는 번호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아니라고, 방금 며느리가 전화를 받았다며 다시 전화를 걸어 나에게 넘기셨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들 때와 마찬가지로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알았다.
이 어르신은 치매를 앓고 계셨다.
어르신은 오지도 않을 아들 부부를 매일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티켓을 사 올 거라는 말을 믿고, 매일 밤 공항 벤치에서 잠을 자며, 사람들이 두고 간 음식을 주워 드시며 노숙 생활을 하고 계셨다.
나는 너무 황당했고, 동시에 화가 났다. 공항에 부모를 버리고 해외로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내 눈앞에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르신께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아들 부부와 함께 떠날 미국 여행을 기대하며 입은 정장과 구두는 먼지에 덮여 낡아가고 있었고, 지워져 가는 기억 속에서 어르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안내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어르신을 모시려 했지만, 어르신은 자리를 옮기면 아들 부부가 찾기 어려울 거라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려 하셨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 업무를 위해 자리를 떠났고,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이미 많은 동료들이 어르신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뒤에서 안타까워하고, 그 아들 부부를 욕하는 것뿐이었다.
며칠 뒤 다시 그 자리에 가보았다. 어르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아들 부부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발견한 어르신은 여전히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눈인사만 조용히 나누고, 이 불편한 마음을 안은 채 어르신을 지나쳤다.
최근에 그 어르신의 소식을 들었다. 한 단체에서 어르신을 보호센터로 모셨고, 아들 부부 역시 연락이 닿았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그 아들 부부가 정말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공항에 남겨두고 떠난 것도 화가 났고, 같은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은 더 괘씸했다. 나는 그저 아무 관계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뒤에서 욕만 하고 있다.